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 ‘영양사의 꿈’ 물거품
오락가락 정책에 ‘영양사의 꿈’ 물거품
  • 대한급식신문
  • 승인 2009.07.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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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특별임용 전면 백지화… 249명 급식소 대신 교육청 발령

 

▲ 미전환된 식품위행직 공무원들은 학교급식소가 아니라 교육청에서 전공과 무관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은 학교급식소에서 식재료 수량을 확인하는 영양교사의 모습.

 

“나는 영양사입니다. 영양사가 천직인 줄 알고 공부했고 초등학교 영양사가 되기 위해 몇 십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지막 식품위생직 공채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직업에 대한 선택의 기회조차 없습니다. 학교급식 현장이 아니라 교육청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정리하고 공문을 처리해야 합니다. 행정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그냥 시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영양교사로 전환된다고 해서 바쁜 시간 쪼개가며 양성과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없던 걸로 한다니 너무 억울합니다.”


지난 4일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만났다. 마지막 식품위생직 공채로 임용된 이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영양사가 됐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는 영양교사 전환을 위해 특별양성과정을 개설하고 이들에게 교육까지 받게 했다. 식품위생직 선배들은 두 차례 특별임용으로 영양교사가 됐고 이제 이들의 차례가 됐다. 그런데 돌연 정부는 이들에게 특별임용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학교급식소가 아닌 교육청으로 발령을 냈다.

◆ 미전환자 전국 240여 명

식품위생직 공무원 김모 씨는 “영양사가 되기 위해 어렵게 공채시험에도 합격했는데 영양사가 아닌 행정업무를 하라니 정말 황당했다”며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원무과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 대신 업무를 하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식품위생직 공무원 이모 씨는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발령받던 날 정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며 “오죽했으면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겠는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은 얼마 전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미전환 식품위생직 영양교사 추진위원회(가칭·이하 미영추)’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로부터 영양사로서 학교급식 업무가 아니라 교육청 행정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2003년 7월 학교급식법과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영양교사 배치에 대한 내용이 신설됐다. 그러나 단기간 내 전국학교급식 현장에 영양교사를 배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학교에서 식품위생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영양사를 영양교사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교육부는 특별히 ‘영양교사 양성과정’을 전국46개 대학에 개설해 현직에 있던 4,357명의 식품위생직 공무원에게 영양교사 자격증을 부여했다. 이렇게 양성과정을 거친 후 특별임용시험을 통해 2006년 2월에 2,174명을, 2007년 2월에 1,960명을 영양교사로 임용했다.
두 차례의 특별채용으로 영양교사가 된 4,134명은 학교급식 현장으로 발령을 받게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갑작스런 정책 변경으로 영양교사도 되지 못하고 영양사로 학교에서 근무도 못하는 ‘미아’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미영추의 조사에 따르면 이렇게 영양교사로 전환되지 못한 식품위생직 공무원이 전국에 총 249명이 있으며, 이들 중 학교영양교사로 전환을 희망하는 이들은 167명이라고 밝혔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법 개정 당시 식품위생직 공채로 임용된 영양사들로, 학교급식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영양교사 전환 작업이 진행되었을 때, 교육부에서는 1차와 2차 양성과정을 개설해 3년 이상 학교에서 근무한 인원에게 특별임용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3년 미만의 경력자들은 3차 양성과정에서 영양교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선배들과 달리 특별채용이 아닌 공개채용이라는 애매한 원칙을 적용했다. 학부에서 졸업한 교직 이수자들과 대학원 졸업생 등과 함께 경쟁하라는 것이다. 식품위생직 공무원 김모 씨는 “임용 후 3년 동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매일 공부만 해온 교육대학원생과 학부생들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격분했다.
미영추 관계자는 “전환되던 당시 학교급식은 점차 확대되는 중이었기 때문에 학교급식 전담직원이 모두 영양교사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그는 “비슷한 시기 교육청 인사발령에서 같은 직급의 동료들은 8급으로 승진을 했으나 우리들은 곧 영양교사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인사발령에서 제외되기도 했다”며 “이런 불이익도 감수하며 기다렸는데 지금은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억울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미전환된 영양사들이 업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도 상당하다. 현재 식품위생직 공무원들은 학교급식이 아니라 교육청에서 주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정업무를 하다 보니 일처리도 느리고 경험도 부족해 업무적 갈등이 심하다. 때문에 휴직을 한 인원들도 상당수다.
현재 휴직 중이며 얼마 후 복직한다는 유모 씨는 “행정 경험이 없는 영양사가 급식 관련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건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아 휴직을 했었다”며 “복직하게 되면 본연의 업무가 아닌 행정업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 영양사로 근무하고 싶을 뿐

“아이들에게 맛있고 균형 잡힌 건강한 급식을 먹이고 싶어 학교 영양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근무하려면 영양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막 졸업한 대학생들과 경쟁해 교사가 되라니 말이 됩니까? 책을 놓은 지 몇 년이 됐는데 그들과 어떻게 경쟁을 합니까? 우리는 영양사로서 학교급식 현장에서 근무하고 싶을 뿐입니다.”서울시 모 교육청에 근무하는 식품위생직 공무원의 자조 섞인 말이다. 이들의 바람처럼 학교로 돌아가 영양사의 직무를 수행 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글_한상헌 기자 hsh@f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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