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너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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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취재단
  • 승인 2011.06.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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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미 의원, 국민영양관리법 개정안 재발의 해프닝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 만학을 하며 영양사 면허 취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학생들이 최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4월 29일 손숙미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국민영양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비롯됐다.


손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민영양과 관련된 연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고, 영양사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영양개선 및 건강증진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것이 제안 이유다.

개정안에는 △국민영양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영양연구원을 설립하고 △영양사의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을 ‘고등교육법’제2조에 따른 학교중 대학·산업대학 또는 전문대학으로 한다는 신설조항을 달았다.

출신 자격이 아니라 처우개선이 절실

이 같은 개정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국립대학인 방송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영양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조건과 관련, 식품영양 전공 학생들이 반발한 것이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2조를 보면 고등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학교의 종류로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방송대학·통신대학·방송통신대학 및 사이버대학(이하‘원격대학’이라 한다)△기술대학 △각종 학교로 명시되어 있다.

손 의원의 개정안에는 방송대 등 이른바 원격대학이 제외돼 있었던 것이다.
방송대 가정학과(식품영양학전공) 재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 우리들을 응원해 주고 보듬어 줘야 할 국회의원이 이 같은 개정안을 발의한 행동에 말문이 막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학생은 “똑같이 공부하고 학점 이수한 후 시험을 통해 당당히 취득할 수 있는 면허인데 왜 출신학교에 따라 응시 기회조차 박탈하려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영양사의 위상은 출신 자격을 논하기보다 영양교사의 정원 확보나 비정규직 영양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더 절실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습과정 내실화”, 폄하 아니다 해명

이에 따라 방송대 학생들은 4월 말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입법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고 손 의원은 결국 개정안을 철회, 문제가 된 영양사 면허를 주는 대학 항목을 삭제하고 ‘한국영양관리원’을 두자는 내용만으로 지난달 24일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손 의원은 방송대의 반발이 커지자 홈페이지에 해명 글을 올렸다.
손의원은 “애초에 법안을 발의했던 취지는 방송대 전체를 무시하거나 폄훼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손 의원은 “다만 영양사와 같은 보건의료직의 특성상 실험과 실습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송대나 사이버대학의 영양관련 학과의 경우, 대부분의 교육과정이 원격으로 이뤄지고 있어 실험과 실습과정이 더욱 내실화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쪼록 오해가 있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방송대 영양사 합격률 전국 평균 상회

방송대 가정학과 학생들은 학교와 학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는 교재의 질이나 학습량에 있어 결코 타 대학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입학하기는 쉬워도 졸업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란 우스개 소리까지 학생들 사이에 회자되는 곳이 바로 방송대이다.

구재옥 방송대 가정학과 교수는 이번 일과 관련해 “손숙미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후에 이제 영양사의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제자들에게 실망을 준 행위가 됐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그동안 방송대 가정학과 교재집필에 공동저자로 참여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구 교수는 실습과정의 내실화를 언급한 손 의원의 지적에 대해 “방송대의 실습은 타 대학과 비교하더라도 학점이수를 위해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면대면 실습 이외에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강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또 “방송대 가정학과에 식품영양 전공을 만들 때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전공심화와 자질향상이라는 목적에 초점을 맞췄다. 당초 1, 2학년 재학생 중 식품영양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많았으며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정으로 인원이 대폭 제한되긴 했지만 그동안 방송대가 영양(교)사 배출에 기여한 부분이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영양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교직 진출이 불가한 전문대 가정학과 졸업생들을 위해 저렴한 학비와 철저한 교육이 장점인 방송대에 식품영양 전공이 개설돼야 한다는 데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었다"며 "당시 대한영양사협회도 적극 나서 전공 개설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구 교수의 말대로 방송대 가정학과 졸업생들의 영양사 합격률은 대략 50%선인 전국 평균 합격률을 상회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 시험에서는 64%의 높은 합격률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08년 123명, 2009년 140명, 2010년 235명 등 해마다 합격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구 교수는 “손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며 “단지 실습부족의 우려 때문에 그 같은 개정안을 발의한 것 자체가 씁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실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원격대학에서 영양사시험을 응시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됐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생들 스스로가 영양사 국시 대비를 충실히 해 타 대학에 비해 높은 합격률을 보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독려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방송대 가정학과 재학생들은 학교 차원에서 실험 실습과 현장 학습시간을 더욱 늘리는 등 실습 활동 강화를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 국립대학으로서의 예산을 배정 받아 ‘방송대 영양사 실습기관’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이번 일과 관련해 방송대 가정학과 학생들이 기존의 영양사협회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방송대 영양사 단체 설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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