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들려줄게] 수정과
[한식을 들려줄게] 수정과
  • 한식진흥원
  • 승인 2020.11.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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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생각나는 수정과(水正果)

과거 설날이나 서늘할 때 주로 찾은 대표 음청류였던 수정과. 냉동실에 살짝 얼려 살얼음이 파삭하고 씹힐 때 알싸한 계피향이 간질간질 피어오르며 이내 혀끝에 와 닿는 달콤함과 오감을 깨우는 오묘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 국물 있는 정과의 대표올시다!  
내 이름은 수정과. 수정처럼 고운 이름을 글자로 쪼개 풀이해 봐도 재미있다. 과일 등을 꿀이나 설탕에 조린 걸 ‘정과(正果)’라 하고, 여기에 물(水)을 더해 국물이 있는 정과를 모두 ‘수정과(水正果)’라 부른 것. 특히 조선시대엔 오늘날 많이 먹는 건시수정과(곶감수정과)와 수단, 화채, 식혜 등을 모두 포함해 ‘수정과’라 이름 붙였다.

특히 1835년경 지어진 생활백과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과와 라는 열매를 꿀로 조려 익힌 것. 신맛이 나며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이걸 밀전과(蜜煎菓)라 부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과(正果)라 부르는데 이는 전(煎)과 정(正)의 음이 비슷하기 때문. 그중 국물도 함께 먹는 것을 수정과(水正果)라 한다”고 적혀 있다.

흐르는 시간을 따라 옛 조리서에는 내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시작은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 “좋은 건시를 냉수에 담되 물을 넉넉히 부어 두었다 흠씬 불은 후 생강차를 진하게 달여 붓고, 화청(和淸)해 잣을 뿌린다”고 설명해놓았고, 이어지는 20세기 ‘조선요리제법’엔 “생강을 저며 설탕을 넣고 끓인 뒤 항아리에 담아 식힌 뒤 곶감을 넣었다가 그릇에 담을 때 계피와 실백을 띄운다”고 다시 한 번 친절히 조리법을 적어 놓았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내가 계피향을 피운 건 비교적 후대 일인 것 같다. 또 곶감 녀석이 들어가면 품격이 한층 올라가는데, ‘건시수정과’가 바로 그것. 계피와 생강을 달인 물로 그윽한 향을 내고 설탕이나 꿀로 감미를 더해, 마지막으로 곶감이나 잣을 띄우면 몸을 보양하는 음료로도 으뜸이었다.

팁이라면 이때 물은 진하게 끓여 알맞게 희석해 쓰는 편이 좋고, 생강과 계피를 한 그릇에 넣고 끓이면 상대편의 향미를 감소시켜 맛이 싱거워지므로 따로따로 끓여 둘을 합해 쓰는 것이 정석이다.

■ 고려부터 이어온 유서 깊은 영양 음료올시다!
요즘은 사시사철 구분 없이 날 찾지만, 대략 150년 전엔 가을에 곶감을 만들기 시작해 정이월(음력 2월)까지가 나의 진짜 전성기였다.

1896년에 쓰인 조리서 ‘규곤요람’에 “2~3월엔 진달래꽃 화채, 4~5월엔 앵두 화채요. 6~7월엔 복숭아 화채요, 8~9월엔 식혜에 국화 띄우고, 동지섣달은 배숙이요, 정이월은 수정과”라고 적혀 있다.

특히 설날에 즐겨 마셔 정초에 세배 오는 손님상엔 빠짐없이 올라갔는데, 1925년 출간한 최영년의 시집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백시제호’란 이름으로 내 기록이 등장한다.

“옛 풍속에 정월 초하룻날 고려 궁녀가 시설이 난 건시를 생강탕에 담그고, 꿀을 타 ‘백시제호’라 일컬었다. 지금도 집집에 전하는데 그것을 수전과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호 식품이자 절기나 명절 음식으로 유명세를 달렸지만, 숙취 해소 음료로도 아낌없이 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속에 든 생강과 계피, 꿀, 곶감, 잣 등의 하모니로 과당과 비타민, 수분까지 두루 갖춰 사람 몸에 쌓인 알코올 성분을 산화하고 배설시키는 데 이력이 난 것.

이뿐만이 아니다. 화룡점정으로 올라가는 잣 녀석은 고소함으로 나를 돋보이게 하는 건 물론 곶감 속 타닌과 철분의 산화를 막아 빈혈도 예방해준다. 여기에 생강은 또 어떠한가. 타고난 열기로 속을 따뜻하게 데워 폐와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배탈이나 구토증도 가라앉힌다. 이에 질세라 환상의 짝꿍인 계피 역시 뜨거운 기운으로 속을 채우고, 체내의 나쁜 기운을 깡그리 몰아내 펌프질하듯 양기를 일으킨다.

이처럼 몸에도 좋고 풍미도 좋은 나의 기본은 누가 뭐래도 손맛 아닐까. 조리 과정이 복잡하진 않아도, 손이 참 많이 가는 건 맞다. 생감이 완숙되기 전 껍질을 벗겨 꾸덕꾸덕 건조시킨 곶감을 가장 먼저 준비해두고, 생강과 계피를 각각 따로 달여 국물을 만들고 또 충분히 우리고…. 다시 잘 보관해두었다 마실 때마다 곶감과 잣으로 예쁜 모양새를 갖춰 나가는 과정.

정성 가득한 그 맛 때문에 오랜 세월 한결같이 내 역사가 이어 내려온 것 같다. 더욱이 과거엔 설날이나 서늘할 때만 찾다가 이젠 사시사철 내내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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