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 그 오해와 진실] 지방 덩어리 많을수록 등급 높다?
[‘마블링’, 그 오해와 진실] 지방 덩어리 많을수록 등급 높다?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7.05.2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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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마블링’ 적은 고기 선호 … 소고기 등급기준 개편 필요

 

“삽겹살과 한우 등심, 훈제오리 중 무게당 평균 가격이 가장 비싼 고기 종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우 등심을 손꼽을 것이다. 소고기 그리고 한우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수준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한우는 맛있다’ 혹은 ‘비싸다’ 등의 이미지다.

 

그런데 영양학 관점에서 “한우가 몸에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영양전문가인 영양(교)사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소고기에 함유된 지방성분 때문이다.

지방은 흔히 불포화지방산과 포화지방산으로 구분된다. 포화지방산은 간단하게 우리가 잘 먹는 고기류, 유제품 등에 많이 들어있다.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구워먹은 후 그대로 두면 기름이 응고돼 하얗게 고체가 되는데 이것이 포화지방산이다. 포화지방산은 체내에 들어오면 몸 밖에 배출되지 않고 쌓이게 되는데 이 때문에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반면 불포화지방산은 콩기름과 견과류, 생선에 많이 들어있다. 동물성 기름인 포화지방산에 비해 식물성 기름으로 구분된다.

고기류 중에는 오리고기에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불포화지방산의 특징은 실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포화지방산에 비해 녹는점이 낮아 체내에서 흡수가 더 쉽고 쌓이지 않아 영양전문가들이 적극 권장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육류애호가들이 “오리고기 기름은 찾아가서 먹지만 소고기 기름은 줘도 안 먹는다”는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이유다.

포화지방산 권장하는 현 ‘축산물 등급제’

몇 년 전부터 포화지방산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연구되면서 포화지방산 덩어리인 소고기가 ‘눈총’을 받고 있다. 맛있는 소고기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마블링’이 실은 포화지방산 덩어리로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마블링’이란 붉은 섬유를 가진 육류계통에서 나타나는 하얀 지방 패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한국에서는 소고기의 ‘마블링’이 화려하게 장식된 고기를 좋아하지만 한국보다 소고기 소비량이 압도적인 미국의 경우 ‘마블링’이 적은 고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 ▶ 소 도체의 근내지방도 기준표. 단면의 모양이 8번과 9번이면 1++등급, 6번과 7번이면 1+등급이다. 차례대로 4번과 5번이면 1등급, 2번과 3번이 2등급, 1번은 3등급이다. 하얀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지방부분이며 이른바 ‘마블링’이라고 불리는 부위다. 등급 평가는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양성하는 축산물품질평가사들이 내리게 된다.

사실 ‘마블링’은 지방이기 때문에 ‘마블링이 좋다’는 곧 ‘지방함량이 높다’와 일맥상통한다. 이 때문에 ‘마블링’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의 고급육으로 평가받는 한국과 일본식의 소고기 등급 판정은 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언론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축산물 등급 판정의 방법과 기준은 축산법 제38조에 따라 적용하고 있다. 소고기는 육량(고기의 양)과 육질(고기의 질)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육질 등급의 기준이 등심 부위 절개면의 지방분포 정도, 즉 ‘마블링’이 얼마나 끼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마블링’ 이 외에도 고기의 색깔, 고기의 조직 및 탄력, 지방의 색깔과 뼈의 성숙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등급, 1+등급, 1·2·3등급으로 판정한다. 판정은 국가에서 양성하는 축산물 품질평가사들이 내린다.

‘마블링’이 축산물 등급을 정하는 기준이 된 것은 1992년 부터이다. 축산물 등급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소의 함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불법적인 방법들이 동원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물 먹은 한우’였다. 소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살처분하기 직전에 물을 최대한 먹여 중량을 늘리는 행위였다. 한 축산업 관계자는 “물을 먹이는 행위에 대한 반발로 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기름 함량이 기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블링’에 대한 집착은 단순히 사람 몸에만 나쁜 것이 아니다. 사육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이 생긴다. 농가들은 ‘마블링’을 늘리기 위해서는 소를 살찌워야 하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소의 건강은 무시한 채 막무가내식의 사육이 횡행하게 된다.

소비자 현혹해온 ‘마블링’ “커넥션 있다” 주장도

‘마블링’이 축산물의 주요 등급 선정 기준이 된 것은 이른바 커넥션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소고기 유통업자와 축산업계, 국제곡물회사들이 함께 끼어있는 커넥션이 소비자를 현혹해왔다는 것이다.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에게 풀 대신 대량의 옥수수를 먹여야 한다. 소가 지방간을 넘어 간경화에 이르는 지경이 되어야 지방은 비로소 근육안으로 침투해 ‘마블링’이 된다. 그런데 이처럼 ‘마블링’을 만들 정도의 옥수수 사료는 국내에서 생산이 힘들고 미국 등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국내에 있는 소들에게 먹이기 위해 수입되는 양이 연간 3조 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카길과 같은 글로벌 곡물기업들이 GMO(유전자변형식품)를 통해 사료용 옥수수를 생산하고 생산된 사료용 곡물을 어떤 식으로든 소비시켜야 하기에 ‘마블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마블링’으로 대표되는 등급제는 소비자들의 건강권도 침해하지만 축산농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옥수수 가격은 10년 전 톤당 10만 원에서 35만 원으로 치솟았다.

결국 ‘마블링’을 만들지 못하면 높은 등급을 받지 못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어 결과적으로 영세 농가들의 도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마블링’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던 경기도의회 안승남 의원은 “고가의 수입 옥수수 사료를 쓰기 위해 농가들이 빚을 내서라도 구입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라며 “이미 왜곡되어버린 축산물 유통질서와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와 유통업자, 농가,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인식전환 캠페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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