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식재료 미식 기행 - 담양
지역 식재료 미식 기행 - 담양
  • 한식진흥원
  • 승인 2021.05.25 0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땅이 주는 선물 죽순

■ 변하지 않는 담백하고 아삭한 죽순의 맛  
옛날에는 대나무가 발이나 광주리, 소쿠리, 부채 등 여러 생활용품의 재료로 사용되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 대나무도 비싼 값에 팔려 대밭이 있는 집은 부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죽순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가끔 대나무 숲 주변의 논밭에 자라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죽순만을 채취하여 마치 산삼처럼 요긴하게 음식 재료로 사용하였다. 플라스틱 등 새로운 소재가 나온 이후, 대나무는 수요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였다. 불필요해진 대나무를 잘라내지 않으니 대숲이 사람 다닐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빽빽해졌다. 다양하고 풍부해진 식재료들로 인해 죽순에 대한 관심 또한 멀어져 갔다. 삼라만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죽순은 예로부터 식재료로 많이 애용되어 왔다. 매년 이맘때면 사람들이 다른 일을 제쳐두고 죽순을 따는 이유는 자명하다. 담백하고 아삭한 죽순 특유의 맛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식재료로서의 독특한 맛과 식감이 대나무 숲으로 이끄는 것이다.

다리에 칭칭 감기는 덤불들을 걷어내고 대나무밭 속으로 들어가는 일조차도 만만하지가 않다. 마치 정글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이다. 곳곳에 쓰러져 널브러진 대나무 줄기들이 컴컴한 숲속의 유령처럼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촘촘하게 자라난 대나무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이제 막 솟아나는 죽순을 찾는 일도 보통은 아니다. 이에 비해 죽순을 꺾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어린 대나무는 연약해서 발로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순수한 자연식품 
죽순은 수분함량이 높은 반면 칼로리가 100g당 13kcal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저칼로리 식품이며,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또한 단백질과 섬유질의 함량이 곡류와 육류에 비해 높으며,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이들 미네랄 중 상당수가 수용성이기 때문에 죽순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수시로 음용하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죽순 삶은 물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죽순을 버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순은 아무런 인공적인 도움이 없이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라난 순수한 자연식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과 효능으로 인해 이 식물은 비만과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현대인들에게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때는 버림받았던 죽순이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죽순을 데쳐 넣은 들깨죽 
죽순을 식재료로 쓰는 음식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들깨죽이다. 죽순을 데쳐 넣은 들깨죽은 죽순 특유의 향과 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죽순을 넣고 끓인 들깨죽 한 그릇은 맛이나 영양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한 끼 식사였다. 특히 모내기철, 죽순과 머윗대와 감자, 미역을 넣고 끓인 들깨죽은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여자들은 허리를 굽혀 농부가를 부르면서 모를 심고, 남자들은 못 짐을 져다 나르는 고된 작업을 하느라 지치고 허기져 있을 때, 논 주인이 가져다주는 이 음식은 반가운 선물이었다. 때로는 도심의 분위기 있고 값비싼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화려하고 기름진 메뉴와 예전의 전통 음식들에 대한 소위 효용의 크기를 비교할 때가 있다. 가끔 후자의 그것이 크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는 잊혀져가는 옛날 음식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리라.

■ 진정한 맛은 다만 담백할 따름
맑은 물처럼 담박하고 변함없는 우정과 교양을 기초로 한 군자들의 교제를 담수지교(淡水之交)라 한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 대신에 담백하고 순수한 맛을 가진 죽순이야말로 군자들의 교제와 다름 아니다. ‘채근담’에 의하면 “진한 술과 기름진 고기, 맵거나 단 것은 진정한 맛이 아니다. 진정한 맛은 다만 담백할 따름이다”며 음식의 참맛을 갈파하고 있다. 공자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고 말했다.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본모습을 화려한 화장품, 심지어는 성형수술로 가리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 순수함과 깨끗함의 표상인 죽순으로부터 군자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배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