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판결 내려진 ‘식위법 제96조의 득과 실’
위헌 판결 내려진 ‘식위법 제96조의 득과 실’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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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유치원 영양사 면허대여 행위 처벌, 사실상 ‘무력화’
‘위기는 곧 기회다’… 영양사 직무 범위 구체화에 관심 가져야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식품위생법(이하 식위법) 제96조(벌칙)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단체급식소에 근무하는 ‘영양사의 직무’에 관한 법률로 해당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을 때 내려지는 처벌조항이다. 현장에서는 단순히 처벌조항에 대한 판결이라 보기에는 관련 이슈들이 심상치 않은데다, 추후 단체급식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번 위헌 판결을 대한급식신문이 분석했다. 
- 편집자주 -


서울 영등포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연간 50만 원을 주고 B영양사를 고용했다. B영양사는 식단을 작성해 유치원으로 보내는 업무와 함께 매월 1회 정도 유치원을 방문해 급식 관련 장부를 점검하는 등의 업무만 맡아왔다. 

이 같은 행위는 결국 보건당국에 적발됐고, 보건당국은 식위법 제96조를 적용해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다. 식위법 제96조는 ‘동법 제52조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무력해진 식위법 벌칙조항

식위법 52조는 단체급식에 근무하는 영양사 직무에 관한 규정이다. 이 조항에 따른 영양사 직무는 ▲식단 작성과 검식, 배식관리 ▲구매 식품의 검수 및 관리 ▲급식시설의 위생적 관리 ▲급식소의 운영일지 작성 ▲종업원 영양지도 및 식품위생교육이다. 보건당국은 이 법 조항에 근거해 매월 1회 방문으로는 직무수행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벌금을 부과했다. 이후 A씨는 이에 불복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그리고 2019년 5월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해 약 5년 만에 ‘위헌’ 판결을 받았다.

헌재의 판결을 요약하면 ‘해당 조항은 영양사의 직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처벌조항도 역시 지나치게 광범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헌 판단을 내린 5인의 헌법재판관은 “처벌조항의 입법 취지나 입법연혁을 살펴볼 때 영양사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추단이 가능하지만, 처벌 대상에 대한 구체적이면서 유용한 기준은 도출해낼 수 없고, 이에 대한 법원 판례도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영양사가 급식소에 전혀 출근하지 않고 아무런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직무 미수행’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으나 사안에 따라서는 불분명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급식시설 위생적 관리’의 경우 안전한 급식을 위한 제반 업무 일체를 통칭하는데 위생적 관리를 위한 광범위한 업무 중 일부를 누락 또는 소홀했다고 위생적 관리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인의 재판관은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식위법 제96조는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면허대여, 당분간 ‘처벌 불가’

이번 판결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규정을 위반한 ‘급식소 공동관리’나 ‘영양사 면허대여’에 가까운 형태를 당분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이런 행위로 문제가 된 분야는 원아 수가 적은 소규모 어린이급식소다. 

유치원은 지난 2021년 학교급식법의 확대 적용으로 모든 국공립유치원과 원아 50인 인상인 사립유치원은 학교급식법을 적용받는다. 이에 따라 모든 국공립유치원은 원아 수와 관계없이 그리고 사립유치원은 원아 200인 이상인 경우 반드시 영양(교)사를 1명 배치해야 한다. 

2020년 집단식중독 사건이 발생한 안산 H유치원 모습. 당시 H유치원은 원아가 150명 가까이 되었음에도 공동관리 영양사로 급식을 운영하면서 오염된 식자재로 급식을 제공해 100여 명의 원아들이 식중독에 감염됐다. 결국 해당 유치원 원장과 영양사는 구속됐다.
2020년 집단식중독 사건이 발생한 안산 H유치원 모습. 당시 H유치원은 원아가 150명 가까이 되었음에도 공동관리 영양사로 급식을 운영하면서 오염된 식자재로 급식을 제공해 100여 명의 원아들이 식중독에 감염됐다. 결국 해당 유치원 원장과 영양사는 구속됐다.

