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의 목적과 취지, 영양사들이 잊지 않았으면…”
“급식의 목적과 취지, 영양사들이 잊지 않았으면…”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7.02.17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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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가 보는 학교급식 - 화제의 영양사들을 만나다

지난해 학생건강증진 기여로 장관 표창, “모든 영양사 대표해 받은 거죠”

추억의 도시락·블루레몬에이드 등 참신한 급식 메뉴 개발로 주목받아

 

요즈음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하루에 1번, 많은 곳은 3번 급식을 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의 식사를 학교급식으로 해결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그동안 ‘급식’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단체급식’,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음식이기에 메뉴와 음식맛 등이 동일할 수밖에 없고 단가 때문에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지 못해 ‘먹을만한 게 없다’는 인식도 강했다.

이같은 일부 부정적 이미지의 급식을 실력과 노력으로 바꾸어놓는 영양사들이 있다. 경기도 파주 세경고등학교 김민지(28) 영양사와 경북 안동 길원여고의 전소민(23) 영양사가 그들이다. 이들이 SNS에 소개한 메뉴는 화제가 됐고 학생들조차 “우리 학교랑 급식비는 같은데 저 학교는 어떻게 저렇게 식사가 나오나”라며 감탄했다. 급기야 두 사람은 2016년 학생건강증진분야 유공자로 선정돼 교육부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이제 영양사가 된 지 만 4년차와 1년차인 두 사람. ‘학교급식’과 ‘영양사’라는 직업을 대하는 두 사람만의 마음가짐과 그들이 말하는 ‘학교급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양사의 위상을 높여 기쁘지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 김민지 영양사

화제의 영양사 두 사람을 함께 만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김민지 영양사는 경기도 파주에, 전소민 영양사는 경북 안동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한 자리에 만난 그들은 지난해 12월 교육부장관상 표창 시상식에서의 만남 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서로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며 두 사람 모두 재회를 너무나 반겼다. 

 

교육부장관상을 받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를 묻자 두 사람은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고. 

“장관상 받은 거, 진짜 기쁘긴 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나요. 본의 아니게 저희가 ‘영양사’를 대표하는 사람들처럼 되어버렸으니까요. 저희가 잘못하면 다른 영양사들이 잘못한 것보다 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식단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위생 같은 부분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더라고요.”(김민지·전소민)

김 영양사는 “SNS와 영양사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서로 레시피를 공유하며 식단구성에 조언을 받기도 하고 제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며 “저 혼자 받은 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영양사도 “아직 1년차에 불과한 저인데 제가 잘해서 상을 받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며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영양사, 힘들고 또 힘들지만 보람 있어”

김 영양사는 2014년 파주 세경고등학교에서 영양사 생활을 시작했다. 세경고의 급식단가는 3800원이다. 3800원 중 2700원 가량이 식재료비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김 영양사가 SNS에 올리는 식단을 보면 눈이 즐거울 정도다. 식단과 식재료는 둘째 치고 무엇보다 음식에 쏟는 정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후식으로 바나나 한 개를 주더라도 일일이 눈과 눈썹을 그리고 칼집을 내서 돌고래를 만들어주거나 연예인의 사진을 활용한 네임택을 일일이 꽂은 햄버거를 만드는 식이다. 이벤트 식단도 많다. 김 영양사가 지난해 1학기 초에 선보였던 ‘응답하라 1990’ 식단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추억의 도시락은 그 후로도 종종 식단에 등장해 학생들을 감동시켰다.

 

▲ 전소민 영양사

‘정성’이라면 전 영양사도 뒤지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한 전 영양사는 불과 2~3년 전까지 급식 대상자였다. 급식을 먹으면서 느꼈던 마음과 고치고 싶었던 점을 토대로 ‘기대할 수 있는 급식’을 만들었다. 티라미슈, 초코케이크 등을 만들고 파닭, 블루레몬에이드 등을 시도했다. 길원여고의 급식단가는 2900원. 그중 식재료비가 2100여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시도하기 쉽지 않은 메뉴였다. 초복, 중복, 말복, 수능 100일, 빼빼로데이 같은 기념일을 상징하는 음식을 만들고 급식실 입구와 학생들이 기다리는 장소마다 예고 문구를 제작해 재미와 기대를 더했다. ‘오늘 복날 히트다 히트’, ‘조세호씨, 우리 학교 특식인데 왜 안 왔어요?’ 등의 문구는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아직 서툰 부분이 많았을 전 영양사가 화제가 될 정도의 급식을 운영할 수 있는 배경에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교감과 행정실장, 일반 교사들까지 점심 배식 전부터 찾아와 학생들을 통솔하고 일손이 모자라면 직접 배식을 맡기도 했다. 전 영양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조리종사원들을 설득해주는 일도 맡아줬다. 행정업무가 서툰 전 영양사를 위해 세심하게 가르쳐주고 문서작성을 수정해주기도 했다.

