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만족도’라는 족쇄… “끝이 안 보인다”
‘급식 만족도’라는 족쇄… “끝이 안 보인다”
  • 김기연 기자
  • 승인 2019.08.25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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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따르는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 법제화 시도, ‘뭇매’
‘급식은 교육’인데, ‘정책은 반교육적’… 비판 쇄도
정치인들의 ‘학교급식 몰이해’라는 또 하나의 방증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피급식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를 반드시 실시하고, 이를 급식운영에 반영하라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번 개정안 발의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선 급식 관계자들은 “급식 만족도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급식의 취지와 가치를 뒤틀고 있는데 이를 법제화하려는 법안은 있을 수 없다”고 성토하고 있다.
- 편집자주 -

“급식을 왜 하는 것일까요? 요즘 흐름으로는 학부모 만족을 위해 실시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급식의 목적은 이번 개정안이 언급한 것처럼 성장기 학생의 건강한 심신 발달을 도모하고, 올바른 식생활 관리능력 배양을 통해 평생건강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 입법예고 등록의견 발췌>

잇따라 발의된 2건의 학교급식법 개정안

먼저 서영교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5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양(교)사 및 조리사의 건강관리대책을 수립해 시행하는 한편 매년 학교급식 운영에 대한 실태조사와 평가 및 학생 대상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를 법제화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 의원은 이 개정안에서 학교급식 운영평가 항목에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 문구를 직접 삽입했다.

이 개정안이 발의되고 소관위에 회부되자마자 학교급식 관계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열흘만에 350여 건에 달하는 반대의견이 국회로 접수됐고, 의원실로도 항의전화가 빗발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지난 5일에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법안이 발의됐다. 김수민 국회의원(바른미래당)은 ‘학교급식, 밥맛 개선법’이라는 별칭을 내세운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학교급식법 만족도 평가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학생 의견을 반영하고, 교육감은 이 평가에서 만족도가 낮은 학교를 ‘급식개선학교’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급식개선학교로 지정되면 전문가의 급식운영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에 대해서는 더 큰 반발과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본지와 통화한 한 영양교사는 “피급식자들을 대상으로 한 급식 만족도 조사는 ‘참고자료’는 될 수 있어도 결코 급식운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며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급식 만족도를 학교에 강요하면 학교급식의 가치와 목적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영양교사는 “김 의원의 개정안은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급식 현장의 의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만족도 조사의 법제화, ‘사족’에 불과하다

일단 현행 법령에는 ‘급식 만족도’라는 문구가 이미 명시되어 있다. 학교급식법 시행령 제13조에는 학교급식 운영평가를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교육부장관·교육감은 평가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학교급식 운영평가기준은 위생·영양·경영 등의 급식운영관리와 식생활지도 및 영양상담, 급식예산의 편성 및 기준, 그리고 학교급식 수요자의 만족도다.

이 기준에 따라 교육부는 매년 지역 교육청으로 하달하는 ‘학생건강증진 정책방향’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다. 2019년도 정책방향에는 ‘학교급식 운영의 내실화’를 위해 각 시·도교육청에는 ‘학교급식위원회’를, 각 학교에는 ‘학교급식소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고, 학교 홈페이지의 급식게시판 또는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를 통해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했다.

그리고 각 시·도교육청이 수립하는 ‘학교급식 기본방향(혹은 기본계획)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를 이미 다양하게 시행해오고 있다. 즉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는 굳이 법제화할 필요 없이 이미 충분히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지역 B중학교 영양사는 “학교급식이 무상급식으로 전환되면서 국가예산이 대폭 투입됐고 그만큼 사회적 관심도 높아져 무상급식의 운영성과 및 결과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반응은 학교가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기 훨씬 전부터 만족도 조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충실히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급식 취지와 가치 흔드는 ‘만족도 조사’

더 큰 문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가 그 취지와는 다르게 학교급식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는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지표다. 1식에 수백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하는 학교급식이 학생 개개인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선호하는 메뉴가 나오지 않으면 급식에 대한 평가는 자연히 낮아지고 심지어는 급식을 먹지 않는 학생들도 생겨난다.

서울지역의 한 중학교 영양사는 “중학생쯤 되면 식습관이 이미 고정되어 있어 선호하는 메뉴와 음식이 뚜렷하게 나타나 개선을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진다”며 “학생들은 선호하지 않는 메뉴가 급식에 올라오면 ‘맛이 없다’고 평가하고, 이를 들은 학부모는 학교에 민원을 넣거나 항의한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패스트푸드와 외식 등으로 자극적인 입맛을 찾는 학생들은 저염·저당·저칼로리가 목적인 학교급식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급기야 이런 반응은 급식 만족도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급식 만족도 조사가 아닌, ‘맛’ 또는 ‘메뉴 선호도’ 조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급식 현장의 상황이 이런데 이 와중에 급식 만족도 조사를 법제화하고, 심지어 이를 근거로 ‘급식개선학교’로 지정하겠다는 발상은 그 전제부터 틀렸다는 지적이 높다.

경기도 북부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학교급식의 가치와 목적, 고민 없이 추진되는 법안이라고 여긴다”며 “생선이 급식에 나오면 거의 예외 없이 학생들이 잔반으로 버리는 현실에서 식생활교육이나 급식에 대한 정책 개선 없이 만족도 조사만을 요구하는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이 발의한 ‘급식개선학교’ 지정 정책에 대해 일부 영양(교)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급식개선학교’로 지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학교급식에 대한 몰이해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한 영양교사는 “문제 있는 학교라는 낙인을 찍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해도 너무한다”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영양교사는 “만족도 조사로 영양(교)사를 옥죄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교로부터 고통 받게 하려는 건가”라며 “‘교육급식’이라는 가치를 정치권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서 의원실 담당자는 “학교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준비된 법안”이라며 “앞으로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상임위 등을 거치면서 급식 현장의 의견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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