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여름휴가 없어도 아이들 덕에 ‘난 행복해’
[박경희]여름휴가 없어도 아이들 덕에 ‘난 행복해’
  • 편집국
  • 승인 2012.07.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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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희 영양사 <경북 구미 남계초등학교>

이른 아침 검수를 마치고 서류정리와 하루일과를 시작하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아이들이 회람서류를 들고 내 방을 찾아왔다.


내용인즉 ‘학부모 학교 참여 활성화 방안’ 사업과 관련한 업무 분장표였다. 급식모니터 동아리 봉사단의 담당자가 영양사가 아닌 보조 담당자로 인쇄된 공문에 사인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내가 지난 2년간 겪어야 했던 슬픈 기억이 떠올랐다. 본교는 농촌형학교로 급식인원 200명 남짓한 소규모 학교로 학부모 참여가 활성화 되어있었다. 2년 전부터 ‘학부모 학교 활성화 방안’ 이란 주제의 시범학교로 지정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학부모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상황이어서 급식모니터 동아리 봉사단으로 그 중추적인 역할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었다.

◇‘박봉’ 들먹이는 동료에 ‘yes’로 일축
시범 1년차 중간 점검 과정 동아리 컨설팅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장학사님이 나에게 “영양선생님도 명단에 올라 있지요?”라고 말하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연구부장님의 묵묵부답, 그리고 애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다른 봉사동아리 선생님들, 그 짧은 시간동안 내 모습은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마치 ‘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영양사가 아닌 교사가 없었던 것이다. 시범점수를 받을 급식담당 선생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행사를 준비하고 체험하면서 그 힘겨웠던 시간들, 특별한 보상을 기대한 적도 없었기에 ‘그저 학교의 일원으로 내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됐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두고두고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또한 기약 없는 산가대체 영양사시절 누군가 “왜 선생님은 이곳이 아니어도 일할 곳이 많을 텐데요. 왜 박봉의 월급을 받으며 이곳에 머물러 있느냐?”고 묻는 순간, 난 궁색한 변명조차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이 너무도 슬펐다.

그때 행정실 창 너머로 들려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며 내가 던진 희미한 말 한마디. “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로 지금 내가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였다고 자신 없이 말했다.

몇 년 후 내가 일용직 영양사에서 무기계약 회계직 영양사로 일을 하게 된 오늘에도 아주 가끔 그 선생님은 내게 질문을 던진다. 박샘 아직도 그때 그 질문에 답은 변함이 없냐고. 당연 내 대답은 당당하게 ‘yes’였다.

학교 영양사로 근무한지도 어언 10년차가 되어가는 지금, 아마 앞으로도 그 대답은 ‘yes’로 남을 것이다.

◇여름휴가 없지만 그래도 ‘행복’
그러나 난 마냥 그 자리에서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지금 현실의 벽을 넘고자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자가 연수도 해당되지 않았던 대학원을 다녔다. 병든 노모를 뒤로 하고 먼 길을 통학했던 그 막막한 대학원 시절을 보내면서 내 자신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은 “과연 이것만이 최선이었을까?”라는 것이었다.

내가 담당하는 일을 하고도 이름 석자도 올릴 수 없는 현실. 하지만 난 허황된 희망을 꿈꾸진 않았다. 그저 내가 꿈꾸는 것은 아이들의 웃음이 묻어나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그들과 함께하는 것과 작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의 긍정적인 대가가 주어지길 바랄뿐이다.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던 그 아픈 사건을 뒤로 하고, 난 오늘도 내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올해는 시범사업이 아니어서 좀 더 자유롭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기에 아이들과 직거래 농가인 친환경 딸기밭 체험을 학부모 급식모니터봉사단과 함께 올 초에 다녀왔다.

하반기에는 ▲전통음식만들기 행사 ▲미각체험 ▲일일급식체험 ▲급식공개 등 빠듯한 학교급식 외에도 짜여 진 행사일정을 소화해 내기위해 내 여름방학은 쉬어보지 못하고 또 그렇게 분주하게 보내겠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우리 아이들이 있어서.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그 어떤 규정과 틀보다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당당하게 소개될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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