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퇴근 후 채썰기 연습 지시… ‘직장 내 괴롭힘’
인권위, 퇴근 후 채썰기 연습 지시… ‘직장 내 괴롭힘’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2.10.07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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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 “업무 숙달 등 조리사를 위한 권고… 폭언한 적 없어”
조리사, “50일간 집에서 채썰기 연습 강요… 인격모독도 문제”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영양사가 조리사에게 퇴근 후 집에서 채썰기 연습을 지시하고, 이를 메신저로 보고하라고 한 행동에 대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이하 인권위)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인권위 판단에 영양사 사회에서는 ‘영양사가 과했다’는 반응과 ‘정당한 업무지시’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익명 결정문을 통해 광주광역시 A중학교 급식소에서 발생한 영양사와 조리사의 갈등은 ‘영양사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최근 인권위는 한 학교 영양사가 조리사에게 퇴근 후 채썰기 연습 등을 지시한 것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다.
최근 인권위는 한 학교 영양사가 조리사에게 퇴근 후 채썰기 연습 등을 지시한 것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다.

결정문에 따르면, 2021년 A중학교로 신규 발령받은 B조리사는 2021년 1월 8일부터 2월 25일까지 약 50일 동안 같은 학교 C영양사로부터 ‘주말을 포함해 매일 집에서 채썰기 연습을 한 후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C영양사가 다른 조리원들 앞에서 B조리사에 대해 ‘손가락이 길어서 일을 못 하게 생겼다’ ‘손이 이렇게 생긴 이들은 일을 못하고 게으르다’ 등의 언행을 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C영양사는 “채썰기 연습은 안전사고 예방, 조리업무 숙달, 위생관리 측면 등을 고려해 피해자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권유한 것”이며 “채썰기 연습 사진을 보내도록 한 것은 B조리사의 동의하에 이뤄졌으며, (B조리사가 말한)부적절한 언행은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인권위는 “근무시간 이외에는 다음 날 활동을 위해 모든 근로자들이 휴식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 업무 관련 지시를 한 것은 지위의 우위를 이용한 휴식권, 자유권 침해”로 판단했다.

이어 인권위는 “B조리사가 C영양사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스트레스 상황 반복 및 우울증‧불안 증상이 지속돼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이란 진단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또 “C영양사는 현재 퇴직했으나 괴롭힘 방지 차원에서 해당 중학교에 관련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해당 중학교 교장은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차원의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영양사 사회에서는 격한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주말까지 채썰기를 연습을 시키고 보고까지 지시한 것은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반응이 많지만, 반대로 “실제 역량 미달인 조리 종사자들이 많은데 그들을 무작정 방치만 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의 한 영양교사는 “근무시간에 연습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주말까지 연습을 시킨 데다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라고 한 것은 누가 봐도 지나쳤다”며 “역량이 부족하면 ‘연습하라’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런 것을 50번이나 하라고 하면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양교사는 “신규로 발령받은 영양사에게 교감이 ‘식단 작성이 미숙하니 주말에도 작성 연습하고, 결과를 사진으로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정상적인 업무지시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만약 실제로 해당 조리사가 문제가 있었다면 학교 측과 먼저 상의해 대안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서울의 한 학교 영양사도 “(B조리사가)‘얼마나 일을 못했으면 저랬을까’ 싶지만 두 달 가까이 계속한 건 괴롭힘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미숙한 조리인력이 학교급식 현장에 갈수록 많아진 결과라는 의견도 나온다.

세종시의 한 영양교사는 “경력이 많다는 조리인력이 칼질도 못 하고, 냉장고 청소는 물론 식자재 캔 따는 방법도 모른다는 것은 문제”라며 “공채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지만, 이 같은 조리인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인권위의 판단으로 인해 전체 영양(교)사의 명예만 손상되고, 미숙한 조리인력의 문제는 묻혀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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