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올해 4월부터 노인급식도우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급식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배식을 해주는 제도. 노인들에게는 손자 손녀 같은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 보람을 느끼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현재 서울시내 72개 초등학교에서 1,318명의 노인들이 급식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노인급식도우미들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은 일제히 “도담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한다. 도담 선생님은 아이들이 노인급식도우미를 부르는 호칭이다. 차례대로 음식을 받는 학생들은 3명의 도담 선생님에게 꼬박꼬박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식예절교육부터 식지도까지
노인급식도우미들은 식생활 예절교육은 물론 편식지도까지 도맡아한다. "김치 싫은데데….” “그럼 한 조각이라도 먹어보세요. 맛있어요.” 전춘자(64) 할머니는 한 학생이 김치 앞에서 머뭇거리자 김치 조각 하나를 집어 식판에 올렸다.
전할머니는 “먹기 싫어해도 딱 한 조각만이라도 먹도록 유도한다”며 “학생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할머니의 말처럼 모든 도담 선생님이 손자 손녀에게 음식을 주듯 급식에 ‘정’을 담아 주고 있었다.
하미주(28) 영양 교사는 “도담 선생님들은 김치, 나물 등 학생들이 싫어하는 반찬도 먹도록 유도해 아이들이 골고루 영양섭취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배식이 끝나고 식사시간이 되자 도담 선생님들은 더 바빠진다. 돌아다니며 김치를 작게 잘라주고자장밥을 비벼준다. 책상에 흘린 반찬을 치워 주기도 한다. 1등으로 점심을 먹은 박지승(8)군은 식판에 밥알 하나 남기지 않았다. 고기와라면을 좋아한다는 박군은 “김치도 맛있어다 먹었다”고 자랑했다.
이어 다른 학생도 깨끗이 비운 식판을 들고 하나 둘 앞으로 나와 식판을 도담 선생님께 전했다. “잘 먹었습니다”는 말에 이재인(61) 할머니는 “맛있게 잘 먹으니깐 보기 좋다”며 흐뭇해했다.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자 도담 선생님은 바닥에 떨어진 음식과 책상에 묻은 얼룩을 닦으며 뒷정리까지 했다.
◆삶의 보람 느껴 더 젊어져
배식을 마친 어르신들이 다시 모인 곳은 급식준비를 했던 교실. 서초초교는 이들을 위해 교실 하나를 휴게실로 제공하고 있었다. 급식도우미로 활동하는 임향순(69)할머니는 현장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임할머니는 약 한시간 동안 서 있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다른 두 할머니도 마찬가지. 이재인할머니는 “행복하게 일해서 그런지 매일 젊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임할머니는 또한 “‘도담 선생님께’라고 적힌 작은 편지를 건네받았을 때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루일과를 모두 마쳤지만 노인급식도우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서초초교 노인급식도우미들은 그렇게 스스로 삶의 보람을 찾으면서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교급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의 부담까지 해소해줬어요”
이숙하(59)교장에게 도담 선생님들은 걱정거리를 해결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동안 학부모들의 급식도우미 참여에 대해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 문제를 말끔히 해소시켜준 이들이 바로 도담선생님들이기 때문이다. “2006년부임할 당시 식중독사건이 터져 시끄러웠어요. 때문에 부임초기부터 안전한 학교급식 운영을 위해 ‘학부모 학교급식참여’를 유도했습니다. 식자재납품업체 선정과 납품에 관한 모든 일처리를 담당하는 급식선정위원회에 학부모의 참여를 이끌어냈죠.”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부모 참여로 학교급식의 안전성과 신뢰성은 확보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이교장은 “대다수 학부모가 맞벌이 부부인 상황에서 학부모급식도우미 제도는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학부모는 일용직 도우미를 고용하기도 하고 학부모들끼리 순서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가을 서초구청으로부터 노인급식도우미 제도 시범학교 제안을 받았다. 이교장은 “구청에서 미리 교육을 받아서 위생관리는 기본이고 서비스 마인드도 철저했다”며“도담 선생님이 오면서부터 ‘정’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은 물론 식생활 예절교육의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글 _ 김홍천 기자 syagerl@naver.com / 사진 _ 조영회 기자 remnan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