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와 자치단체 행정처분 통보 각기 상이 “서둘러 개편해야”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소비(유통)기한이 경과한 제품을 보관하다 보건 당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음에도 학교급식 입찰에 참여해 납품까지 마친 업체들의 계약 규모가 10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사장 김춘진, 이하 aT)가 운영하는 ‘공공급식통합플랫폼(이하 플랫폼)’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일각에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불량업체에 내려지는 행정처분을 aT가 즉시 확인할 수 없는 ‘제도적 허점’ 또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어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해 빠른 제도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
뒤늦게 확인되는 업체 행정처분
감사원(원장 최재해)이 지난달 31일 aT에 대한 정기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과태료로 행정처분으로 플랫폼을 이용할 수 없는 업체임에도 식자재 납품 계약을 체결한 업체가 47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체결 규모는 675건에 102억 원가량으로 집계됐다.
감사원 보고서에 등장하는 A업체는 소비(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해 지난해 10월 서울 중랑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후에도 3개월간 93건, 18억여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또 다른 B업체는 2019년 이후 경기 시흥시청으로부터 연달아 3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133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업체의 계약 금액은 31억4000만 원에 달했다.
이들 업체 중에는 aT 과실로 인한 처분 누락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A업체의 경우 서울 중랑구청이 행정처분 사실을 aT에 통보했음에도 플랫폼에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A업체는 영업정지 기간인 올해 1월 7일부터 21일까지 1억 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aT의 정보 입력 누락으로 영업정지 기간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C업체를 포함해 3개였으며, 계약 규모는 2억3900여 만 원이었다. 이처럼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들이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aT가 행정처분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지적한 문제 재등장
지난 2012년 감사원은 자치단체와 플랫폼(당시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이 행정처분 결과를 공유하거나 계약체결 시점에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감사 결과를 보면 지난 10여 년 전 이미 지적한 부실한 업체 관리가 개선되지 못한 채 여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자치단체는 정부의 행정업무 체계인 ‘새올행정시스템’에 업체 행정처분을 공지하고 aT 또한 이를 전달받지만, aT는 사업자등록번호로 업체를 관리하는 반면 자치단체는 인허가번호로 공지한다. 따라서 aT가 행정처분 업체 정보를 받아도 수작업으로 일일이 대조해 플랫폼 등록업체인지 확인해야 하는 애로가 있는 것이다.
감사원 역시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aT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정보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aT 공공급식처 고위 임원은 “감사원 감사 이후 식약처와 협조해 늦어도 올해 내에 일치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령업체들 방치, 이젠 안 될 일
감사원은 이 같은 문제 외에도 플랫폼에 제기된 여러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유령·위장업체’ 문제다. ‘낙찰하한율’을 도입해 진행하는 플랫폼 입찰 구조상 입찰 횟수가 높을수록 낙찰확률이 높아지는 탓에 1인의 실소유주가 지인과 가족 등의 명의를 빌려 위장업체를 설립한 후 응찰하는 행위다.
감사원은 직접 전국 초·중고 영양(교)사 831명을 대상으로 유령업체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 중 542명(65.2%)가 유령업체를 경험했고, 570명은 입찰공고의 품질기준에 미달한 불량 식자재를 납품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응답자 중 534명(64.3%)은 유령업체가 불량 식자재 납품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또 aT는 유령업체를 걸러내기 위해 등록된 차량으로만 납품하도록 하는 ‘배송차량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설문에 응한 601명(72.3%)의 영양(교)사들은 등록된 차량인지 매번 확인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사실상 배송차량등록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감사원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aT가 운영하는 ‘유령업체 신고센터(이하 신고센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제보창구 확대와 제보자 인센티브 등의 방법도 제안했다. aT 자료에 따르면, 연간 신고센터로 접수되는 신고는 100건도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플랫폼 등록업체가 1만 개가 넘고, 이 중 한 번이라도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5000개 이상이다. 또 이들이 맺는 연간 계약 건수가 30만 건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신고 건수가 매우 적은 셈이다.
이에 대해 aT 관계자는 “신고센터 운영 확대를 aT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aT가 가진 권한과 인센티브 종류 등을 검토하느라 곧바로 실행되지 못했다”며 “감사원 지적에 따라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 추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성실업체’ 육성, 제도화해야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유령업체에 대한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더 커졌지만, 이와 동시에 ‘성실업체(화이트리스트업체)’ 육성의 필요성도 재차 제기된다.
처벌과 점검 등을 강화해도 근본적으로 유령업체를 근절할 수 없다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는 화이트리스트업체를 선발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에 등록된 한 식자재업체 관계자는 “플랫폼이 모델로 삼는 조달청 나라장터(G2B)에도 ‘우수업체 가산점 제도’가 있는 것처럼 일정 기준을 충족한 업체에 작은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도 업체의 의욕을 높이는 것은 물론, 불량업체를 축출하기 위한 신고센터 운영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T 고위 임원은 “우수업체 육성이라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국가계약법을 직접 적용받는 조달청과 준정부기관인 aT의 법적 권한 및 역할이 달라 섣불리 시도하지 못했다”며 “다만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던 만큼 우수업체 육성에 대한 제안을 aT 권한 내에서 도입할 수 있는지 빠른 시간 내에 검토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