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모든 절차 마쳐 부실 낙찰업체 검증 미흡
온라인서 모든 절차 마쳐 부실 낙찰업체 검증 미흡
  • 대한급식신문
  • 승인 2009.10.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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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ㆍ안전성 등 갖춘 적격심사도 함께해야” 의견 많아

전자입찰제도는 각종 급식계약 비리를 없애 좀 더 투명한 공공구매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행정 간소화는 이뤘지만 온라인상에서만 진행되다 보니 낙찰업체에 대한 검증작업이 미흡해 부정한 방법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식재료 공급의 전자입찰제도,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본다.
 

▲ 건설자재와 같이 정형화된 제품이 아닌 학교급식과 같은 식재료 납품 계약에는 허점이 많은 전자입찰제도 적용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것 으로 보인다. 경주의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식을 받는 모습.


학교급식 계약의 투명성을 높이고 안전한 식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도입한 전자입찰제도에 서서히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부산지역에서 학교급식에 식재료를 부정 납품한 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그 중 실제로 급식용 축산물 유통을 하지 않으면서 축산물 유통업체의 공인인증서를 빌려 부정 입찰한 업체도 붙잡혔다.
이번에 적발된 급식업체 대표 임모 씨(59)는 국가종합전자조달사이트인 나라장터(G2B)에 공지되는 입찰공고를 보고, 축산물 유통업체 3곳으로부터 공인인증서를 빌려 응찰해 납품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해당계약을 한 학교에는 공인인증서를 빌려준 업체들이 납품을 했고 임모 씨는 수수료 명목으로 납품대금의 10% 가량을 받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 부정 응찰ㆍ계약 ‘아직도 진행 중

 

 

’이 사건을 담당했던 부산지방경찰청 이기택 경사는 “이들은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학교급식 전자입찰만 전문적으로 위탁 처리하는 업체였다”며 “공인인증서는 물론 인감도장 등 계약에 필요한 서류나 물품을 갖추고 활동해왔다”고 밝혔다. 또 이 경사는 “지금도 이와 유사한 부정입찰 범죄가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현재 수사 중인 것도 있다”고 전했다.
부산의 모 축산업체 대표 김모 씨(37)는 지난 3월부터 6월 사이 나라장터(G2B)를 통해 학교급식 납품계약을 따냈다. 그 후김 씨는 저가 냉동돼지고기를 냉장육인 것처럼 속여 37회에 거쳐 총 1,580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경사는 “학교는 식자재에 대한 검수를 대부분 육안으로만 하고 있어 판별이 쉽지 않은 육류를 속여 팔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사업체 간의 담합을 통해 부정 응찰하는 경우도 있다. 담합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중범죄 이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방법이 없다는 게 한계다. 실제로 지난해 광주광역시에서는 전자입찰을 통해 농산물공급을 위한 급식계약을 진행했지만 업체들의 담합으로 단독 입찰한 업체와 계약을 하게 된 사례가 있었다.경기도에서 10여 년간 학교에 식재료를 공급해온 한 수산물업체 대표는 “업체들끼리 담합해 특정지역별로 한꺼번에 응찰한 뒤 그 중 한 업체가 낙찰 받으면 해당 학교와 가장 가까운 다른 업체에 납품권을 넘기는 이른바 ‘밀어주기식’ 으로 운영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부정계약에 대한 신고란을 마련해 놓았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며 “부정입찰은 갈수록 지능화돼 단속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이들 부정 거래의 공통점은 수·발주 당사자들이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컴퓨터상에서 입찰부터 계약까지의 모든 절차가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됐다는 점이다. 전자입찰제도의 허점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범법 사실 즉각 규명 어려워

정부는 공공구매계약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및 지자체 등에서 발주하는 공사나 물품거래는 모두 나라장터에서 진행하도록 권장해왔다. 이에 따라 각 시도교육청들도 급식 관련 계약의 청렴도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나라장터를 이용한 전자입찰제도를 잇따라 도입, 시행 중이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은 올해부터 ‘클린계약제도’를 시행, 기존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2,000만 원 이하의 학교급식 식재료 계약까지 전자입찰로 진행하도록 했다. 전자입찰은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인인증서 도용사건처럼 ‘IP추적’이라는 정밀한 수사가 없다면 부정한 방법을 밝혀내기 힘들다. 또 계약업체와 납품업체가 달라도 허위서류를 그럴 듯하게 꾸밀 경우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물리적으로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전자입찰제도는 당초 취지나 기대와 달리 이를 악용하는 범법업체들을 늘리고 있어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학교현장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전자입찰을 고수하는 이유는 수의계약을 할 경우 온갖 루머에 휩싸일 가능성이 큰데다, 감사에서 지적 받기 때문이다.
모 중학교 행정실장은 “수의계약을 하게 되면 납품업체와 계약하는 이유를 문서로 증명해야 하는데 마치 뒷거래가 있는 듯한 의심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도 싫고, 일일이 서류를 챙기다 보면 불필요한 행정낭비가 될 수 있어 아예 전자입찰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자입찰의 문제점이 계속해서 불거지는 건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자입찰 업체가 부정물품을 납품해도 학교급식법에는 처벌 조항이 없어 고작해야 사기죄밖에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공인인증서를 대여해 입찰한 사건은 ‘전자서명법’에 의해 벌금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볼모로 저지른 범죄에 비해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가격보다 품질 우선” 개선론 제기

전자입찰은 공개가격입찰 방식으로 진행되고, 가격이 납품업체 결정의 최우선 조건이 되는 탓에 부정한 거래와 탈법 계약을 낳고 있다. 식재료의 품질이나 안전성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 있다.이 때문에 가격 입찰 대신 ‘품질 입찰’을 제안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적정 가격을 정해 놓고 업체들에게 품질·처리·납품관련 조건을 제시해 적격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학교급식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품질과 안전성을 최우선적인 심사요건으로 정하면 부정한 거래와 업체들의 농간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전자입찰제도의 목적도 살리면서 부정계약을 막기 위해서는 낙찰 이후에도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조항을 입찰공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학교의 급식 관계자나 학부모, 급식업체선정위원회 등의 적격심사를 받도록 하는 단서조항을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학교급식의 식자재 전자입찰제도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점 못지않게 문제점도 많이 노출되고 있고, 특히 아이들의 건강과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서둘러 개선·보완돼야 한다고 학교급식관계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글_한상헌 기자 hsh@fsnews.co.kr 사진_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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