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테리아형 학교급식’ 기회일까 함정일까
‘카페테리아형 학교급식’ 기회일까 함정일까
  • 정지미·김기연 기자
  • 승인 2019.11.1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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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교육청 타당성 위한 용역 중간보고회 열었으나 강한 비판 제기돼
일선 영양(교)사들 “도입하면 좋지만… 서두르다 되레 급식 운영 위협”

[대한급식신문=정지미·김기연 기자] ■ 진단 - 올바른 학교급식은 과연 무엇인가

학교급식소를 관리하는 영양(교)사들이 급식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일까. 영양(교)사의 개성과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정형화된 몇 가지 요소는 존재한다. 식단과 영양소, 안정적인 식재료 공급, 위생 등이다. 하지만 영양(교)사가 근무하는 환경에 따라 요소는 또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피급식자 의견 수렴’이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됐다. 사회의 변화와 흐름에 따른 것으로, 급식이 ‘무상급식’으로 진화하고 ‘청렴’과 함께 ‘급식의 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피급식자 의견 수렴이 필수 요소인 것은 당연하다. ‘급식’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피급식자 입장에서는 원치 않은 메뉴가 나왔을 때 ‘급식의 질’에 대해 극도로 낮게 평가할 것이고, 이는 급식 운영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리고 그 부담은 급식운영을 관리하는 영양(교)사들에게 전가된다. 

이런 현상은 ‘무상급식’이 이미 ‘정치적인 이슈’로 번져버린 현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급식의 질이 낮으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민원이 나오고, 이는 선출직 공무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사실 ‘급식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피급식자가 원하는 메뉴‘만’ 제공하면 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최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이른바 ‘카페테리아형’ 급식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여건과 준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급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 편집자주 -

카페테리아형 급식 도입에 대해 일선 영양(교)사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제도 도입은 성급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경기교육청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 자율배식 모습(왼쪽). 현재 일반적인 배식의 급식 모습(오른쪽).
카페테리아형 급식 도입에 대해 일선 영양(교)사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제도 도입은 성급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경기교육청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 자율배식 모습(왼쪽). 현재 일반적인 배식의 급식 모습(오른쪽).

찬 “학생들이 맛있게 먹는다면 어떤 정책이든 시행해야”
반 “현 운영비·인력으론 무리… 자율·선택급식 평가부터”

비판 제기된 ‘카페테리아’ 보고회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 이하 경기교육청)은 지난달 18일부터 19일까지 이천 곤지암리조트에서 ‘학생참여형 맞춤형 교육급식 워크숍’을 열고 경기도내 학교급식을 카페테리아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영양(교)사와 지역 교육지원청 학교급식 담당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 워크숍에서 연구용역을 맡은 정윤희 연구원(연세대학교 심바이오연구소)은 미국 구글사 구내식당의 동영상 방영을 시작으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발제했다. 정 연구원은 현대의 급식 흐름은 ‘어디에서 먹느냐’가 중요하게 대두된다고 전제하고 “학생의 기호도와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현재 식당의 공간을 재구조화하고, 급식으로 학생이 원하는 음식을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음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비판의견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비판의 요지는 “발표 내용이 피상적이고, 학교 현장과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워크숍에 참석한 A영양교사는 “식당 등 급식시설의 개선은 분명 필요하지만 현재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선택 급식을 하기에는 건강 및 식생활 관련 교육과 급식 노동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B영양교사도 “카페테리아형 급식을 하려면 급식 노동인력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할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도 용역보고에는 이러한 인력보충에 대한 추가비용, 시설개선에 대한 예산 등 비용분석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며 “이런 와중에 경기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경기교육청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경기교육청 학생건강과 관계자는 “지금은 의견수렴 단계일 뿐 실행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일부 영양(교)사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강제로 시도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앞서 경기교육청은 지난 4월부터 ‘카페테리아 맞춤형 교육급식 추진계획’을 세우고 추진을 해왔다. 이미 2014년부터 운영해온 자율배식과 부분적 선택 식단제도를 확대한 셈이다. 

