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산 농축산물 쓰나미, 학교급식 덮친다
유럽산 농축산물 쓰나미, 학교급식 덮친다
  • 김재홍
  • 승인 2011.05.13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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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 우리 농산물 공급은‘통상마찰’, 유럽산 돼지고기는‘착한가격’
한·EU FTA가 발효되면 학교급식 식자재로 우리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경우 통상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공식 체결된‘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이하 한·EU FTA)’은 그동안 국회 비준동의안만 2번이나 철회되는 등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발생시키다가 지난 4일 밤에서야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본지는 한·EU FTA가 오는 7월부터 발효됐을 때 학교급식 및 농축산물 등과 관련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 점검해 본다.
학교급식, 우리 농산물 우선 사용 못해

한·EU FTA가 발효되면 EU는 학교급식용 식자재를 구입할 때 자국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상대적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가 한·EU FTA와 지난 1994년 체결된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WTO GPA. 이하 정부조달협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으로 정부조달협정은 WTO 회원국 간의 다자간무역협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994년 이 협정을 맺을 당시 정부조달을 제한 없이 개방해 현재까지 학교급식 문제에 관한 예외조항을 두지 못한 상태다. 당시 일부 사립학교만 급식을 시행하던 때라 예외조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학교급식용 식자재 구매 시 우리 농산물을 우선 구매 한다’는 학교급식예외조항을 넣어 2006년 1월 WTO에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현재까지 계류 중인 상태다.

그러나 정부는 “2006년 1월, 한·EU FTA 협상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EU측에 제출한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에 ‘학교급식용 식자재 구매에 우리 농산물을 우선 구매 한다’는 예외조항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개정될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되면 한·EU FTA에도 그대로 포함돼 적용될 예정이어서 향후 EU측이 급식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정부 안일한 태도 질책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태도와 달리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는“어리석고 무책임한 태도”라며 “5년 전에 제출된 개정안이 아직도 계류 중인 상황에서 급식관련 부분에 통상마찰이 없을 것이라 단언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냐”며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질책했다.

송기호 민변 변호사는 “EU측은1994년 당시 예외 조항을 마련해둔 덕분에 한·EU FTA가 발효된 후 자국 농산물을 우대하더라도 협정 위반으로 제소되지 않지만 우리는 학교급식용 식자재로 우리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면 통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난 2004년,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통상마찰을 우려해 “학교급식 식재료로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WTO 규정위반”이라며, 서울·경기·충북의 지역조례를 직접 대법원에 제소했고 전북과 경남의 조례도 지역 교육감에 의해 대법원에 제소됐으며, 그 과정에서 전북조례가 효력을 잃고 다시 제정됐던 사례 등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따라서 한·EUFTA의 7월 발효 이전에 정부조달협정의 개정이 먼저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한·EU FTA 재협상을 통해 급식관련 예외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급식 관련 원포인트 재협상 필요
2007년 4월 타결된 한·미 FTA와 지난해 8월 타결된 한·페루FTA에는 학교급식과 관련“자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유독 한·EU FTA에만 급식관련 예외조항이 없어 이 상태로 협정이 발효된다면 학교급식과 관련해 유럽 여러나라들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는 현재 학교급식 분야를 비롯한 일부 쟁점에 대해 원포인트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원포인트 재협상은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며“EU측은 이미 지난 2월 의회에서 FTA 동의안을 승인하고 발효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며, 또 급식에 대해서는 자국산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라 우리의 급식관련 예외조항도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WTO에 제출된 정부조달협정의 개정안이 발효되면 우리도 EU와 같이 학교급식 관련예외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의 발효시기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있다.

유럽산 돼지고기에 국내 축산농가 속수무책
한편 한·EU FTA가 발효되면 국내 양돈농가의 피해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연구원)은 한·EU FTA 발효 시 전체 농업분야 생산 감소의 93%가 축산업에서 발생하고 그 대부분이 양돈 산업의 피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냉동 삼겹살의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EU국가 중 삼겹살이 가장 비싼 네덜란드산이 ㎏당 6,250원으로 국내산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가격경쟁력이 뛰어나 FTA 발효 후 수입이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EU지역에서 수입된 냉동 삼겹살은 6만1,238t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비된22만t 가량의 삼겹살 가운데 30% 가까이 된다.

더구나 한·EU FTA가 발효되면 관세인하 등 더욱 저렴한 가격 경쟁력으로 인해 수입이 추가로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현재 EU는 국내 수입산 냉동삼겹살 시장의 77.4%를 점유하고 있다. 한·EU 협정은 유럽산 냉동 삼겹살의 관세 25%를 10년에 걸쳐 철폐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정부도“한·EU 발효 후 예상되는 축산업피해가 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한양돈협회 관계자는“EU에 이어 FTA 비준동의가 추진되고 있는 미국, 올해 안으로 FTA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호주 등이 모두 ‘축산대국’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축산농가의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원은 한·EU FTA 발효시 축산분야 외에도 15년간 연평균1,870억원 규모의 농어업 생산이 감소해 모두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품목별 관세철폐 조건 등에 따라 영향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농수산물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 피해 규모는 전체 농림수산업 생산액의 3분의1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EU FTA는 이제 발효를 앞두고 있다. 송 변호사는 “정부조달협정개정안이 언제 발효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FTA 협정문에 예외조항을 넣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정부조달협정 개정만 바라보는 무책임한 정부태도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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