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교육청 산안법 위반’ 취소 판결, 이유는?
잇따른 ‘교육청 산안법 위반’ 취소 판결, 이유는?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0.06.0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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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구 이어 대전도 산안법 위반 과태료 처분 취소 판결
급식 현장 “지지부진한 산안법 쟁점 해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전국 시·도교육청에 적용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미준수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무효화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지역 고용노동청에서 산안법을 위반했다며 교육청을 상대로 처분한 과태료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취소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확인 결과 대구지방법원 제1민사 재판부(이하 대구지법)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지난 2018년 학교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산안법을 위반했다며 대구시교육청(이하 대구교육청)에 부과한 과태료 3950만 원에 대해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대구지법은 지난 2월 17일 최종 판단을 내리면서 “대구교육청은 사업의 종류가 ‘교육서비스업’으로 산안법 일부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과태료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가 학교급식을 한국표준산업분류상 ‘기관구내식당업’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한국표준산업분류에는 기관구내식당업을 ‘회사, 학교, 공공기관 등의 기관과 계약에 의해 구내식당을 설치하여 음식을 조리해 제공하는 산업활동’을 말한다”며 “그 문언상 학교와 별도의 운영 주체가 학교와 계약을 체결해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경우에 관한 규정으로 급식소를 직영하는 경우에는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뒤늦게 알려진 이번 재판 결과는 지난해 11월 내려진 강원도교육청(이하 강원교육청)의 과태료 처분 취소 처분과도 일맥상통한다.<본지 276호(2019년 11월 25일자 참조)>

춘천지방법원(이하 춘천지법)은 지난해 10월 29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원지청(이하 강원지청)이 강원교육청을 상대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 미설치’ ‘안전보건총괄책임자 미지정’ 등 산안법을 위반했다며 내린 과태료 처분에 대해 ‘과태료 부과 취소’를 판결했다.

춘천지법 역시 대구지법의 판결과 유사한 판단과 문구를 사용해 강원지청의 과태료 처분을 취소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대전시교육청(이하 대전교육청)도 유사한 판결을 받았다. 대전교육청 역시 2018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산안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뒤 이의를 제기했고,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4월 과태료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전의 경우 항소가 없어 과태료 취소 처분이 최종 확정됐다.

잇따른 과태료 취소 판결이 나오면서 일선 교육청 사이에서는 그동안 내려진 산안법 위반 과태료 처분이 모두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강원교육청의 판결 당시에는 개정된 산안법이 시행되기 전이어서, 이른바 ‘김용균법’이라 통칭된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시행되는 2020년 1월 16일 이후부터 개정된 법률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앞서 국회는 올해 1월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안타깝게 숨진 故 김용균 씨 사건을 계기로 산업현장에서의 안전관리를 대폭 강화하자는 취지의 산안법을 전면 개정했다. 개정의 골자는 산안법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규정을 삭제하고,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개정된 산안법 시행에 따라 교육부·17개 교육청과 논의해 학교의 여러 직종 중 행정업무 종사자 등 산안법 적용이 어려운 직종을 제외한 우선 적용 직종에 대해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을 만들어 올해 1월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해당되는 직종은 학교의 경우 ▲학교 시설물 및 설비·장비 등의 유지관리 업무 ▲학교 경비 및 학생 통학 보조 업무 ▲조리 실무 및 급식실 운영 등 조리시설 관련 업무다.

이처럼 개정된 산안법 시행 이후에도 법원이 동일한 판단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법원은 위반행위가 벌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법령을 적용해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위반행위가 2018년에 이뤄졌으므로 재판부 역시 2018년의 법령을 놓고 판단한 것. 이에 대해 법무법인(유) 강남 조성호 변호사는 “법원은 행위 당시 법령을 기준으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항소심이 열릴 당시 새로운 산안법과 시행령이 시행되고 있어도 항소심에서는 새로운 법령을 참고만 할 뿐이지 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며 “강원교육청이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개정안 시행 이전 위법행위를 시정했다면 법의 판단이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2018년 기준 산안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교육청은 모두 6곳이다. 이 중 대구교육청과 대전교육청은 판결 이후 노동청이 항소하지 않아 과태료 취소 처분이 확정됐고, 강원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취소 판결에 대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교육청 역시 과태료 취소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선에서는 법원의 판결문 흐름을 봤을 때 큰 변화가 없다면 대구 혹은 대전과 비슷한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청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이 이처럼 일관된다면 기존 산안법 위반 문제로 겪고 있는 일선 학교의 고민이 크게 덜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산안법 쟁점들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사업장의 단위를 변경하는 문제와 산보위 구성, 관리감독자 선임 등이다.

교육부와 노동부가 통일된 지침 대신 일선 교육청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면서 각 교육청은 관리감독자 선임을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급식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자와 통학보조원의 산업안전보건 업무까지 영양(교)사에게 맡기려는 일부 교육청의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는 등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이 많다.

여기에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산보위에 참여할 노동자 측 대표 구성을 놓고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경기도 A중학교 영양교사는 “지난 몇 년간 학교급식 현장에서 영양(교)사들에게 고통과 분노를 불러온 큰 화두 중 하나가 산안법 적용이었다”며 “조만간 합의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거처럼 영양(교)사들에게 끝없는 희생만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모든 영양(교)사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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