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현] 영양사의 하루, 참 길다
[송주현] 영양사의 하루, 참 길다
  • 편집국
  • 승인 2012.09.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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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주현 대전 노은고등학교 영양사
아침 알람이 울리기전, ‘습도 높다는데 식단 괜찮나? 퇴근하는 신입 조리원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는데, 설문지 통계 빨리 내야겠구나’ 반복되는 아침 일상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 등하교 길을 한 번도 맞이 해본 없는 늘 바쁜 엄마는 어김없이 입시생 보다 더한 사명감과 두려움을 갖고 학교를 향한다. 전쟁하듯 여러 대의 냉동차가 교문 입구를 막고 있다. 달려 들어간다.

요구사항을 전달하지만, 피곤에 지쳐있는 조리원의 모습에 마음이 안좋다. 또 하루에도 몇 번씩 땀으로 범벅돼 있는 모습에 난, 혼자 에어컨 한번 시원하게 못 틀겠다. 가끔은 조리원들이 모두 아파서 못나오는 가위에 눌릴 때가 있다. 그러면 그저 안전사고 없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만도 감사하다.

고기 달라, 생선 싫다, 돈가스 크기가 크다, 작다, 한 달에 한 번 주는 메뉴에도 매일 준다고 투덜거리는 아이 등 참 다양하다. 그래도 급식을 먹으러 오지도 않는 아이보단 투덜대는 아이들이 고맙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늦은 점심을 먹고 남은 업무를 보며 생각한다. ‘신분사회도 아닌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참교육을 부르짖는 교육현장에서, 점심시간에 두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니? 점심시간 휴게는 고사하고 편한 점심이라도 먹어봤음 좋겠다. 얼마나 모순의 현장이고 역행적인 시대착오인가?’ 그리고 미래를 꿈꿀 여유도 주지 않는 역행적인 행정은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고용안전 및 처우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만들어진 복지비는 ‘연봉제직원과의 형평성 문제라는 이유로 호봉제 학교 회계직은 감액돼야 한다’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지침이 공문화가 돼 통보됐다. 결론적으로 돈 몇 푼에 십년 가까이를 ‘나아지겠지’라는 기다림의 낙으로 버텨온 영양사는 긍지와 자부를 잃은 영양사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 영양사는 천명의 어머니야. 고마워”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과 투덜거려도 학교자랑에 급식을 최고로 뽑아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난 또 내일을 기다리며 어둑한 학교를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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