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선택제’, 결국 더 신중한 판단 필요해
‘채식선택제’, 결국 더 신중한 판단 필요해
  • 유태선 기자
  • 승인 2020.07.08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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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중장기 발전계획 발표로 불붙은 채식급식 주장
교육급식 강조되는 판에 “급식 정책 수립 신중해야” 의견도

최근 채식주의자들을 포함한 관련 시민단체가 ‘채식급식’을 학교급식에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심지어 채식주의자들은 학교급식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채식선택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학교급식 현장에서는 성장기 학생들의 발육과 식생활교육 측면에서 과연 채식급식을 정책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 편집자주 -


[대한급식신문=유태선 기자] 서울지역 학교에 채식선택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포함한 몇몇은 반기는 모양새지만, 일각에서는 기존 ‘채식의 날’을 운영했던 사례를 들며 ‘교육급식’의 가치와 함께 병행해야 할 채식선택제는 결국 일선 영양(교)사들에게 많은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채식 주장’ 도화선된 서울교육청

지난달 24일 채식급식 국민운동본부(대표 이원복, 이하 채식운동본부)는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 이하 서울교육청) 앞에서 조희연 교육감의 채식선택제 도입계획을 환영하며, 향후 학교급식에 육류는 물론 란류와 유제품까지 제한하는 ‘비건’ 형태의 채식급식을 주 1회 제공하라는 퍼포먼스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달 18일 열린 ‘제1회 생태전환교육포럼’에서 채식선택제 도입을 담은 ‘생태전환교육 중장기 발전계획(2020~2024)’에 대한 조희연 교육감의 발표가 도화선이 됐다.

당시 조 교육감은 기후위기와 환경재난 대응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청소년들의 환경학습권과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요청에 응하는 차원에서 오는 2024년까지 채식선택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교육감은 “지나친 육식은 소아비만, 소아당뇨, 면역계 질환,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유발하므로 식습관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며 “채식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육식 위주의 학교급식은 불평등과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교육청은 오는 2024년 채식선택제 도입을 위해 올해부터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하는 등 단계적인 수요와 요구를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영양(교)사 중심의 연구모임을 통한 채식 식단 연구와 함께 인력 및 시설 구축 또한 연차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서울교육청의 계획에 대해 학교급식 취지와 업무 환경을 고려치 않은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지금도 각 학교 영양(교)사와 조리사(원)들은 한계에 가까운 업무과중에 시달리고 있다”며 “‘채식선택제’는 학교급식 관계자들을 더욱 과중한 업무로 몰아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쉽지만은 않은 듯한 ‘채식급식’

서울교육청이 도입하겠다는 채식급식은 전북 등 일부 지역에서 이미 채식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북도교육청(교육감 김승환, 이하 전북교육청)은 지난 2011년부터 육식을 선호하는 식습관을 개선하고, 채소 섭취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기준 131개의 학교가 채식의 날을 주 1회, 혹은 월 2회 ‘자율’ 운영하고 있다.

채식은 ▲비건(완전 채식) ▲락토(우유 허용) ▲락토오보(란류, 우유 허용) ▲페스코(우유, 란류, 생선류 허용) ▲세미(우유, 란류, 생선류, 닭 허용) 총 5개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전북교육청은 란류, 우유 등을 허용하는 ‘락토오보’ 형태를 채택했다.

전북교육청이 이 같은 형태의 채식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아이들의 기호도를 높이면서 필요 영양량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실제 채소만 나오는 날에는 결식률이 높아졌고, 잔반량도 많아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여기에 채소로만 구성된 식단은 탄수화물 등에 치우친 불균형한 식단이 될 우려도 있었다.

이로 인해 전북에서는 채식의 날 운영 시 면류나 비빔밥을 제공하거나 영양량을 맞추기 위한 채소튀김, 두부커틀릿 등의 가공식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튀김류 또는 가공식품 등의 사용 최소화’라는 ‘학교급식 기본방향’에는 맞지 않지만, 영양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한 식단작성에 사용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주간 영양량 합계가 맞지 않으면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채식의 날이 있는 경우 다른 요일에 단백질 공급량을 높이는 등 영양량이 초과되기도 했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채식의 날이 있는 주간에는 채식 식단이 아닌 급식이 제공되는 날 급식 만족도가 높았다”며 “상대적으로 단백질 위주의 육류 음식이 제공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높은 기대’ 책임은 영양(교)사가

서울교육청은 채식선택제 도입을 위해 영양(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모임 활성화 등의 계획도 발표했다.

이처럼 채식선택제는 준비부터 영양(교)사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이런 가운데 과거 채식의 날을 도입한 한 지역교육청이 시범학교에 예산과 평가 등에 혜택을 준 사례가 있어 서울교육청도 이 같은 인센티브를 채식선택제 시범학교에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결국 영양(교)사들이 부담을 안고라도 운영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채식선택제 도입 시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학생·학부모·학교 관계자들의 요구와 불만은 모두 영양(교)사의 몫이 될 것이라고 일선 영양(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채식의 날을 운영했던 지방의 한 영양교사는 “시범학교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지원받은 예산사용계획 수립과 보고서 작성 등으로 야근은 일상이었다”며 “정작 시범학교 운영이 끝난 이후에는 ‘번거롭고 귀찮았던 시범학교를 왜 맡았냐’는 말을 듣는 등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전했다.

채식, ‘2차 성징’에 문제 될 수도

일단 서울교육청은 조 교육감의 발표에 따라 채식선택제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채식선택제는 말 그대로 선택이 되어야 한다며 강요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다이어트에 채식이 좋다는 SNS 등의 정보와 채식을 선호하는 부모의 의견이 학생들에게 채식을 막연하게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채식은 성장기의 학생들의 영양소 결핍은 물론 발육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한 급식 관계자는 “과거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채식을 수년째 하고 있는 가족이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부모로부터 채식을 권유받았던 여자아이는 결국 부분 영양실조로 인해 ‘2차 성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방영됐었다”며 “아이들의 성장과 기호 또한 고려돼야 하기 때문에 채식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성장기 청소년의 영양소 섭취는 어른들의 책임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급식 정책 결정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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