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된 친환경 위한 학교급식
‘주객전도’된 친환경 위한 학교급식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9.04.09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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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액지원 위한 의무사용비율로 전체 급식 질 하락
"친환경식재료 사용비율 70%? 현실적으로 불가능"
‘친환경농업을 위해 학교급식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진은 울산 남구청이 지난 4일 친환경식재료 확보를 위해 지역 내 농협들과 협약을 맺고 있는 모습.
‘친환경농업을 위해 학교급식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진은 울산 남구청이 지난 4일 친환경식재료 확보를 위해 지역 내 농협들과 협약을 맺고 있는 모습.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친환경식재료 사용 확대’라는 명분이 학교급식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학교급식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울산광역시(시장 송철호, 이하 울산) 남구(구청장 김진규)가 지난달 4일부터 학교급식에 친환경식재료 공급을 시작했다. 광역급식지원센터가 없는 울산은 기초자치단체가 자체 설립한 급식지원센터를 통해 친환경식재료 공급을 해왔으며, 울산 남구도 지난해 남구친환경급식지원센터(이하 남구친환경센터)를 설립하고, 각 학교에 친환경식재료 공급을 시작했다.

문제는 일선 학교급식 관계자들이 친환경식재료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사용 확대 요구로 인해 전체 급식의 질 하락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

이 같은 지적은 지난달 25일 울산 남구가 영양(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개최한 ‘초·중·고 친환경급식 지원사업 공청회’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대해 울산 남구는 4월 중순경 친환경급식심의위원회를 열어 제기된 문제점을 논의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울산 남구는 친환경식재료 구입 시 학교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는 1대1 매칭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학교가 일반 식재료보다 가격이 높은 친환경식재료를 구입할 경우 지원하는 형태로, 예를 들어 일반 식자재 구입비가 100원이고 친환경농산물이 40% 가량 비싼 140원일 경우 이 중 50%인 70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즉 일반 식재료보다 가격이 높은 친환경식재료를 학교급식에서 많이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친환경식재료는 일반 식재료에 비해 평균 20~30% 가량 비싸고, 특정 품목은 2배 이상 비싸기도 하다. 특히 소스류와 같은 품목 가격은 2.5배 높은 것으로도 전해진다.

여기에 현재 남구친환경센터를 통해 공급되는 친환경농산물 품목은 단 8개뿐으로, 물량 또한 극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일부 품목은 친환경인증 제품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구친환경센터에서 공급하는 친환경식재료를 사용해야 하며,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영양(교)사들은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친환경식재료 비율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식재료는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한 입찰로 구매하는데, 친환경식재료 사용에 따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급식 예산 전체가 묶일 수밖에 없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싼 친환경식재료 의무사용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존 일반 식재료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충청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차액지원 사업을 진행할 때는 지원예산을 추정해 먼저 지급하는데 이 예산조차도 부족하게 지급한다”며 “이런 경우 친환경식재료를 ‘꼭’ 사용해야만 해서 전체 식재료의 질이 하락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는데 이를 지방자치단체는 이해 못한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기본적으로 공업도시인 울산지역은 자체 생산되는 농산물의 양이 적은데다 친환경농산물의 품목과 양 또한 부족하다. 자연히 타 지역 학교가 받는 친환경농산물보다 단가가 더 비쌀 수밖에 없어 식재료 질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열린 공청회에서 학교 영양(교)사들은 “지원금을 지원하되 학교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했다.

울산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학교급식 운영체계와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왜 식재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학교급식에서 건강보다는 ‘지역경제 활성화’, ‘친환경식재료 사용 확대’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울산 남구 측은 “친환경급식비 지원은 기존 무상급식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 아니다”며 영양(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그동안 진행해온 ‘학교급식 식품비 지원사업’의 결산을 봤을 때 지역산 대신 타 지역산 식재료 구입비율이 80%에 달했다”며 “지급 방식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울산 남구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이 사업은 신청한 학교들만 참여하고 있으며, 친환경식재료의 가격과 품목은 일방적으로 남구에서 정하지 않고 학교 영양(교)사와 협의해 정한 것”이라며 “친환경농산물 참여농가 수가 올해 33개 농가에서 앞으로 330개 농가로 늘어날 것이어서 품목 부족도 곧 해결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과도한 친환경식재료 사용 장려가 오히려 문제점을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울산 남구는 오는 2021년까지 울산친환경급식지원센터 건립을 마치고 급식에서 친환경식재료 비율을 7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일선 학교 영양(교)사들은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식재료의 단가로 인해 급식운영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울산지역의 한 학교 영양사는 “친환경식재료를 70% 가량 사용하려면 현재보다 약 2배가량 급식비가 올라야 한다”며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울산의 모든 학교가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 만큼의 친환경식재료가 공급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지역의 또 다른 영양교사는 “의무사용비율 때문에 학교는 당초 납품기준에 부적합한 친환경인증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일반 농산물이 친환경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그 피해는 우리의 학생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울산 남구청 관계자는 “농가와 함께 친환경인증 검사 및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농약잔류검사 등을 통해 양질의 식재료가 납품될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라며 “앞으로 울산 전체로 친환경농업이 확대되면 품목과 물량의 확대는 물론 가격 인하도 이뤄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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