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김치, 학교 급식에서 ‘퇴출 위기’
농협 김치, 학교 급식에서 ‘퇴출 위기’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7.06.04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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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수혜조치 중단 … 연간 320억 원 김치납품 사라질 듯

 

▲ 농협 김치가 학교급식에서 사라질 위기다. 사진은 서안동농협에서 김치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

 

 

학교급식 김치 중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농협 김치가 조만간 학교급식에 더 이상 납품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추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청(청장 주영섭, 이하 중기청)이 농협의 김치가공공장에 대해 직접생산확인증명서(이하 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직접생산확인증명서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중소기업들 간의 경쟁입찰 시 수의계약 대상으로 인정해주는 증명서다.중소기업이 해당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중소기업 보호 및 판로보장을 위해 마련된 제도인 셈이다. 이 제도에 의한 수의계약은 1000만 원 이하의 계약에만 가능하다.


중기청이 농협에 대해 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는 이유는 쉽게 말해 농협은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농협 김치공장들이 특별법인 농협법에 의해 설립돼 국가계약법상 수의계약과 경쟁입찰을 통해서 김치 납품이 가능했지만 이런 특혜조항이 2015년 말 폐지됐다. 중기청 관계자는 “특별법이 폐지된 만큼 농협 김치공장을 더 이상 중소기업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증명서를 발급해 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급식 식재료는 경쟁입찰 또는 법에서 정한 수의계약을 통해 계약을 맺는다. 계약기간은 학교마다 대부분 1개월 단위로 맺는데 김치처럼 지속적으로 소요되는 식재료는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최대 6개월~1년까지 납품계약을 맺기도 한다.

학교급식용 김치의 경우 전국 12개 농협 김치공장이 경쟁입찰을 통해 전국의 학교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이는 전체 학교급식 김치물량의 40%에 달하는 규모로 연간 판매액만 320억 원에 달한다. 농협 입장에서는 신규 발급도 불가능하고 기존 확인서 갱신도 어렵게 됐기 때문에 학교급식에 납품이 더 이상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게다가 확인서의 유효기간은 2년. 농협중앙회 가공급식지원팀 조현종 팀장은 “증명서의 유효기간은 올해 6월말 효력이 없어지고 기존 김치 납품계약 역시 6월~7월이면 끝난다”며 “배추 계약재배 농가의 피해 등이 생기고 있는데 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농협 입장에서는 당장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절대 강자 사라지면 기회될 수도”
김치업체들 학교 영업 강화 움직임

학교급식 김치의 40%에 가까운 물량을 납품하던 농협의 납품 중단은 어떠한 형태로든 학교와 급식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7월부터는 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에 당장 체감은 되지 않아도 9월 신학기부터는 김치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급식현장의 최근 추세에 따르면 학생수가 적은 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제외하면 상당수 학교에서는 직접 김치를 담그기보다 공장 김치 사용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갑작스런 농협 김치의 납품 중단은 일시적 김치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조리종사원이 적고 급식업무가 많아 김치를 직접 담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농협 김치가 인지도가 높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사용했었는데 납품이 중단되면 어떤 김치를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경남도 모 중학교 영양교사는 “김치는 HACCP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노로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지하수는 사용할 수 없는 등 담그는 과정이 까다로워 가급적 공장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농협 김치가 아니라면 어떤 김치가 적합한지 알고 싶은데 공장 김치에 대한 정보가 없어 고민이다”고 말했다.

김치업계에서도 판도 변화가 감지된다. ‘절대강자’였던 농협 김치가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김치업체들이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 학교급식은 대규모인데다 수요량이 일정하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최고의 거래처로 꼽힌다.

전북지역에 공장을 둔 신덕식품(주)(대표 하태열) 관계자는 “농협 김치의 학교급식 납품이 중단된다면 중소업체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아직 본격적인 준비는 못했지만 영업팀과 함께 급식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본사를 둔 풍미식품(대표 유정임) 영업부의 윤경희 팀장은 “영업팀을 구성해 학교대상 영업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 측에서도 대안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조현종 팀장은 “국회에서 법안 발의 등의 대안 마련이 이뤄지고 있으나 당장 통과되기 어렵고 납품 중단은 코앞까지 와있다”며 “직접 납품이 어렵다면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한 공공납품이나 지방자치단체 품평회 참가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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