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우유급식 꼭 필요한가
지난해 12월 본지가 실시한 전국 학교 영양(교)사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선 제외되어야 할 영양(교)사의 업무’ 중 두 번째가 바로 우유급식이었다. 영양(교)사들이 우유급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지 무척 오래됐음에도 이에 반응을 보이는 기관이나 단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에서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우유의 ‘무용론’과 ‘유해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우유에 대한 논란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우유급식까지 이어졌다. 본지가 우유급식에 대해 취재하면서 만난 많은 영양(교)사들은 “우유급식의 정책방향을 고민하고 재검토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① 학교우유급식 현황과 실태 -“우유 마셔줘야 하는 학교!”
② 학교우유급식 목적에 대한 의문 - “누구를 위해 우유를 마시나”
③ 학교우유급식의 변화를 위한 제안 -“우유가 없는 학교는?”
◆ 학생 영양공급과 낙농업 발전
학교우유급식은 지난 1962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1970년 초등학교에 전면 도입됐다. 당시 학생들에게 좋은 영양을 공급하고 낙농산업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실시된 우유급식은 1986년에는 중·고교까지 확대 실시되었으며 현재 초등학생 78.2%, 중학생 35.7%, 고등학생 23.1%가 학교에서 매일 우유를 섭취하고 있다.
우유급식은 크게 유상급식과 무상급식으로 나뉜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재수, 이하 농식품부)의 ‘2017년 학교우유급식사업 시행지침’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등 불우 가정의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고, 그 외의 학생들은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희망자를 조사해 급식을 실시한다.
50년 가까이 학생 건강의 보루로 여겨지면서 ‘당연히 마셔야 되는’ 것으로 여겼던 우유급식이지만 최근 학교에서는 작지 않은 ‘고민거리’로 전락한 실정이다. 우유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수준을 넘어 싫어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 버려지는 우유가 는다
경기도 A초등학교는 학기 초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이 신청해 우유급식을 실시한다. 이 학교의 영양교사는 “아이들이 학기 초인 3~4월에는 급식을 선호하고 잔반도 잘 남기지 않는데 우유도 마찬가지”라며 “5월쯤 되면 우유를 먹기 싫어 사방에 버리거나 책상 안에 넣어두고 잊어버려 나중엔 우유팩이 터지는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B 중학교 영양교사 역시 “학교 안에 학생들이 우유를 버리는 장소가 있고 그 곳에는 뜯지도 않은 우유가 쌓여 있어 여름이면 처리가 곤란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뜯지도 않은 우유팩을 장난감처럼 다룬다는 푸념도 많았다. 서울시내 한 영양교사는 “학생들이 먹기 싫은 우유를 가지고 축구공처럼 갖고 놀다 터지거나 옥상에서 밑으로 던져 우유팩이 터지는 모습을 즐기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우유를 버리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모호한 우유급식의 관리주체도 논란거리다. 우유급식 시행지침에 따르면 우유급식은 학교급식의 일환으로 실시된다.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영양교육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며 담임교사는 음용지도를 수시로 해야 한다.
업체가 매일 아침 학교에 납품하면 우유 전용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1교시가 끝나기 전에 학생들이 마시도록 담임교사들이 지도를 한다. 그런데 학교마다 급식과 배식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 업체가 우유 전용 냉장고에 한꺼번에 넣어두면 학생들이 급식실로 찾아와 마시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거나 각 반까지 우유를 나눠주기도 하며 그렇지 않은 학교도 많다. 반별로 우유 배식이 이뤄지지 않으면 담임교사의 협조가 필요한데 협조가 원활치 않으면 결국 이는 영양(교)사의 몫이 된다. 대구지역의 모 영양교사는 “학기 초에는 담임선생님도 우유 음용지도에 협조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양교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자율이 아닌 강요되는 우유
정부는 우유급식의 ‘추락’을 막아보려 하지만 이 마저 학교의 불만거리가 되고 있다.
농식품부의 사업지침에 첨부한 가정통신문을 보면 ‘학교우유급식 음용 설문조사’라는 제목으로 ‘우유급식 참여에 동의하는가’를 묻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추가로 질문하고 있다. 설문조사 답변에는 학생 성명과 정보를 기입하도록 되어 있고 설문조사 취지에는 보건복지부의 칼슘섭취비율과 섭취권장기준이 나열되어 있다. 심지어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다’라는 문구까지 포함돼 있어 우유 섭취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숨은 설문조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충남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우유급식 희망 설문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설문조사 문항 자체가 우유급식에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의도가 강해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학교 측이 의도를 갖고 우유급식을 확대하려고 하면 담임을 통해 학생·학부모를 설득하거나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참여를 요구할 수 있어 현재의 우유급식이 결코 ‘자율적인 급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우수 우유급식으로 표창을 받은 바 있었던 한 영양교사는 “칼슘섭취와 영양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우유만한 음식이 없다고 생각해 그동안 우유급식을 적극 권장해 왔는데 현재의 우유급식 정책방향을 보면 ‘국내 낙농산업 발전’이라는 명분에 ‘학생건강 증진’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며 “이제 학교우유급식의 정책적인 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