하지만 원아 100명 이상 ~ 200명 미만인 사립유치원은 1명의 영양사가 유치원 2곳을 공동관리할 수 있다. 원아 수가 적은 탓에 영양사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립유치원 사정을 감안한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 사각지대를 틈타 여전히 일부 사립유치원은 공동관리라는 명목 아래 영양사를 정상 채용하지 않고, 시간제 근무 형태로 채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A씨 역시 B영양사에게 연간 50만 원을 지급하며 일부 업무만 수행하도록 한 것은 비정상적인 채용이다. 급식 운영을 총괄하는 영양사가 월 1회 방문해 제대로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이는 사실상 영양사 면허대여 행위에 가깝다. 그럼에도 소규모 사립유치원과 학교급식법을 적용받지 않은 어린이집, 식수 인원이 적은 복지시설급식에서는 여전히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즉 이 같은 면허대여 행위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식위법 제96조였는데 이번 헌재 판결로 앞으로는 처벌이 어렵게 됐다. 강원도의 한 영양교사는 “공동관리 영양사가 어떤 형태로 근무하는지는 조사하지 않으면 알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어린이집은 물론 상당수 사립유치원이 공동관리라는 명분으로 면허대여 행위를 일삼고 있는데 처벌할 법령이 없어진 셈이어서 앞으로 이런 행태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비 쉽지 않은 ‘영양사 직무’

일단 이번 헌재 판결 이후 주무 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 이하 식약처)는 법령 정비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처벌 법령 공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헌재의 판결 요지가 ‘처벌을 하려면 먼저 영양사 직무 범위를 명확히 하라’는 뜻이고, 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영양사는 식단을 짜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실제 영양사의 직무 범위는 꽤 넓다. 식단 작성만 보더라도 식자재 단가 조사부터 급식소 예산 파악, 영양량 확인, 특정 식자재 반영 요구 처리까지 직무가 적지 않다. 여기에 식자재 발주, 인력 운용, 위생안전, 교육 등 모든 부문을 맡아야 한다.

유치원에서 원아들이 급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유치원에서 원아들이 급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식약처는 이처럼 복잡하고 광범위한 영양사 직무를 어떻게 정리할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단시간에 마무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직무 범위 논의가 쉽지 않은데다 영양(교)사들이 근무하는 분야 또한 제각각이어서 이에 대한 파악은 물론 입법부인 국회 승인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헌재의 위헌 판결 직후부터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당분간 공백 기간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법령 개정 방향과 영양사 직무 범위 규정 등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라 최대한 신속하게 법 개정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식약처의 공식 입장”이라고 전했다. 

영양사 위상 강화 계기로 삼아야

일각에서는 이번 헌재 판결을 영양사 직군 위상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체급식에 사실상 핵심 역할을 하는 영양사임에도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중요 업무부터 단순 업무까지 급식과 관련된 모든 업무가 영양사에게 내려지기 때문이다. 

필수 업무라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업무 범위가 아님에도 단순히 식품 또는 위생 등과 관련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양사에게 떠넘겨지는 업무도 많다. 즉 이번 영양사 직무 범위 정비를 계기로 업무가 명확해지면 향후 억울하게 업무를 떠맡는 일은 크게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어느 분야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중점 업무가 달라지는 점도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영양사와 병원 혹은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는 영양사는 직무 범위가 달라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학교급식은 학생들의 균형 잡힌 성장과 식생활교육이 목적이라면 병원은 환자 회복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영양사단체 임원을 지낸 한 영양사는 “영양사 면허가 생긴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영양사 직무 범위와 역할을 규정한 법령은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영양사 직무 범위 규정은 영양사 직군의 대내외적인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모든 영양사들이 관심을 갖고 의견 개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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