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교)사 선택은 ‘유착’, 납품업체 선택은 ‘공정’?
영양(교)사 선택은 ‘유착’, 납품업체 선택은 ‘공정’?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8.03.29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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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급식 식재료 입찰 시 특정 브랜드 지정 가능하다
그동안 법으로 보장된 영양(교)사의 고유권한인 식재료 선택권은 ‘업체와의 유착방지’라는 명분에 밀려 ‘금지’라는 옥쇄가 채워졌다. 그리고 영양(교)사 대신 직납업체가 브랜드를 지정해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지난 2016년 11월 관련 규정을 개정해 식재료 브랜드를 지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묵살로 학교 현장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이제는 이 같은 지침이 일선 학교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당국의 노력만이 남았다.
그동안 법으로 보장된 영양(교)사의 고유권한인 식재료 선택권은 ‘업체와의 유착방지’라는 명분에 밀려 ‘금지’라는 옥쇄가 채워졌다. 그리고 영양(교)사 대신 직납업체가 브랜드를 지정해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지난 2016년 11월 관련 규정을 개정해 식재료 브랜드를 지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묵살로 학교 현장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이제는 이 같은 지침이 일선 학교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당국의 노력만이 남았다.

“학교급식 기본방향의 브랜드 지정 금지 조항부터 삭제돼야”
영양(교)사 법적 권한 되찾고 납품업체 부당한 갑질 근절해야

학교급식이 정착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논란이 계속된 해묵은 주제 중 하나가 ‘식재료의 브랜드 지정’이었다. 2016년 학교급식 실태조사에서 일부 영양(교)사가 업체로부터 금전적 대가를 받은 것이 확인되면서 지난 10여 년간의 논쟁은 ‘특정 브랜드 지정 불가’로 굳어지고 말았다.

이후 식재료 브랜드 지정 불가는 영양(교)사의 권한 제한이라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지만 업체와의 유착방지라는 ‘칼날’ 앞에 힘을 잃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장관 김부겸, 이하 행안부)의 관련 법령 개정으로 영양(교)사들의 식재료 브랜드 지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해묵은 주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 편집자 주 -

 

“주성분 표시만 같은 제품에 중국산도 납품”
“학부모 만족도 높은 제품 요구해도 소용없어”

 

원칙적으로 식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영양(교)사의 권한이다. 이는 법령에 규정되어 있다. 

영양사의 직무를 규정한 식품위생법 제52조(영양사)를 보면 집단급식소에서 근무하는 영양사는 식단작성, 검식 및 배식관리와 구매식품의 검수 및 관리를 맡도록 되어 있다. 식단작성의 기본은 식재료 선정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학교급식법에는 좀 더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제8조 1항에 따르면 학교급식소에서 근무하는 영양(교)사의 직무에 ‘식단작성, 식재료의 선정 및 검수’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같은 학교급식법에 따라 일선의 영양(교)사들은 식재료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식재료 선택권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해왔다. 

농산물도 재배지역에 따라 제품의 질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식재료도 제조회사에 따라 성분이 다르며 식감과 맛이 똑같은 식재료는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아이들의 기호와 영양 등 다양한 측면과 급식 만족도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식단을 작성하고 그 식단에 가장 적합한 식재료는 영양(교)사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식재료의 장단점까지 파악하고 있는데 브랜드 지정을 금지하는 것은 영양(교)사의 ‘손발을 묶는’ 조치라는 주장이다.

경기도 B고등학교 영양사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급식을 제공하려고 발품 팔아가며 좋은 제품을 골라 발주하고 있는 영양(교)사들에게 업체와 유착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같은 영양(교)사들의 법적 권한을 막은 가장 큰 이유는 ‘업체와의 유착’이었다. 그리고 2016년 국무조정실의 실태조사로 일부 영양(교)사들이 식재료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것이 드러났고, 이는 특정 브랜드 식재료를 선택하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교육부는 재발방지 대책으로 영양(교)사와 홍보직원의 대면접촉 금지 지침과 함께 식재료 입찰 시 특정 브랜드 지정 금지 조치로 이어졌다. 

교육부의 이 같은 방침은 각 시·도교육청이 매년 초 작성하는 ‘학교급식 기본방향(이하 기본방향)에 반영됐다. 기본방향은 교육부가 매년 1월 발표하는 ’학생건강증진 정책방향(이하 정책방향)을 토대로 작성된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17개 시·도교육청 기본방향 모두 교육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식재료 입찰 시 특정 상표 또는 특정 규격 모델 지정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는 행안부가 지방계약법을 개정하면서 더 이상 법적인 근거가 없어졌지만 교육청 입장에서는 영양(교)사와 업체 간의 유착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아직까지 영양(교)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이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도 이미 관련 기준이 바뀐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선 학교에 적용하지 않았다”며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을 알지만 청렴도와 관련된 것이어서 17개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브랜드 지정 금지 조항을 삭제하지 않는 한 일부 교육청이 먼저 삭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정 식재료 브랜드 지정을 못하게 하면서 그동안 학교급식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학교급식 식재료 납품 구조에서만 볼 수 있는 ‘직납업체’와 ‘간납업체’와 관련된 문제였다. 

다품종 소량 납품 구조인 학교급식은 크게 제조업체로부터 식재료를 받아 학교에 납품하는 직납업체(유통업체)와 직납업체를 통해 자사의 식재료를 학교로 납품하는 간납업체(제조업체)로 구분된다. 

이에 따라 지금처럼 입찰 시 브랜드를 지정하지 않으면 일선 학교는 직납업체가 가져다 주는 제품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브랜드 지정을 영양(교)사 대신 직납업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식재료 브랜드 지정이 문제가 되는 이른바 ‘공산품’은 같은 회사에서도 위생기준이나 관리기준, 품질, 내용물, 맛 등에 따라 수백 종의 제품이 있는데 브랜드를 지정하지 않을 경우 직납업체는 당연히 많은 이익이 남는 식재료를 납품하다보니 질이 낮은 식재료가 공급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전남 도내 한 식재료업체 관계자는 “영양(교)사들의 권한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지정을 하지 못하니 직납업체들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져 오히려 영세한 납품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혹시라도 업체와 유착한 영양(교)사와 업체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고, 브랜드 지정을 통해 공정한 시장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말 열린 정책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인천 부흥초등학교 오세영 영양교사는 “주성분 표시만 지켜서 가져오거나 원산지를 바꿔서 납품하는 경우도 많을 뿐만 아니라 급식모니터위원들의 만족도 조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제품을 요구했더니 오히려 전혀 다른 제품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납품단가와 업체의 단가가 일치하지 않는 제품을 가져오는데 영양(교)사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라고 성토했다.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영양(교)사의 브랜드 지정 금지 조치를 없애기 위해 교육청이 아닌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교육청을 통해 행안부의 집행기준 개정안에 대한 안내공문을 보내고 ‘학교급식 기본방향’ 수정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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