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갑질에 치이고, 업무와 민원에 짓눌리고...”
[특집] “갑질에 치이고, 업무와 민원에 짓눌리고...”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9.06.17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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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 스스로 목숨 끊은 영양사만 3명, 끊이지 않은 악순환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지난 2017년 7월 사회 초년생이던 20대 영양사가 과중한 업무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영양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이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영양사는 이번까지 3명째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세상을 등진 영양사만 3명

먼저 2013년 5월 서울 A고교에서 영양사로 근무하던 B씨(당시 24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유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A고교에 후임 영양사로 근무했던 B영양사가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학교 구성원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책임은 함께 근무하던 선임 C영양사에게 미쳤다. 당시 이 사건의 문제를 제기했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측은 B영양사의 극단적 선택이 C영양사 책임인 것처럼 떠넘기려는 행태를 보여 지탄을 받기도 했다. 결국 C영양사는 학교의 갑질로 인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사직 처리되면서 또다른 피해자로 남으며 사건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2016년 10월에는 충북 청주의 외국인보호소(이하 보호소)에서 근무하던 김모 영양사(당시 39세)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김모 영양사 사건에는 단체급식 전반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모두 작용했고, 이것이 결국 영양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도록 했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당시 김모 영양사는 고유의 업무 이외 잡무 수행, 피급식자들의 인식 부족, 급식소 관리자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불합리함, 조리종사원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고통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수용자와 직원 등 2개의 급식을 운영해야 했던 보호소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감사에서 많은 문제가 노출됐고, 보호소 측은 모든 책임을 김모 영양사에게로 떠넘겼다. 결국 누구에게서도 보호받지 못했던 김모 영양사는 자신이 12년간 일하던 공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가장 최근에 확인된 전북 김제 D고교 최모 영양사(당시 27세)의 자살은 급식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영양사들이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식단 작성은 영양사 고유의 권한임에도 학교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로 인해 20번씩이나 식단 수정을 해야 했던 최모 영양사는 기본 근무시간은 물론 조기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최모 영양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갈수록 늘어나는 업무와 스트레스보다는 영양사를 급식 관련 민원과 부조리에서 ‘총알받이’로 사용했다는 사실이었다. 급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민원이 있을 때마다 학교 측은 최모 영양사에게 책임을 떠넘겨 급기야 근무를 시작한지 1년 반만에 최모 영양사는 불안장애와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결국 최모 영양사는 학교 측에 여러 차례 퇴직 의사도 밝혔으나 학교가 받아주지 않고 반려하자 영양사가 없어 급식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부담감 때문에 퇴사조차 못하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홀로 막중한 책임감 지고, 과중한 업무와 싸워온 그들

세상을 떠난 3명의 영양사들의 사례를 보면 유사한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그들의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 재확인된다.

식품위생법상 단체급식소 운영자는 사업주(학교는 교장)이지만 사업주는 영양(교)사를 고용 혹은 선임해 운영을 맡긴다. 이른바 중간관리자가 영양(교)사인 것이다. 급식소의 총책임자라지만 이들의 권한과 위상은 지극히 낮다. 영양사 면허는 국가 면허임에도 그에 걸맞는 위상과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 기업체 혹은 공공기관은 행정 혹은 경영지원부서에서 예산과 식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학교에서는 교장과 교감, 행정실의 간섭을 수시로 받고 있다. 특히 학교는 전문가인 영양사에게 비전문가인 학부모와 교직원들이 업무에 관여하고, 학부모들의 의견은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반영이 강요된다. 영양(교)사의 전문성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구조인 것.

급식소 내에서는 조리사와 조리실무사를 총괄하지만 최근 노동조합을 등에 업은 조리실무사들의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중간관리자인 영양사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영양사는 “조리실무사들이 영양(교)사의 정당한 업무지시를 따르지 않고, 지적을 하면 노동조합을 동원해 반발하는데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대다수 단체급식소에 영양(교)사 1명만 근무하고 있는 점도 그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급식소 내에서 급식운영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영양(교)사 1명뿐이며, 이는 이들의 업무를 과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영양(교)사 스스로를 급식소 내·외부로부터 고립시키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영양(교)사들의 책임감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극단적 선택을 한 청주 김모 영양사와 김제 최모 영양사는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사직 의사를 밝혔으나 이들 모두 반려됐다. 하지만 급식운영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후임자 선정과 인수인계까지 책임지려 버티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 세워야

김제 최모 영양사의 소식을 전해들은 일선 영양(교)사들은 슬픔과 애도를 표하면서도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특단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과도한 업무량의 조정이다. 서울의 한 영양교사는 “근무환경 개선을 20년 동안 요구해왔는데 매년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업무량은 늘어났고, 급식에 요구사항은 많아졌다”며 “영양(교)사 추가 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양교사 정원 확보에 적극 나서 각 교육청들은 매년 400~500명의 영양교사를 선발해 이 중 일부를 2·3식 학교에 추가 배치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영양(교)사의 업무량과 직무만족도, 스트레스 지수 등을 교육당국이 먼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서울지역의 또다른 영양교사는 “실태조사에 이어 업무량 조정이 이뤄지면 그 다음은 학교급식과 영양(교)사에 대해 올바르게 국민들께 알려야 한다”며 “이는 개인이 아닌 영양사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강남(유)의 조성호 변호사는 “영양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기존 법률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신 또는 정서적 건강까지 보호하는 법률 규정 신설과 함께 보건당국이나 교육청의 현장 실태조사를 통한 적정한 업무지침 또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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