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에서 식품과 영양 문제를 다루는 학문인 ‘식품영양학’. 인류가 존재하는 한 먹을거리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절대적 가치이기에 식품영양학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식품영양학은 21세기를 맞으면서 건강 지향적 맞춤형 영양과학은 물론 급식경영 분야, 건강관리시스템을 선도할 수 있는 통합적 지식과 연구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7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를 통해 국내식품영양학의 미래를 확인해본다.
핵심인력 양성의 산실…식생활 문화·환경 선도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달 26일 오전 이화여대 교정은 입학식을 맞아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의 열정으로 그 따스함을 더하고 있었다. 식품영양학과(이하 식영과)가 위치한 생활환경관에서 만난 식영과 학생회장인 김은주(3학년) 학생을 비롯한 학생회 구성원들은 오후에 출발해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식영과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 마무리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온고지신’의 장으로 거듭
“이대 식영과는 생활환경대학(기존 가정과학대학) 소속이었다가 지난 2007년 건강과학대학으로 변경됐습니다. 건강과학대학 소속 식영과 학생회로는 이번이 1대이기에 예전의 전통을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죠.”
이번 새터에서 식영과 새내기들은 ‘X맨’이라고 불리는 새내기로 위장한 선배들을 통해 학과 생활에 적극성을 더할 것이다.
“새내기들이 학과 공부에 흥미를 가지려면 과원과의 관계형성이 중요하잖아요. 오래된 전통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X맨 깜짝이벤트를 통해 새내기들이 학과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김은주 학생은 X맨이 항상 100% 성공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지금은 명맥이 끊겨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전통도 있다고 김은주 학생은 설명한다.
“식영과가 생활환경대학 소속이었을 당시 선배들은 ‘아령당’이란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입학 첫 학기에 6~7명이 조를 짜서 아령당에서 공동체생활을 하는 것이죠. 선배들에게 아령당 생활을 해봐야 식영과를 알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곤하는데 단과대학 차원에서 진행되는 행사여서 학점인정이나 비용발생 등이 걸려 현재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기회가 된다면 부활시키고 싶은 맘이 굴뚝같죠.”
◆한식세계화는 우리 주변에
이대 식영과에는 ‘E-picure’(이피큐어, 미식가)란 과 동아리가 있다. 2년 전에 만들어진 이피큐어는 이대 주변의 떡볶이 등 길거리음식을 포함한 맛집 시장조사를 진행해 ‘이대 앞 맛집지도’를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식품영양학도로서 현장에 대한감각을 키움은 물론 맛과 영양, 안전까지 겸비한 맛집을 이대학생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음식문화 정착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다.
올해 새내기 회원까지 받게 되면 식영과 학생 절반가량인100여명이 활동하게 될 이피큐어는 지난해 국내 한 식품업체의 제품이 출시되기 전 이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응 평가조사를 실시하기도 했으며 올해는 학생회와의 연계를 통해 음식문화 전반과 관련한 특강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피큐어의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조미숙 이화여자대학교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일본은 우리 불고기에 ‘야끼니꾸’란 이름을 붙여 전세계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세계화 가능성이 충분한 전통음식 연구를 통해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등 노력이 미진했던 우리 스스로의 잘못이 크다”며 “첨단과학이 접목된 식품영양학만이 관심을 끄는 분위기에서 탈피해 생활에 밀착된 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이피큐어의 맛집 탐방 등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는 생활 속의 식품영양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조 교수의 견해다.
◆국제적 연구기반 확립 주력
이대 식영과는 국제 수준의 식품영양학 연구기반 확립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식품영양학이 진출 가능한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창의성, 국제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체계적인 교과과정을 운영,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한 영양과 외식 산업·문화 분야의 노력이 눈에 띈다. 일례로 지난 1971년 설립된 ‘아시아식품 영양연구소’의 경우 아시아 지역의 △식생활과 식품·영양실태 파악 △과학적 방법을 통한 해결책 모색 △식생활 향상을 위한 기초연구 △해외기관과의 협력 등을 지속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이름 높다.
물론 이대 식영과는 아직까지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부족한 국내 실정에서 전통 식생활 문화를 바탕으로 건강한 첨단 식생활 문화·환경을 선도할 글로벌 여성리더를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지난해 국내외 식품·영양 관련 산업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선배님들을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이대 식영과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는 것이었죠. 이대 식영과의 진가는 사회에 진출했을 때 나타난다고 확신합니다.”
세계적인 떡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김은주 학생에게서 국내 식품 산업·문화 발전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현장밀착형 식품영양학 선행돼야”
“이대 식영과 학생들은 발전가능성이 무한합니다. 우리나라식품영양학을 선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재들이죠. 학생들에게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자부심과 강인함을 심어주는 것이교육 목표입니다.”
이대 식영과 79학번이기도 한조미숙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타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 3년 6개월 전부터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대 식영과의 산증인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먹을거리에 대한 인류의 관심과 연구는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식품영양학을 선택한 것이 최선이란 것을 강조하는 절대적 근거죠. 학문이 세분화될수록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주의하라는 뜻에서 학생들이 음식을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교수이기 전에 선배로서 조 교수는 학생들이 식품영양학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학문적 관심을 체득할 수 있는 현장으로 눈을 돌리라고 강조한다. 이대 식영과 학생들이 학교 주변의 맛집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 블로그를 통해 조사대상 식당들의 맛과 영양,환경 등을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떡볶이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한 분석이 전제될 때만이 다양한 한식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한식 세계화도 이 같은 맥락에서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단체급식이 산업은 물론 문화적 가치를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식생활 교육과의 연계가 절대적이라고 조 교수는 말한다.
“급식을 통해 우리 음식의 문화적 뿌리와 우리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 등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알려나가야 합니다. ‘먹이는 것’에만 급급한 급식이 아닌 ‘밥상머리 교육’이 병행되는 급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진욱 기자 lju@fsnews.co.kr 사진_ 이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