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나같은 사람, 다시는 없어야 해요” 
[이슈인터뷰] “나같은 사람, 다시는 없어야 해요”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05.19 1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암 확진 4년차인 조리종사자 홍윤자 씨
산후조리원 조리실 근무 10년 만에 폐암 확진, 현재 수술도 불가능한 수준 
“조리실 면적 기준 없는 법령, 보건당국 형식적 위생점검도 문제” 지적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오랜 기간 학교급식 조리실에서 근무한 조리종사자들이 잇따라 폐암 확진을 받고 있다. 폐암 및 폐 이상의 원인은 ‘조리 흄(Cooking Fume)’. 음식을 기름에 튀기거나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미세물질로 일반적인 마스크로는 차단이 되지 않아 애초부터 조리 흄 발생을 억제하거나 인체가 흡입하기 전에 조리실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따라서 조리실의 일정한 면적 확보 및 환기설비가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그동안 교육당국은 이 문제를 사실상 ‘도외시’해왔고 그 결과가 최근의 폐암 발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조리 흄의 위협을 방치하는 급식 분야가 더 많다는 점이다. 특히 학교에 비해 공공성이 낮고 이윤 극대화를 위해 오히려 조리실 공간은 매우 좁게 설계하는 단체급식소가 적지 않다. 그리고 홍윤자(서울 동작구, 68세) 씨는 10여 년간 산후조리원 조리실에서 근무해오다 지난 2020년 폐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나와 같은 사람이 더이상 없어야 한다”며 대한급식신문에 인터뷰를 요청한 홍윤자 씨
“나와 같은 사람이 더이상 없어야 한다”며 대한급식신문에 인터뷰를 요청한 홍윤자 씨

홍 씨는 대한급식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교급식 조리실보다 일반 급식소나 외식업소의 조리실 환경이 더욱 심각하다”며 “나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문에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리실 환경, 극도로 열악”

“가정내 사정 때문에 제가 일찍부터 직장을 가졌어요. 고향에서는 한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서울에 와서도 음식점과 관련된 일을 했지요. 2010년부터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의 대형 산후조리원 조리실에서 일했어요. 근무기간이 총 10년쯤 될 것입니다. 그러다 65세에 받은 정기검진에서 폐암이 발견됐어요. 저는 폐암 확진 전까지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기자와 만난 홍윤자 씨는 폐암과의 싸움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홍 씨의 말에 따르면 2020년 폐암 확진 당시부터 폐암 예후가 너무 좋지 않아 수술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의료진은 일반적인 항암제보다 강한 ‘표적항암제’ 치료를 권했다. 표적항암제란 특정 암의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사멸시키는 항암제. 최초의 항암제보다는 진보됐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홍 씨도 이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몸 곳곳에 붉은색 반점이 무수히 나타나 가려움증과 통증을 유발하고 사실상 일상생활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학병원 호흡기내과는 물론 피부과, 정형외과 등의 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다. 하체에도 번지고 있는 붉은 반점 때문에 오래 앉아있기 어려운 홍 씨는 1시간 30분에 가까운 인터뷰 시간 동안 서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홍 씨는 자신이 폐암을 얻게 된 원인이 조리실 환경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홍 씨는 “6년간 일했던 서초구 A산후조리원은 산모방이 30여 개에 달하고 여러 층을 동시에 운영하는 대형 산후조리원이었음에도 제가 일했을 당시 조리실 면적이 3평보다 약간 작았을 것”이라며 “조리종사자 숫자도 많을 때가 3명일 정도로 근무환경이 열악했다”고 말했다. 조리실 공간이 너무 좁은데다 환기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조리시 발생하는 연기를 고스란히 마셔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후조리원 리모델링을 하려면 일단 운영을 일시중단해야 하는데 해당 조리원은 운영 중단 대신 입원한 산모들을 공사를 하지 않은 층으로 모두 옮겨놓고 비어 있는 층의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며 “조리실이 가장 낮은 2층에 있던 터라 온갖 먼지가 조리실을 가득 채웠는데 제공된 음식에는 문제가 없었더라도 조리종사자 건강에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당국 형식적 위생점검”

홍 씨는 인터뷰 내내 “학교급식 조리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일반 단체급식소나 외식업소의 조리실 환경이 더욱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외식업소를 직접 운영하고 영양사가 없는 시설에서 식단 작성과 식자재 발주, 산모방 배식까지 맡아왔던 경험에서 내린 결론이다. 홍 씨는 “서울 지역처럼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식당이나 산모방처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게 만들고 조리실은 매우 비좁게 설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됐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조리실 공간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조리실 면적 확보는 조리종사자 업무강도와 조리 흄 배출, 조리과정의 효율화, 위생관리 측면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 법령 체계상 조리실 면적을 명시한 법 조문은 없다. 조리실 설치에 대한 법 조문은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별표14 ‘업종별시설기준’에서 찾을 수 있지만 ▲내부공개 ▲배수구 덮개 설치 ▲환기설비 ▲조리시설·세척시설·폐기물용기 설치 ▲공동조리장 등의 내용이 있을 뿐 구체적인 면적에 대한 규정은 없다.

홍 씨는 “일반 사업체라면 몰라도 식수인원이 예측가능한 단체급식소는 조리실 면적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건당국의 위생점검이 ‘형식적이었다’는 비판도 내놓았다. 홍 씨는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는 동안 보건소의 위생점검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됐다”며 “점검반이 몇 일 몇 시에 점검이 나온다는 사실을 산후조리원 측에 미리 알려주고 제대로 청소되어 있지 않은 조리실내 후드와 배기장치를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홍 씨는 인터뷰 내내 산후조리원과 서초구·강남구보건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민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시는 나같은 사람 없어야”

홍 씨는 인터뷰에 나선 이유에 대해 ‘스스로가 너무 억울해서’라고 말했다. 폐암이 확진되고 항암치료가 이어지면서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을 느끼면서 어느 날 갑자기 ‘화가 나고 억울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시는 나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홍 씨는 “학력이 짧은 여성들이 조리종사자 직종을 많이 선택할 것인데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답답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정부의 관심을 강력하게 촉구하면서도 조리종사자 스스로 건강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정밀검사가 아닌, X레이 사진에서 판독의사가 폐암을 발견했고 다른 의사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고 했어요. 그래도 폐암인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고통받고 있어요. 조리종사자분들은 꼭 정기적으로 CT촬영이나 건강검진을 받아서 건강을 관리해주세요. 저 같은 사람이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홍윤자 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