현재 경기도내 230여 개 학교가 자율배식에 참여하고 있고, 286개 학교는 선택 식단을 운영하며, 한달에 1~2번 또는 일부 메뉴에 한해 2가지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기교육청은 올해 하반기부터 ‘카페테리아’ 모델 개발 정책연구를 시작했고, 이날은 중간용역보고회였다. 경기교육청은 당초 계획에서 조리도구의 변화와 급식실 시설 개선, 식당 자리배치 등 전체 급식환경 및 운영 측면에서도 개선을 시도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보고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아 비판을 받은 것. 
C영양교사는 “경기교육청의 카페테리아 정책은 그동안 실행한 선택 식단이나 자율배식 등의 정책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며, 카페테리아 급식에 대한 구제척인 고민과 방법 제시가 없다”며 “교육감부터 학교급식의 철학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영양(교)사 “좋긴 한데...”
일단 카페테리아형 급식운영에 대한 의견은 급식 현장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형국이다. 

경기도 A고교 영양사는 “예전과 달리 학부모들의 영향력과 발언권이 훨씬 강해진 지금, 학부모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 같다”며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정책이든 시행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기도 B초등학교 영양교사도 “보다 많은 가짓수의 메뉴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영양사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면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대구지역 C학교 영양사는 “메뉴를 많이 준비하면 할수록 급식소 입장에서는 대응하기 편하겠지만, 한 가지 메뉴를 더 준비하기 위해서는 급식실 전체가 그만큼 더 분주해져야 한다”며 “지금도 조리인력이 부족해 곤란한데 메뉴를 더 준비하라고 요구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경기교육청의 워크숍에 참석했던 D영양교사도 “영양(교)사와 조리 종사자 모두 학생들에게 보다 맛있고 더 좋은 급식을 주고 싶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이 원하는 메뉴를 추가로 줄 수 있다면 누가 싫어하겠는가”라며 “그렇지만 지금도 빠듯한 급식 운영비와 인력구조로 추가 메뉴를 부담하라는 것은 정상적인 급식 운영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서울 E초등학교 영양교사도 “카페테리아형 급식의 취지는 이해하나 반드시 기존 급식운영의 체계를 뒤흔들게 될 것”이라며 “추가 메뉴를 준비하기 위해 과로를 하다 조리 종사자들이 산재를 당할 가능성도 있고 영양(교)사의 업무도 많아질 것인데 대책 마련이 먼저”라고 말했다. 

일반 산업체급식과 달리 학교급식에 걸려있는 규제는 매우 심한 편이다.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의 가짓수도 많지 않지만 식품첨가물이 포함된 가공식품 사용을 지양하면서 천연 식재료를 쓰려면 전처리 인원이 필수인데 이럴 경우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조리인력 배치기준은 일반 산업체에 비해 턱없이 높아 지속적으로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사업 추진, 일단 중단될 듯
경기교육청의 카페테리아형 급식사업은 일단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경기교육청이 내년 사업을 위한 예산확보에 실패해 중단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경기교육청은 올해 하반기부터 4개 시범학교로 시작해 내년에는 21개, 2021년에는 36개로 늘려간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올해 하반기 시범학교조차도 시작하지 못해 일선 교육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내년 사업도 불투명한 편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경기교육청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내년도 사업예산안이 전액 삭감돼 시범학교 선정도 불가능하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 E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카페테리아형 급식 제도 도입은 학교급식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수준과 방식으로는 안될 것이며, 일선 급식실 종사자들과의 지속적인 의견교환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영양교사들은 카페테리아 급식정책에 대해 의견을 내는 연대모임을 만들고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했다. 

영양교사들의 연대모임인 ‘경기도 학교급식 정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대표는 “경기교육청의 현 카페테리아 정책은 졸속 전시행정”이라며 “경기교육청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공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현재 학교급식에 시급한 문제점도 함께 제시했다. 가장 급한 문제는 현재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급식 영양량에 대한 분석 평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생들의 체격과 신체발달 상황이 달라지고, 이에 필요한 영양소의 양도 달라지는데 이에 대한 분석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학생의 급식 섭취량은 물론 과부족 영양소 섭취량을 판단할 수 있는 ‘편식 판정 평가’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편식에 대한 기준이 없는 까닭에 영양(교)사들이 과학적 근거없이 편식 개선을 해야 하고, 식생활교육 또한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또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자율배식과 선택 식단 학교의 성과에 대한 분석도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학교급식을 수행하는 교육주체는 결국 현장에 있다”며 “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채 추진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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