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유치원 영양교사 ‘배치의 민낯’
지지부진한 유치원 영양교사 ‘배치의 민낯’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2.11.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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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유치원 중 12%만 영양교사 배치, ‘비정규직 영양사’ 수두룩
높은 노동강도 등 처우 수준은 ‘최저’… “인건비 지원제도 필요해”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2021년부터 ‘학교급식법’이 적용되면서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던 유치원 영양교사 배치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이처럼 영양교사 배치가 더딘 이유에 대해 현장에서는 유치원 운영자의 의지 부족 등을 지적하면서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육 당국의 정책적 무관심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영양교사 배치 유치원 ‘극소수’

서동용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유치원 중 영양교사 배치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어긴 유치원이 54개에 달했다.<본지 346호(2022년 10월 24일자) 참조> 

지지부진한 유치원 영양교사 배치에 대해 교육 당국이 정책적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경기 하남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한 유치원생 대상 영양교육 모습.
지지부진한 유치원 영양교사 배치에 대해 교육 당국이 정책적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경기 하남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한 유치원생 대상 영양교육 모습.

현행 학교급식법에는 급식을 제공하는 모든 국·공립유치원은 필히 영양교사를 배치해야 하고,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아 200인 이상인 시설은 영양교사 1명을 단독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리고 원아 100~199인 유치원은 1명의 영양교사가 2곳을 공동관리할 수 있다. 즉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54개 유치원은 현행법을 위반한 셈이다. 

유치원의 영양교사 배치율도 문제다. 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영양교사를 배치한 유치원은 전체 유치원 대비 12%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영양사’였다. 이들 신분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경북지역은 배치대상 중 98%의 유치원이 영양교사가 아닌 영양사를 배치했고, 심지어 이들의 98%는 비정규직이었다. 울산지역도 마찬가지 98%의 유치원에 영양사를 배치한 것은 동일했지만, 울산시교육청은 이들 모두를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전국적으로도 비정규직 비율은 56%로 높은 편이다. 특히 경북과 광주, 대구 등 10개 지역은 비정규직이 50% 이상인 반면 울산과 세종, 충북지역은 비정규직이 없다. 

유치원 갈 바엔 차라리 ‘임용’ 준비

유치원 영양교사 배치가 저조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제일 큰 문제는 ‘처우’와 ‘근무환경’이다. 

당초 학교급식법이 개정되면서 영양교사 배치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한 분야는 사립유치원이었다. 국·공립유치원 중 단설유치원은 학교급식법 적용 전에도 식품위생법과 유아교육법의 ‘급식관리기준’ 등을 적용받았고, 유아교육법상 영양사 배치기준(원아 100인 이상)에 해당되는 시설은 교육공무직 영양사가 그 자리를 메웠다. 또 병설유치원은 원아 수도 매우 적은 데다 초등학교와 급식을 공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사립유치원은 급식관리의 공백으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2020년 안산 H유치원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고, 급식관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하지만 아직도 사립유치원 중 상당수는 급식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영양(교)사의 존재를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을 방문해 원장과 면담해보면 급식 운영에 대한 조언과 위생관리에 관심 갖는 분들은 거의 없다”며 “운영자 무관심은 영양(교)사의 낮은 처우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높은 이직률로 나타나는 악순환이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 사립유치원 영양사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최저임금 혹은 이를 약간 상회하는 급여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학교에 비해 식수인원은 적지만, 영·유아인 터라 식단부터 조리법, 맛까지 더욱 신경 쓰이고, 급식을 이해 못 하는 유치원 운영자의 간섭도 훨씬 심하다. 또 점심식사와 오전·오후 2차례 간식은 물론 방학 중 돌봄교실 급식과 간식까지 준비하기도 한다. 여기에 2개의 유치원을 공동관리한다고 생각하면 사실상 노동강도는 최상급.

영양사 사회에서도 비슷한 반응이다.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 영양사는 “원장이나 다른 교사들이 급식을 대하는 태도가 미흡하고, 조리시설은 극도로 열악하다”며 “교육청은 유치원 급식시설 개선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유치원에 근무한다는 또 다른 영양사는 “조만간 퇴직할 예정”이라며 “‘유치원에서 근무하느니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인건비 지원, 전국으로 확산돼야”

이 같은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되기도 했지만, 일선 급식 관계자들이 교육 당국에 정책적 관심을 요청한 배경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제도가 교육청의 영양교사 인건비 지원이다.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중 서울과 대구에서만 시행되는 제도로, 지원되는 인건비와 처우 개선비, 유치원 부담비 등을 합해 영양교사의 처우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원아 수 100명 이상 사립유치원이 영양교사를 채용할 경우 1인당 연간 최대 3000만 원가량을 지원하며, 이는 단독 혹은 공동관리 여부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 대구시교육청도 1인당 최대 2300만 원가량을 매년 지급하는데 인건비와 별도로 지원되는 처우 개선비도 따로 제공돼 이를 합하면 서울교육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같은 정책은 현장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지역은 유치원 숫자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음에도 영양교사 배치율이 21%로 전국 17개 교육청 중 세 번째로 높다. 

서울의 한 유치원 영양사는 “인건비 지원 여부는 교육감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며 “안산 H유치원 식중독 사고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이제 교육 당국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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