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소에도 새해는 온다
급식소에도 새해는 온다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7.01.10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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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경찰서 구내식당/ 용인시 기흥노인복지관/ 영등포 ‘토마스의 집’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소망을 빌고 원하는 일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단체급식소도 마찬가지. 늘 사람들의 ‘입’을 쳐다보며 하루와 1년을 보내는 영양사와 단체급식소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소원만큼 단체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이들의 소망도 자주 생각하고 또 이뤄지길 바란다.
영양사는 건강과 입맛을 고려한 식사를 이용자들이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고 조리사들은 비록 몸은 힘들고 고되더라도 가족들에게 주는 밥상과 같이 준비한 식사가 맛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은 지난해 맛있게 먹었던 메뉴가 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이처럼 여러 사람들의 소망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우리 사회 곳곳의 단체급식소를 찾아 그들의 새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서울 강남경찰서 구내식당

▲ 정수민 영양사
“효과적인 식단 구성, 영양사의 가장 큰 보람”

식재료비 조금씩 모아 ‘경찰의 날’ 특식 제공하기도


서울 강남경찰서 구내식당은 몇 년 전까지 강남의 유명한 ‘맛집’ 중의 하나였다. 주변의 높은 물가에 부담을 느낀 직장인들이 단돈 4000원으로 질 좋은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맛집’이 바로 이 곳.

하지만 지금 강남경찰서 구내식당의 추억은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150석에 불과한 구내식당에 평일에도 200여 명 이상의 외부 이용객들이 찾아오자 경찰들의 식사가 늦어지면서 결국 외부 이용객들에게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강남경찰서는 인근의 치안센터와 통합되면서 경찰들과 의경, 방범순찰대원까지 점심식사 인원은 300명을 넘는다. 거기에 군생활을 해야 하는 의경들이 있기에 아침과 저녁까지 이곳은 1일 3식을 진행한다.

급식을 책임지는 정수민 영양사는 15년차 베테랑 영양사이다. 정 영양사와 조리원 3명이 기본적으로 근무하고 4명의 의경이 조리에 참여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1~2명의 의경들이 설거지 등을 돕는다.

정 영양사는 평균 연령이 젊고 활동량이 많은 의경들과 경찰들을 감안해 식단을 구성한다. 1식 4찬 중 반드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고기와 생선을 포함시키고 음식의 양을 조절해 영양이 충분하도록 식재료를 준비한다. 식단가는 경찰은 3500원, 의경과 전경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2700원이다. 이 중 순수 식재료로 쓰이는 비용은 대략 2110원 정도다. 또한 이곳은 매일 아침 우유와 계란프라이 1개를 제공한다. 그리고 경찰의 날(10월 21일)에는 랍스터 메뉴를 포함한 특식 500인분도 제공했다. 특히 지난 2일 점심에는 소고기떡국과 김장김치, 수육을 내놔 경찰과 전·의경들로부터 만족스런 반응을 얻기도 했다.

정 영양사는 “3년 전 구내식당을 맡았을 때 많은 적자를 기록했었는데 지금은 우수한 식재료를 쓰면서도 적자를 줄이고 있다”며 “식재료비가 넉넉한 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더 낮은 납품가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완제품 대신 수제품을 적극 활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또한 “여사님들과 의경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함께 식단을 구성하기 때문에 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각종 영양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 영양사는 지난해 11월 참가한 영양교육에서 배운 심리전문가의 조언을 직접 실천해 큰 효과를 보기도 했다.

정 영양사는 “자율배식인 경우 상당수의 사람들이 처음 놓인 반찬을 가장 많이 담게 된다고 해요. 그동안 김치를 제일 앞쪽에 배치했었는데 김치 대신 샐러드 같은 저렴하면서도 건강에 좋은 메뉴를 앞에 배치했더니 한 달 김치값이 50만 원이나 줄었어요. 이와 같은 운영의 묘를 살리면 많지 않은 예산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인 식단을 짤 수 있는 것 같아요”라며 노하우를 전했다.

올 8월이면 강남경찰서는 신청사로 이전한다. 그러다 보니 냉동설비나 시스템이 노후화되어 완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정 영양사는 “지금도 전국 경찰서에서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우리 식당을 찾아오는데, 앞으로 신청사로 이전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해야겠다”고 올해 계획을 전했다.




■ 용인시 기흥노인복지관

▲ 이슬기 영양사
“어르신들이 집밥 같은 메뉴 선호해”

"새해에는 더 많은 봉사자가 참여했으면..."


용인시 기흥노인복지관(이하 기흥복지관)은 용인시의 3개 노인복지관중에서 가장 최근인 지난 2015년 4월 개관했다.

기흥복지관은 규모면에서 인근에 있는 처인노인복지관보다는 작지만 최신설비와 효율적인 공간을 갖추고 있어 매일 평균 400여 명이 복지관을 이용한다. 물리치료와 체육시설, 취미교실에는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노인들도 많다.

