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식단 짜는 사람’에서 벗어나야 할 때
영양사… ‘식단 짜는 사람’에서 벗어나야 할 때
  • 정지미·김기연 기자
  • 승인 2019.04.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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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고도의 지적능력 필요한 직업’으로 분류
현장 “인공지능에 밀리지 않을 전문성·창의성 부족” 자성

[대한급식신문=정지미·김기연 기자] #. 지난해 5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진단 보고서’는 향후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줄 위험이 가장 높은 직종과 가장 낮은 직종 각 20개 분야를 게재했다. 이 보고서에서 영양사 직종은 자동화될 가능성이 0.4%에 불과, 전문 의사, 장학관·연구관 등 교육 관련 전문가와 함께 공동 1위로 기록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힘든 직업군은 보건이나 교육, 연구 등 사람 간 의사소통 또는 고도의 지적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영양사는 건강관리와 보건 분야에서 고도의 지적능력이 필요한 직종이라고 봤고, 이는 영양사라는 직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영양사의 위상과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영양사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나온다.

영양사, 치료 영역에도 영향

영양사의 업무영역을 살펴보면 우선 ‘식품전문가’로 규정할 수 있다. 영양사는 식품의 영양성분과 구성요소, 식품의 효능, 식품의 위해요소까지 식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다.

영양사는 이를 토대로 인체에 효율적이고, 유용한 식단을 구성한다. 식단구성 후에는 이 식품의 영양소를 인체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조리법과 식품 형태 등도 고안한다. 이 업무영역은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건강관리는 기본이며 체력 보충, 피로 회복에 나아가 ‘치료’의 영역에도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식재료가 식품으로 변하기 전까지 영양사는 ‘위생보건 전문가’가 된다. 안전하고 질 좋은 식재료가 어떤 것인지, 식재료를 어떻게 보관해야 변질되지 않는지,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위생보건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은 무척 많다.

영양사가 이번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포함된 것은 그래서 의미가 더욱 크다. 영양사는 그동안 대중들에게 ‘식단구성하는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 같은 인식을 개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영양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반대로 표현하면 영양사 스스로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영양사는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서 보듯 영양사라는 전문직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인의 창의성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인데 아쉽게도 대다수의 영양사가 인공지능을 대체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영양사 역시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행령에 모든 영양사 포함돼야

이번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제정 배경에는 의료인들, 특히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왜곡된 구조가 숨어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명 ‘태움’(영혼이 탈 때까지 괴롭힌다는 속어) 문화로 인해 지난해 한 대학병원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회적인 지탄이 잦아지자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었다. 그리고 이번 제정안에 병합된 나머지 7개 법안은 의료법 개정안과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이었다. 이번 제정안에 처음부터 ‘영양사’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뜻.

이 때문에 일선 영양사들은 법안 제정에 이어 진행될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에서도 영양사 직종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법안의 제정취지를 볼 때 병원 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영양사들이 정책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원도의 한 영양교사는 “법안 제정 이후 시행령·시행규칙을 만드는 것은 정부부처에서 할 일이며, 정부부처는 관련 단체 및 기관과 반드시 협의를 거치거나 의견서를 받는다”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학교 영양교사를 보건의료인이 아닌 단순히 교육공무원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는 영양사 근무실태에 대해 명확히 하고,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는다.

복지부가 5년마다 세우는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은 보건의료인력의 수급과 근무환경 개선, 복지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황 파악이 필수적인데 현재 영양사 인력의 현황파악은 영양사 스스로 집단급식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실을 신고하는 ‘영양사 실태신고’가 유일한 방법이다.

이마저도 민간단체인 대한영양사협회(회장 조영연, 이하 영협)에 맡겨져 있다.

경기도 A대학 식품영양 관련 학과 교수는 “식품위생법상 반드시 영양사를 고용해야 하는 집단급식소에도 제대로 영양사를 고용하지 않는 사례가 무척 많다”며 “영양사 고용 의무는 명시해놓고 처벌조항이 명확치 않은데 이것 또한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양사 알리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영양사 국가 면허증이 도입된 시기는 1962년이다. 당시 정부가 ‘영양사’ 면허를 도입한 의도는 명확했다. 산업발달과 함께 집단급식소가 크게 늘어나면서 효과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영양사는 드러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즉 급식 전에 식재료를 관리하고, 식단을 작성하며, 위생관리를 맡는 역할이기에 직접 피급식자들과 대면할 일이 많지 않았다.

또한 급식소 내에 대부분 1명만 근무하는 탓에 영양사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해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집단급식소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감이 외부로 알려지지가 어려운 구조였던 셈이다.

경기도의 한 전문 영양사는 “영양사 일을 하면서 제일 안타까웠던 것이 ‘영양사는 식단만 짜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었다”며 “영양사가 어떠한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일반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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