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사라진 학교급식의 '목적'과 '가치'
어느 순간 사라진 학교급식의 '목적'과 '가치'
  • 정지미, 김기연 기자
  • 승인 2019.05.20 16:1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과연 무엇이 진정한 학교급식인가 ①
뒷전으로 밀린 학교급식 목적, 존재가치가 있을까…
‘화려한 급식’ 속에 묻혀버린 영양(교)사들의 시름
학교급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낮은 이해 속에서 학교 영양(교)사들은 ‘만족도’와 ‘학생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급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낮은 이해 속에서 학교 영양(교)사들은 ‘만족도’와 ‘학생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급식신문=정지미 · 김기연기자] 다가오는 6월 9일 첫 방송을 예고한 모 케이블방송사의 학교급식 관련 프로그램이 있다. 그것은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외식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백종원 대표(요리연구가)가 진행을 맡는 ‘고교급식왕’. 프로그램 진행은 참여 신청을 한 고교생들이 학교급식 식단을 짜고, 식재료 선정부터 조리까지 마치면 백 대표는 참가자들이 제안한 레시피가 학교급식으로 적합한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다방면으로 조언하는 방식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학교급식의 본질과 목적을 재확인하고, 현재를 진단해보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준비했다.
- 편집자주 -

 

고교급식왕 프로그램 방영 계획이 알려지면서 일선 학교 영양(교)사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칫 방송 시청률에 치우쳐 정작 중요한 학교급식의 본질과 목적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학교급식법이 제정된 시기는 1983년. 학교급식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영양교사 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일반 국민들에게 ‘학교급식’은 매우 단편적으로, 혹은 피상적으로만 알려져 있다. 학교급식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그 과정이 일반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성장과 건강’이 목적


전국적으로 무상급식 열풍이 일면서 학교급식의 시작을 기껏해야 10여 년 남짓 정도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많지만, 우리나라 학교급식법이 제정된 시기는 1983년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법 개정을 거치면서 무상급식을 위한 지원, 식생활교육 및 급식의 위생·안전 등이 강화되었다. 1983년 학교급식법 제정 당시 내세운 학교급식 목적은 ‘학생의 건전한 심신의 발달과 국민 식생활 개선의 기여’다. 건전한 심신 발달이라는 목적 아래 구체적인 법령과 제도들이 생겨났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연령대에 맞는 필수영양소와 함께 1일 제공 칼로리량까지 구체화됐다. 1980년대에 제정된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 왔지만, 학교급식의 가장 큰 목적인 ‘균형 잡힌 성장과 건강 유지’는 변하지 않았다.

이 같은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 제일 먼저 강조된 것은 균형 잡힌 식단이다. 품질 좋은 식재료를 선정해 고르고, 식재료의 영양소를 피급식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조리법을 고민하면서 급식을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운영할 ‘영양사’의 존재가 부각됐다.

무상급식, 정치·언론의 이슈로

학교급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영양사의 고용 또한 늘어났다. 당시 공무원 신분으로 채용된 영양사들은 ‘식품위생직’이었다. 그리고 20여 년간 학교급식을 지킨 식품위생직 영양사들은 영양교사 제도 도입과 함께 대거 영양교사로 신분이 전환됐다. 학교급식의 흐름에 있어 큰 변화를 주도해온 것은 역시 무상급식의 확대였다. 무상급식 확대 이전에도 학부모들의 부담으로 급식이 운영됐지만, 그때는 급식의 흐름이 최근처럼 사회적 이슈까지 되진 않았다. 급식을 직접 접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은 급식을 학생들의 한 끼 식사, 혹은 3끼 식사를 학교가 제공한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인식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정치적인 이슈로도 확대되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급격하게 커졌다.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고 정치권과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급식을 먹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신조어인 ‘급식충’이라는 불유쾌한 단어가 등장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즉 급식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탄생한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학교급식이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다음 수순은 각종 언론매체의 보도 증가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언론보도가 학교급식의 목적과 가치보다는 단순히 학교급식의 맛과 누가 더 화려한 음식을 제공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같은 ‘조회 수 올리기용’ 언론보도들은 주로 중·고교 급식에 대해 집중됐고, 상대적으로 초등학교 급식에서는 ‘부실급식’을 문제 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학교급식’ 원칙보다 화려하게?

