식재료 업자? 동반자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식재료 업자? 동반자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정지미 기자
  • 승인 2014.04.17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저가 입찰제로 40억 부도… 위기 속 깨달음 ‘제품만 확실하면 소비자는 돌아온다’

‘얼굴 있는 급식’을 위한 기업 탐방 ③

유독 단체급식 분야는 식·기자재 관련 업체들의 정보와 활동을 쉽게 알기 힘들다.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찰 등을 통해 납품할 수 있다는 일부의 인식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 소비자가 아닌 다수의 취식 인원이 최종 소비자이지만 B to B 형태의 거래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기업 활동을 해온 특성도 있을 것이다.
이제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단체급식 관계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업을 만나보고자 한다.

▲ (주)한려엔쵸비 이상규 대표이사

1999년부터 지금까지 단체급식에 수산가공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주)한려엔쵸비는 ‘대한민국에 있는 학교라면 한 번쯤 써봤을 것’이란 풍문이 있을 정도로 신뢰받는 학교급식 전문 업체이다.

냉동생선, 냉장생선, 건조생선, 조개류, 수산가공 제품 등 300여개의 다양한 제품을 전국 109개 대리점을 통해 납품하고 있는 한려엔쵸비의 생산현장을 탐방하기 위해 부산 본사를 찾았다.

첫 인상은 쾌적함이었다. 수산가공업체이기에 날 법도 한 비릿한 냄새는 대지 1400여평 건평 600여평의 공장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었다. 공장 전체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공장진입 전 위생관리, 가공, 포장, 이물질 및 금속검출, 출고구역으로 구분돼 있었다.

올해 초에는 오징어 전용 자동화 기기도 설비해 안전과 위생, 효율을 높였다. 특히 특별 주문·제작한 어류 및 연체류의 자동세척기 도입으로 기존의 손 세척 방식에서 탈피, 자동으로 2차 세척까지 가능해 졌다.

이렇듯 15년을 학교급식에 주력한 한려엔쵸비의 시작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이상규 대표는 “1999년 당시 학교급식에 납품되는 국물용 멸치의 품질은 낮았고 양파 망에 멸치를 넣어 국물을 내고 있었다”며 품질 좋은 멸치를 위생적으로 아이들에게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려엔쵸비의 초기 주요제품은 불순물을 선별해 1kg씩 위생팩에 포장한 국물용 멸치였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2008년, 수의계약에서 최저가 입찰로 전환 되는 시기에 무조건 가격만 맞춰 학교에 납품하려는 업체들이 난립했고 제품의 질은 학교급식에서 뒷전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유통업체에 납품을 하고 있었던 한려엔쵸비는 가격이 낮은 타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40억 부도라는 큰 위기를 겪어야 했다.

당시를 회상한 이 대표는 “품질 하나로 당시 영양사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우리도 결국 버틸 만큼 버티다 어쩔 수 없이 가격에 맞춰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제품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진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도저히 기존 품질을 유지하며 최저가입찰에 응찰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당시 한려엔쵸비는 공장까지 확대하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2012년까지 심각한 재정난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이 대표는 “당시에 영양사 선생님들이 ‘한려엔쵸비가 가 왜 이렇게 됐냐’고 정말 많이 혼났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며 제품 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학교급식을 하고 싶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급식은 한려엔쵸비의 근간이며 앞으로도 집중해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당시 한려엔쵸비는 학교급식 외 다른 분야의 진출을 위한 준비를 다각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겪으며 오히려 학교급식에 집중하게 됐다는 이 대표는 “학교급식 외 모든 계획과 투자를 정리하고 더 집중해서 학교급식을 고민했다. 생산의 기계화, 원료비축, 신제품 개발 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요한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려엔쵸비는 위기 이후 다시 제품의 질을 우선으로 생산을 시작했고 이 대표에게 또 한 번의 큰 깨달음을 줬다. ‘제품만 확실하다면 소비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진리를… 어려움을 겪고도 학교급식을 고집해온 한려엔쵸비에게 거창한 목표가 있을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학생들이 남김없이 않고 먹고 학교에서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다양한 수산제품을 납품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소 시시하게 느껴지는 이 목표에 대해 이 대표는 “지금 학교현장은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로 고민이다. 특히 선호도가 낮은 수산물 잔반 때문에 영양사 선생님들이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누가 뭐래도 학교급식 전문 업체는 단순히 제품 납품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취재 말미에 이 대표는 조심스럽게 영양사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업체들을 동반자로 봐줬으면 좋겠다”.


학교현장도 가치 있는 일을 어렵게 하는 요즘, 업체들도 타 분야보다 낮은 이익이지만 아이들 먹을거리라는 이유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최상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업체는 ‘동반자’라는 타이틀을 걸어도 되지 않을까?

▲ ❶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 생산 구역

▲ ❷ 특별주문·제작한 어류 및 연체류의 자동세척기

▲ ❸ 이물질 및 금속검출 구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