전 영양사는 “제가 오기 전에 안동 길원여고가 급식 만족도에서 안동지역 최하위권이었다고 들었는데 제가 온 후 지난해 2학기의 급식 만족도가 무려 18%나 높아져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3식 학교, 너무 힘들어요”

그렇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보람만큼 두 사람은 영양사라면 겪기 마련인 고뇌와 후회, 시행착오도 무수히 겪었다. 전 영양사는 3식을 하는 길원여고가 첫 근무지였던 탓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식단구성부터 식재료 발주와 검수, 식수인원 맞추기 등 배워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급식을 하지 않는 방학에는 여유가 있을 줄 알았으나 겨울방학 내내 한 해 급식계획을 준비하느라 퇴근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밤샘근무와 야근을 수없이 되풀이한 전 영양사는 결국 몸이 탈이 나고 스트레스에 우울증까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 영양사는 “3식이다 보니 겹치는 메뉴가 없도록 신경쓰는 것도 힘든데 특정 식재료에 대한 교육청 공문이라도 오면 한 달 치 식단을 다 갈아엎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업무의 과중함은 5년차인 김 영양사도 매한가지. ‘급식’과 관련된 일은 모두 영양사에게 떠넘겨진다. 식재료 검수와 원산지 확인, 조리원 관리부터 업무분장표 작성, 조리원 근무일정 확인, 근로계약서 작성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나마 세경고는 학교 행정실에서 급식예산에 대한 업무를 맡아주고 있어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김 영양사는 “영양사라는 직업이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사실이며 전소민 선생님이 우울증까지 겪었다는 게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다”고 토로했다.

‘좋은 급식·좋은 영양사?’ 끊임없이 고민해

전 영양사는 좋은 급식이란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식단을 구성할 때부터 영양소와 칼로리를 충분히 고민하며, 가급적 제철 식재료를 반영하고, 조리과정 역시 표준조리법 준수는 물론 친환경 조리법 사용을 권장한다. 예를 들면 튀기기 대신 굽거나 가공식품 대신 천연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김 영양사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김 영양사는 “가급적 완제품 대신 수제품을 사용하면 건강에도 좋고 식재료비도 아낄 수 있지만 급식종사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진다”며 “학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과 기쁨을 얻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의 고민은 급식비나 업무량은 아니었다. 어떤 게 좋은 급식일까? 급식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급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 영양사는 담담하게 본인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급식은 분명 ‘교육’의 한 영역이며 학생들의 성장과 건강을 위해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맛 위주의 식단,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식단 위주로 급식을 운영하는 게 옳은가 늘 고민해요.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철저히 기피하고 또 음식을 버리는 모습을 보면 또다시 식단을 바꿀 수밖에 없고, 그러면 또다시 칼로리와 건강 문제가 지적되고, 악순환이에요. 제가 내린 결론은 영양사라면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거에요. 고등학생쯤 되면 식습관과 입맛은 거의 바꿀 수 없죠. 그래서 학생들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건강과 영양을 고려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찾고 고민해야 하는 게 지금 제가 할 일이에요”(김민지)

전 영양사 역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식습관 자체가 서구화되어가고 있고 그 경향을 영양사의 힘만으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튀김을 선호하는데 기름에 튀기는 음식이 성장기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모든 영양사선생님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튀김 대신 오븐에 굽는 등 간단한 조리법 변경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방법이 충분히 많아요. 저는 앞으로도 그런 방법들을 찾는 노력을 계속할 거에요. 몇몇 영양사 선배님들은 ‘처음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 ‘그것도 지치면 쉽지 않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도 제가 계속 지금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장담하진 못하겠네요. 그래도 ‘쟤, 그래도 열심히 하네’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전소민)

 

▲ 김민지 영양사 - 추억의 도시락, 유부국, 닭다리구이, 깍두기,음료수

 

 

▲ 전소민 영양사 - 치킨마요덮밥, 김국, 수제오꼬노미야끼, 떡꼬치, 단무지, 배추김치, 파인애플

 

아이들이 급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영양사를 가장 기쁘게 한다. 지난해 초 김민지 영양사의 ‘추억의 도시락’은 그런 면에서 영양사가 된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날 메뉴는 추억의 도시락, 유부국, 닭다리구이, 깍두기, 음료수로 구성됐다. 은박도시락에 담긴 급식에  반응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세경고등학교 1일 식수는 1550명. 이 중 점심에만 1100명이 밥을 먹는다. 이날 원활히 급식을 하기 위해 배식에만 6명이 투입됐다. 높은 식단가를 자랑하는 닭다리구이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모든 조리과정을 직접 준비했고 당일에는 닭다리를 직접 구워 배식했다. 그 덕에 김 영양사와 조리종사원들은 새벽부터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단다. 김 영양사는 “그 날 역시 잠시 숨돌리기도 어려웠지만 노력한만큼 학생들이 그 노력을 알아준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전소민 영양사는 처음 만들어낸 식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래 파티쉐가 꿈이었다는 전 영양사는 파티쉐 대신 택한 영양사라는 직업을 갖고 처음 시도한 식단이었다. 치킨마요덮밥을 메인으로 김국, 수제오꼬노미야끼, 떡꼬치, 단무지, 배추김치, 파인애플로 구성했다.

길원여고의 1일 식수는 630명이다. 식단가는 2900원이며 이 중 식재료비가 2100원 가량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오는 메뉴가 아닐 수 없다. 전 영양사는 이 식단을 준비하기 위해 식재료를 알아보고 단가를 맞추며 조리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단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전 영양사는 “당시 너무 긴장하고 바빠서 그 순간순간에 학생들의 반응이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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