학교급식법 시행규칙 제5조에서 식단작성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명시해놓고 있다. 전통 식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가급적 자연식품과 계절식품을 사용할 것 등이다. 또한 과도한 식품첨가물 사용은 지양하라는 조항도 함께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학교들의 급식 식단을 보면 대체로 이런 원칙보다 관심거리의 하나로 이목을 끄는 것에만 집중되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급식에서는 화려함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화려함에 중심을 둔 식단은 높은 칼로리는 물론 영양소 불균형, 전통 한식·제철 식재료 외면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지역 A중학교 영양사는 “최근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급식을 지켜보면 균형 잡힌 식단과 영양소 공급이라는 급식의 가치와 목적은 도외시한 식단들이 대부분”이라며 “학교급식의 본질과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수많은 영양(교)사들의 사기와 열정을 깎아내리는 언론보도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B고등학교 영양교사도 “학교급식의 본질과 기본이 뒷전인 언론보도는 영양(교)사들의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라며 “이런 언론보도로 올바른 급식 제공을 위해 노력하는 영양(교)사들이 ‘무능한 영양(교)사’로 치부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학교급식, 몰라도 너무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신문과 방송의 보도가 학교급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몰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는 같은 학교급식이지만 여러 부분에서 많이 다르다. 우선 영양관리기준이 다르고, 급식 식단을 짜는 방식도 다르며, 급식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급식비는 동일한 고등학교라도 해당 지역, 사립 혹은 공립, 무상급식 지원대상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A고등학교가 4000원에 선보인 화려한 급식은 B고등학교에서는 급식비 지원 부족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할 수 있다. 또한 급식비에는 식재료비와 운영비, 그리고 급식소의 조리종사자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쓸 수 있는 식재료비가 학교마다 다르다. 이는 모든 학교가 마찬가지다. 초등학교의 경우 무상급식비를 지원받으면서도 학부모들이 추가 급식비 부담을 의결해 급식의 질을 올리는 학교도 적지 않다.

즉 모든 학교의 급식이 똑같을 수 없고, 부식의 가짓수로 급식의 질을 결정할 수 없음에도 보여 지는 것에만 치중한 언론보도와 각종 SNS에 게재되는 평가들은 일선 학교 영양(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충청지역 C중학교 영양사는 “영양(교)사들이 식단을 작성할 때는 식재료비는 물론, 제철 식재료 사용 여부와 조리원 수에 따른 조리 소요시간까지 고려한다”며 “타 학교와 우리 학교의 급식비가 똑같은데 왜 우리 학교는 그렇게 못하느냐는 오해를 받을 때마다 ‘학교 영양사를 그만두어야 하나’라는 시름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수영 2019-05-31 00:48:19
정확한 시각으로 현재의
문제점들 올바르게 써주신 소중한 기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학교급식의 본질보다, 화려하고 기호도가 높은 음식들로만 구성된 식단이 높게 평가받는 언론과 매체 및 사회의 잘못된 인식들은 영양지킴이들의 사기를 떨어 뜨림과 동시에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데,
이는 결국 우리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영양드림 2019-05-23 17:57:24
현 문제점을 제대로 찝어주신 기사 같네요~~
급식이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당해왔지만, 정작 무상급식 정책에 따른 대국민 홍보나 인식 수준은 매우 열악합니다.
가정에서는 거의 건강한 엄마상차림을 아이들에게 차려주지않는 경우가 많고, 외식에 의존하다보니 자연스레 기준이나 초점이 그쪽에 맞춰져 있어요.
그러면서 건강한 밥상을 차리라고 하고, 만족도는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데.. 영양사를 신으로 아는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지침과 요구 사이에서 현탐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