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 영양사, 조리사 직무도 하라고?
소방서 영양사, 조리사 직무도 하라고?
  • 유태선 기자
  • 승인 2021.02.10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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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급식된 소방서급식, 종사자 처우·고용 체계 필요
채용공고의 ‘조리사 직무수행’ 논란 일자 “검토하겠다”

[대한급식신문=유태선 기자] 지난해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됨에 따라 공공급식 범주로 들어서게 된 소방서급식. 하지만 소방서급식을 담당하는 종사자들의 기본적인 처우와 고용 체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영양사를 뽑는 채용공고에서 ‘담당업무’에 ‘영양사, 조리사 직무수행’으로 공지했다가 지적이 일자 계약서 작성 시 해당 내용 삭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또 다른 지방의 한 광역단체는 근무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유로 영양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은 채 용역 형태로 근무시키는 곳도 있었다.

영양사 채용에 ‘조리사 면허’ 필수?

경상남도소방본부(본부장 김조일, 이하 경남소방본부)는 진주소방서 등 도내 18개 소방서에 근무할 공무직 영양사 채용공고를 내고, 3월 말까지 현장에 영양사를 배치해 5000여 명의 소방직원들에게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지난달 18일 밝혔다.

문제는 영양사를 선발하는 채용공고에 ‘영양사 면허증’ 외에 ‘조리사 면허증’도 필수로 명시한 것. 본지가 소방서에 영양사가 배치되어 있는 전국 8개 지역의 채용공고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의 광역단체에서 영양사 채용 시 영양사 면허와 조리사 면허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었다.

경남소방본부 관계자는 조리사 면허 요구에 대해 “각 소방서에 조리인력이 있지만, 조리사 자격증이 없거나 면허 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영양사 채용 시 요구하게 됐다”며 “대부분 영양사분들이 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기도 하고, 조리 업무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집단급식소를 신고·운영하는데 영양사·조리사 면허가 필수인 데서 기인한다. 대표적인 곳은 규모가 작은 산업체급식으로, 재정 여건상 영양사와 조리사의 각각 채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공공급식의 하나인 소방서급식은 법의 본래 취지에 맞게 별도 고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수도권의 한 급식 관계자는 “영세한 산업체의 경우 조리사 자격증 없이 수년간 근무한 조리원이 있거나 이직 등의 문제로 조리사 면허를 가진 영양사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급식인 소방서급식은 격무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의 식사라는 점에서 필히 조리사 면허를 가진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리사 면허’에 이어 ‘조리사 직무’도

경남소방본부의 채용공고에는 타 시·도에는 없는 또 하나의 문제가 더 있었다. 영양사의 주요 업무에 ‘영양사 직무’와 함께 ‘조리사 직무’도 명시한 것. 식수 인원이 비교적 적은 ‘119안전센터’급이 아닌 소방서에 배치되는 영양사 채용공고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채용공고대로라면 경남도내 18개 소방서에 배치되는 영양사는 소방서와 구조대, 직할 안전센터의 식단 및 위생관리와 함께 급식소 운영 전반은 물론 조리사 직무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물론 영양사가 관련 법상의 조항을 들어 거부할 수도 있지만, 채용공고에 따라 계약서에 명시된 조리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 불이행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것.

경남의 한 학교 영양(교)사는 “식품위생법 제88조에 따르면, ‘영양사 업무를 방해하지 말 것’이라고 명확히 명시된 만큼 영양사와의 계약사항에 조리사 직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자칫 법 위반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영양사들은 급식 현장에서 일손이 부족하거나 바쁠 경우 말하지 않아도 조리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며 “경남도내 소방서에 조리인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조리사 직무수행’이라는 문구로 불필요한 논란을 키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경남소방본부 측은 “계약서 작성 시 직무 내용에 ‘조리사 직무수행’ 문구를 빼는 방향으로 내부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본지에 알려왔다.

영양사, 채용 아닌 용역 형태도 있어

2021년 2월 1일 기준 전국 소방서에 근무할 영양사를 채용했거나 채용 중인 곳은 총 9곳으로, 대부분 공무직 형태였다. 하지만 인천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난 2017년부터 10개 소방서에 근무하는 영양사들을 모두 외부 용역 형태로 고용하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도 직원 만족도와 관리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인천지역 소방서에 근무할 영양사와 조리사를 계속 용역 형태로 고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직원들의 급식 만족도가 높아 현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며, 현재 공무직 전환 계획은 없다”며 “공무직 채용의 장점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용역 형태도 문제 발생 시 담당 업체가 원활하게 대처해주고 있어 장점으로 작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급식 관계자들은 인기 메뉴를 자주 제공해 소방서급식에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좋지만, 소방관의 업무 특수성이 반영된 급식을 위해서는 영양사들의 고용안정과 함께 전문성 함양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급식 관계자는 “외부 용역의 경우 일정 주기로 입찰을 통해 위탁업체가 결정되는데 이럴 경우 소방서급식만의 전문성은 물론 연속성도 떨어질 수 있다”며 “영양사를 직접 고용하면 소방관들의 영양컨설팅 데이터가 축적될 수 있고, 숙련된 노하우 또한 누적돼 장기적으로 소방관들의 건강 관리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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