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테리아] 섬 음식에 한식 미래가 있다
[카페테리아] 섬 음식에 한식 미래가 있다
  • 강제윤 소장
  • 승인 2019.09.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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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사)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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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포, 낙지 냉연포탕, 고구마묵, 홍어껍질묵, 성게찜, 꽃게회, 복어곰국, 문어김치, 백년손님 밥상, 피굴, 시금치꽃동회무침, 산도랏건민어탕.... 대체 이런 특별한 음식들은 어디에 가면 맛볼 수 있을까? 고급 한정식집일까?

아니다. 음식들의 출처가 섬이기 때문에 육지의 식당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 이처럼 육지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귀한 음식들이 섬에 있다. 그것은 섬에서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토속 음식들로 우리가 잃어버린 다양한 토속 해산물 음식들의 원류가 섬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이 경이로운 섬 토속 음식들은 그야말로 해산물 요리의 바이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다채롭고, 품격 있으며, 맛깔스럽기까지 하다.

필자는 최근 사라져가는 남도 섬 토속 음식들의 레시피를 채록해 <전라도 섬맛기행>(21세기 북스)이란 책을 펴냈다. 20년째 섬의 역사와 생태,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에 대한 많은 책들을 냈지만, 섬의 고유한 가치 하나만을 주목해서 묶은 것은 처음이다. 섬의 가치 중에서도 섬 음식문화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섬들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밥 먹고 가라'였다. 그래서 식당 밥이 아니라 섬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밥상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봤다. 그 밥상들 속에 보물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오로지 섬 주민들의 인정 덕분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이 섬의 하늘을 온통 새빨갛게 물들인 노을을 보며 감탄할 때 섬사람들은 ‘불볕나는 것을 보니 내일은 덥겠다’고 말한다. 섬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늘 먹는 것이니 무엇이 특별하겠는가. 하지만 이방의 여행자인 필자의 눈에는 밥상에 오른 섬 토속 음식 하나하나가 더없이 진귀한 보물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땀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물의 낙지연포탕을 먹는다. 하지만 하의도, 장산도 같은 섬에서는 시원한 냉연포탕을 해먹는다. 낙지 냉연포탕은 차가운 국물에 삶은 낙지와 야채를 곁들인 요리인데 뜨거운 연포탕보다 감칠맛이 나고 더 고급스럽다.

섬에서는 고구마로도 묵을 해먹는다. 도토리묵이나 메밀묵은 알아도 고구마묵을 맛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기점도의 고구마묵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드는데 다른 어떤 묵보다 쫄깃하고 고소하다. 잘 부서지는 식감 때문에 묵을 싫어하는 이들도 아주 좋아한다.

여수의 섬 안도에서는 문어김치도 담가 먹는다. 김장김치에 굴이나 명태 같은 해산물을 넣어먹는 풍습은 뭍에도 더러 있지만, 문어김치는 독창적인 섬의 음식이다. 문어를 잘 말렸다가 방망이로 두드려서 편 뒤 구워서 김장김치 사이에 넣어 먹는 것이 문어김치다. 또 요즈음은 흔해졌지만 그 귀하던 시절에 전복을 말려서 포로 먹었던 것이 섬이다.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섬에서도 토속 음식은 점차 소멸 중이다.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섬. 가족을 통해 전승되던 음식문화도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섬 토속 음식의 맥이 끊기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보물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한식 현대화니 뭐니 하면서 자꾸 없는 것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있는 것을 전승시키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시작이다. 섬 토속 음식 속에 한식의 오래된 미래가 있다. 따라서 섬에 남은 토속 음식 레시피들을 정부 차원에서 전수 조사해 활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음식 하나가 지역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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