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식재료 브랜드 지정… 언제까지
‘그림의 떡’ 식재료 브랜드 지정… 언제까지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0.11.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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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성·객관성 입증’ 요구하는 현행 법령에 여전히 혼란
관련 법령 두고 할 만큼 한 행안부, 이제 교육부가 나서야

#. 전남지역 A고등학교 영양사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급식용 식재료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식단에 필요한 식재료의 적합한 성분을 구체적으로 입찰내용에 표기했다가 업체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이 업체는 ‘구체적인 성분 표기를 하면 특정 브랜드를 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해당 영양사는 정확한 확인을 위해 교육지원청에 문의한 결과 ‘브랜드 지정이어서 안 된다’는 답변을 받은 반면 영양사 단톡방을 통해 확인한 인근 지역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학교 영양(교)사들의 식재료 선택권이 존중되도록 관련 법령이 개정됐음에도 학교급식 현장의 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일선 영양(교)사들은 법령도 개정된 마당에 더 이상 ‘갈팡질팡’하지 말고 내년에는 필히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브랜드 지정 불가는 결국 소비자인 학교 영양(교)사가 원하는 질 좋은 제품보다 공급업체 이익이 더 많은 제품들로 납품될 수밖에 없어 급식 수준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브랜드 지정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브랜드 지정 문제의 발단은 행정안전부(장관 진영, 이하 행안부)가 지난 2016년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집행기준(이하 집행기준)’을 개정하면서 브랜드 지정을 금지한 것에 단서조항을 신설하면서 시작된다. 단서조항은 집행기준 제7조로 ‘국민의 생명보호·건강·안전·보건위생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외로 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행안부 측에서도 이는 학교급식을 위한 개정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행안부는 그 이후 일부 교육청이 공동으로 질의한 브랜드 지정 허용에 대해서도 동일한 답변을 내놓았다. 답변의 요지는 “식재료 선정 시 제품 선호도 반영 등 품질이 좋고, 객관적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상표 등을 제시해 업체와 유착 등 오해의 소지나 논란이 없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는 급식 현장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개정 당시 우려됐던 ‘당위성’과 ‘객관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영양(교)사에게 지웠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당위성과 객관성을 입증하는 수단과 방법, 단위에 대한 기준이 전무하고, 이에 대한 각 교육청의 입장도 각기 상이하다는 것이다. 즉 영양(교)사들이 학부모 혹은 학생 선호도 조사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승인받은 식재료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A교육청은 인정하는 반면 B교육청은 인정하지 않는 식이다.

브랜드 복수 지정도 어떤 교육청은 허용하지만, 불허하는 교육청도 있어 결과적으로 동일한 법령을 놓고 교육청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당위성과 객관성을 입증하는 방법이나 기준이 없는 영양(교)사들은 선호도 조사 등을 근거로 브랜드를 지정했다가 추후 교육청 혹은 교육지원청 감사 등에서 지적을 받는 등 신분상 처분을 받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양(교)사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브랜드 지정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교육지원청에서는 브랜드 지정의 대안으로 ‘성분 지정’ 등을 허용하다 이마저도 금지시켜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선 영양(교)사들은 문제의 해결방안은 교육부가 쥐고 있는데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원도 A영양교사는 “행안부는 2016년 당시 공청회 등을 열고 예규에 단서조항을 붙인 것은 교육부 업무영역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당시 행안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며, 그 후속 대책은 교육부가 내놓아야 하는데 아직도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의 의견은 여러 차례 접수됐지만, 일선 학교를 지도·관리하는 권한은 각 교육청에 있고, 브랜드 지정도 교육청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부는 관련이 없다“며 “앞으로도 이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교육부 입장에 대해 서울지역 한 영양교사는 “브랜드 지정 여부는 행안부 예규를 따르고 있지만, 실질적인 학교급식 운영은 모두 교육부 ‘학생건강증진 기본방향’에 근거하고 있는데 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교육부는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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