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비전문가에 평가받는 ‘불편한 진실’
전문가가 비전문가에 평가받는 ‘불편한 진실’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7.03.03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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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영양 전공 장학사 6명뿐

▲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 영양전공 교육전문직이 거의 없어 일반 행정직 교육공무원들이 급식시설과 위생안전 등을 확인하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 경기도 A고교에서는 점심에만 약 1200명의 학생들이 밥을 먹는다. 교육청 지침과 식품관련법에 따르면 배식시간은 2시간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교직원들의 식사가 11시40분부터 시작되고 학생들은 오후 1시40분까지 식사한다. 하지만 11시40분은 엄연한 수업시간.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들을 위해 11시40분보다 앞당겨서 배식을 할 수밖에 없다. 배식시간 2시간을 넘기기 일쑤이기 때문에 교육청 감사 때마다 지적을 받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른 배식시간은 조리종사원들에게도 음식 준비에 큰 부담을 줘 안전사고도 빈번했다.

A고교 김모 영양교사는 이 같은 사정을 전하고 배식시간을 변경하자고 교장과 교사들에게 협조를 구했지만 ‘그동안 잘 해왔는데 왜 못하느냐’는 답변만 받았다. 답답한 마음에 교육청 급식관련 부서와 감사관실에 의견을 전했으나 반응은 A고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영양교사는 ‘앞으로 교장과 교육청에 어떠한 협조요청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학교급식이 정착되고 학교급식을 책임지는 영양교사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나 전국 1만 1500여개 학교 중 5000여개 학교에 영양교사가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학교급식 현장과 상위기관을 연결하는 교육전문직(장학사·장학관)에 영양전공자가 거의 없어 “소통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시교육청이 김성희(서울 신정초) 영양교사를 장학사로 임용하면서 전국에 영양전공 장학사는 6명으로 늘었으나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영양전공 장학사가 배치된 지역은 서울(2명), 전북, 강원, 경기, 충남지역 등 5개에 불과하다. 전남도에는 현재 영양전공 장학사가 1명 있으나 이 또한 아직까지 정식발령을 받지 못한 인턴장학사 신분이다. 심지어 장학사의 상위직인 장학관은 전국에 한 명도 없다.

영양교사는 교육학과 급식경영, 영양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그러나 학교급식 상위기관인 시·도교육청 및 교육지원청의 담당은 행정직 혹은 보건직, 체육관련 전공자들이 대다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급식 운영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상위기관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정훈 서울시의원은 “이것은 곧 전문가가 비전문가에게 평가받는 불합리한 상황”이라며 “영양전공 장학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영양전공 장학사 정원이 없다 보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생긴다. 전북도교육청 인성건강과 황옥 장학사는 영양교사로서 2010년 8월 교육전문직 시험을 통과하고 2011년 3월 장학사로 임용됐다. 그런데 황 장학사는 올 2월 28일자로 장학사 자리를 내놓고 다시 일반교사로 돌아갔다. 타 교과 장학사의 경우 5년 이상 근무하면 승진을 하거나 교육지원청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영양전공 장학사들은 승진규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고 교육지원청 역시 정원이 없어 황 장학사는 장학사직을 내놓게 된 것이다.

영양전공 장학사들이 이토록 적은 이유는 그동안 필요성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원은 국가공무원 총정원제에 따라 국가가 정원을 관리한다. 시·도교육청이 장학사 정원 1명을 확보하는 데도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다. 장학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전문직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통과를 했더라도 교육청이 장학사 정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계속 장학사 임용을 받지 못하고 대기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김성희 장학사는 2015년에 교육전문직 시험을 통과했음에도 임용까지 1년 이상이 걸렸으며 전남도교육청의 조은순 장학사는 정원 확보를 하지 못해 아직도 ‘인턴장학사’ 신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일선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영양전공 장학사를 확보하려는 교육청의 의지가 부족했다”고 질타하고 있다. 경남도의 한 영양교사는 “정원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매년 장학사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고 승진 혹은 퇴직으로 발생한 자리에 영양전공자를 임용할 수 있었음에도 교육청이 외면해온 것”이라며 “결국 예산보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A학교 영양교사 역시 “정원부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타 교과에 비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양교사들의 목소리를 교육청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정훈 서울시의원도 “교육감들의 의지가 부족했다고 본다”며 “교육감들이 교육부와 함께 의견을 모아 기획재정부든 국무조정실이든 정부를 설득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교육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교육전문직 정원 확보는 일개 부처에서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국가예산과 관련된 부분”이라며 “교육전문직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니 차차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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