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 영양(교)사 ‘그린푸드존’ 단속 정당한가?
Special Issue - 영양(교)사 ‘그린푸드존’ 단속 정당한가?
  • 대한급식신문
  • 승인 2009.05.0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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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교사 단속업무 지시는 월권행위”법적 단속 근거도 없어…그린푸드존 관리는 지자체 업무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이하 어린이식특법)’ 시행을 위해 지자체와 함께 학교 주변 200m 이내 구역을 그린푸드존으로 지정해 고열량·저영양 식품과 정서 저해식품을 관리하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은 이에 따라 앞 다투어 그린푸드존을 설치하고 전담요원을 배치한다는 계획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유래 없이 법 시행 전부터 움직이는 지자체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급식을 책임지는 영양(교)사들에게 지자체가 법적 근거도 없이 학교 밖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초 서울 용산구 모 초등학교에 공문 하나가 왔다. 어린이식특법 시행에 따라 초등학교 주변 기호식품 점검 및 지도를 위해 ‘어린이 기호식품전담관리원(이하 전담관리원)’을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추천 대상은 영양교사가 당연직으로 포함돼 있었고 평소에 식품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 중에서 2명을 추천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학교 밖200m 내의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이하 그린푸드존)에 있는 조리·판매업소의 식품위생에 관한 지도 및 계몽과 어린이 기호식품 우수판매업소의 고열량·저영양 식품 판매 여부 점검 등이다.

 

또한 위해식품 및 정서 저해식품의 판매 여부 점검, 수거 검사 지원 등도 업무에 포함된다. 이에 해당 지역의 영양교사들은 구청의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용산구에 있는 모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그린푸드존의관리는 지자체에서 전담관리원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급식을 책임지고 있는 영양교사에게 학교 밖 식품에 대한 단속업무까지 시키는 것은 월권행위이다”라며 “업무 협조 차원에서 보낸 공문이라고 하기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법적 근거도 없이 영양(교)사를 그린푸드존의 점검 및 단속업무에 당연직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공문을 보낸 지자체에 문의한 결과 담당자는“어린이의 안전한 식생활을 위해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영양(교)사가 함께 참여해 관리를 하면 점검 수준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협조 공문을 보냈던 것”이라며 “이 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민원이 접수돼 해당 문구를 수정한 후 다시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용산구의 경우 담당자의 실수라며 단순 해프닝으로 넘겼지만 상황을 모르는 타 지역 영양교사들은 지자체에서 협조 요청을 할 경우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전담관리요원에 영양(교)사나 학부모를 포함시킨다는 내용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식특법 제6조에 따르면 ‘전담관리원’은 식품위생법 제3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의 자격을 갖춘 자’에 한하고 있다. 그런데 지자체에서는 임의로 학부모와 영양(교)사를 관리원으로 위촉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식품위생법에는 ‘식품위생에 관한 지식이 있는 자’를 지자체장이 감시원으로 위촉하도록 돼 있어 식품 전문가가 아닌 학부모들도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지자체에서 시도한 추진안들은 모두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다만 학부모들은 전문교육을 받은 후 지자체장이 위촉을 하면 활동을 할 수 있다. 충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지자체에서 전담관리원을 지정하고 운영하는 데 사용되는 경비는 ‘식품진흥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별도의 예산도 필요 없다”며 “이를 근거로 얼마든지 전문 인력을 양성해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데도 다른 지자체보다 먼저실적을 보이기 위해 지나치게 의욕이 앞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전문가인 학교 영양(교)사가 함께 지도·점검을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현장을 전혀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영양(교)사들은 지적하고 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영양교사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일인데 우리도 나서서 하고 싶지만 학교급식을 책임지고 있는 영양(교)사가 본 업무를 제쳐두고 학교 밖단속을 하게 된다면 야기되는 문제점들이 많다”며 “만약 식중독 사고라도 생기면 조리 현장 지휘의 책임이 있는 영양(교)사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단속에 대한 행정처분 권한이 없는 영양(교)사들이 학교 앞 문방구나 떡볶이가게를 점검·단속하는 것도 문제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지난해 멜라민 파동 때 식약청의 협조 요청으로 학교 앞에 단속을 나갔었는데 ‘권한도 없으면서 왜 단속을 하느냐’며 가게 주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했었다”고 전했다.
아울러“식약청에 ‘몇 명이서 어디어디 갔었다’라는 식의 실적보고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며단속의 실효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또한 서울의 모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지난해 단속 나갔을 때 업체 사장이 무언의 협박을 해와 겁이 났었다”라며 “학교를 옮기기 전까지 매일 보는 사람들인데 행정권한도 없이 단속을 한다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그린푸드존 단속에 대해 식약청은 “올해는 계도기간으로 추진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린이식특법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식약청은 아직 교육과학기술부와 업무 협의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고 ‘지침’도 마련이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한 법 시행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글_한상헌 기자 hsh@fsnews.co.kr 사진_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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