점심시간이 되면 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4층 식당으로 향한다. 이곳의 밥값은 2500원.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용인시의 지원으로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식단을 책임지는 이슬기 영양사는 1명의 조리원과 함께 식사를 준비한다. 점심식사만 제공하는 이곳의 1일 평균이용인원은 300여 명. 메뉴에 따라 1명이 준비하기에는 벅찬 경우가 많아 이 영양사도 직접 주방에서 일손을 돕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배식을 자원봉사자들이 맡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이용자의 평균연령은 70대로 식단을 짤 때 연령대가 높다는 점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다. 이들은 된밥보다는 진밥을 선호하고 튀김이나 딱딱한 반찬보다 씹기 좋은 음식을 많이 찾는다. 생선튀김이나 군만두 같은 메뉴는 절대 피한다.

이 영양사는 퓨전요리나 일품요리를 섣불리 시도하기 어렵고 사용할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아 식단이 단조로울 수 있다는 것이 내내 신경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이용자들에게 메뉴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고 반응이 좋은 메뉴를 응용하기도 한다.

이 영양사는 “단백질은 고기와 생선으로 제공하고 반찬을 소박하게 만들었더니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어르신들이다보니 ‘집밥’같은 느낌을 주는 식단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500원 중 식재료로 쓰이는 비용은 2200원 정도로 밥값 중 식재료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위한 정부지원금이 포함된 덕분이다. 정부지원금은 정해진 항목으로만 사용하고 남기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식재료의 질을 늘 최상급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 영양사는 “혼자 살거나 내외 두 분만 사는 분들은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간단하게 먹고 복지관에 와서 점심을 많이 먹는 분들이 많아 식단을 구성할 때 이런 부분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의 위탁급식업체에서 7년간 일하다 퇴사한 후 입사한 기흥복지관은 이 영양사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2년 전 복지관 개관과 함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는 “(용인시의)생활수준이 높다 보니 음식을 즐기는 수준도 높다”며 “식단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못하면 대번에 어르신들이 먼저 한 마디씩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덧붙여 이 영양사는 “복지관의 식당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새해에는 더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남겼다.




■ 영등포 ‘토마스의 집’

1500원으로 베푸는 사랑

30년간 쪽방촌 사람들 위해 점심 무료급식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토마스의 집’(원장 김종국 문래성당 신부)은 노숙자나 쪽방촌의 거주자를 위해 매일 점심을 준비하는 무료급식소이다.

지하철 영등포역을 나와서 왼쪽의 문래창작촌 방향으로 100m정도 떨어진 건물 1층에 위치한 ‘토마스의 집’은 지난 1986년 문을 열어 어느새 30년째 운영되고 있다. 염수정 현 추기경이 영등포성당 주임신부 시절에 노숙인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문을 열은 곳이다.

‘토마스의 집’ 인근에는 여전히 쪽방촌이 있고 영등포역을 숙소삼아 지내는 노숙인들이 많다. 11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토마스의 집’ 앞에 길게 줄을 선다. 이곳은 모든 것이 후원과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식사와 메뉴는 박경옥 총무가 매일 자원봉사자들과 준비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도 하루 일하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계속해온 사람들이다.

지난달 28일 찾은 ‘토마스의 집’은 여전히 쪽방촌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곳에서는 매일 450여 명이 한끼를 해결한다. 운영비를 마련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한끼 식재료 비용만 1인 1500원 가량이라고 한다. 일반 급식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용이지만 박 총무는 “자원봉사와 후원이 있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 ‘토마스의 집’은 완전한 무료급식소는 아니다. 지난 2013년부터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한끼에 200원씩 받고 있다. 200원을 받기 전에는 하루에 600여 명 이상이 찾아왔었다.

이곳은 주방과 붙어 있는 식당 좌석이 40여 개 남짓밖에 없어 식사를 하려면 1시간 이상씩 기다리기도 한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몇몇 노숙인들은 자원봉사자들에게 화를 내기도 해 그럴 때면 한숨부터 먼저 나오는 박 총무다.

‘토마스의 집’이 있는 구역이 영등포 재개발계획에 포함되면서 벌써 몇 년째 철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요셉의원(노숙인의료시설), 노숙인자활시설 등과 함께 있는 ‘토마스의 집’은 철거가 되면 갈 곳이 없다.

박 총무는 “재개발이 쉽게 되지는 않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불안한 미래에 대해 묻곤 한다”며 “내가 22년째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는데 나 역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총무는 “예년 같으면 지금 이시기에 많은 후원이 들어와 1년 치 예산을 확보하곤 했는데 올해는 경기불황과 혼란스런 정치 때문인지 후원금이 지난해의 3분의 2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올해는 돈과 명예, 권력보다 사람과 나눔, 베풂이 함께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새해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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