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테리아] 수많은 어제 그리고 내일…
[카페테리아] 수많은 어제 그리고 내일…
  • 이승연 조리사
  • 승인 2018.12.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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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학교조리사회장 이승연 조리사
이승연 조리사
이승연 조리사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덩그러니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니 새삼 바쁘게 달려온 어제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새해 새아침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기뻐하던 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송년을 노래한다. 결혼 후 재취업으로 택한 학교 조리사의 길을 벌써 23년째 즐기고 있다. 기숙학교 근무로 새벽잠을 설치며 고단함과 싸웠고, 가는 세월을 못 이겨 자꾸만 아우성치는 팔과 다리, 어깨의 투정도 살살 달래가며 지금 나는 학교 조리사의 길을 걸어간다.

시골 초등학교 급식으로 나온 카레라이스를 약냄새 난다며 못 먹던 아이들이 훌쩍 커 이제는 같은 학교로 부임해 반가운 재회를 하기도 하고, 가끔 길을 가다 꾸벅 인사하는 청년이 되어 만나기도 하는데 각각의 일터에서 제 몫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교에 근무할 시절에는 졸업 후 군대 간다며 커피를 손에 들고 찾아온 인정 깊은 학생 덕분에 커다란 보람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식을 먹고 난후 ‘맛있어요’라는 한마디는 긴장 속 고단함을 녹게 한다.

조리사라는 직업은 매력도 많지만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식품위생법상 조리사의 직무가 제정되지 않아 국회와 교육부 등을 오가며 맹렬한 투쟁으로 쟁취하기도 했으며, 불과 칼 등 상시 위험이 내재된 환경에 따른 위험수당 신설 등의 성과도 이루어 냈다. 참 많이도 뛰어 다녔던 것 같다.

그중 가장 큰 성과는 1997년 이래 채용이 굳게 닫혀 있던 공무원 조리직렬의 신규 채용이 드디어 2016년 물꼬를 튼 것이다. 지금도 첫 합격자들이 임용되는 순간 임원들 모두가 부둥켜안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롤러코스터 같이 경남지역의 급식은 무상과 유상을 오가는 힘든 시절을 겪으며 이제는 조금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급식도 교육이다’라고 외치지만 정작 교육처럼 대접해주지 않는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행정업무를 감해주고 보조 및 전담교사 등의 지원을 하지만,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식품비만 올리면 된다는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되물어 보고 싶다.

학교급식은 정해진 시간과의 싸움이다. 늘어만 가는 요구에 정체불명의 퓨전요리는 물론 2~3찬 같은 1찬 등은 점점 조리실을 재촉하고 있으며,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아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제라도 급식인력 배치기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음식은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창 자라는 어린이들은 더욱더 많은 정성과 손맛을 들여 조리를 해야 한다.

최근에는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집에서 밥 먹는 횟수는 줄며 잦은 외식과 인스턴트 배달 음식들이 너무 자연스런 현상이 되는 심히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학교급식이 한 끼 식사일지언정 내 손끝에서 나온 집밥 같은 음식으로 행복감을 줄 수 있다면 조리사로서 최고의 성취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 성현의 말씀 중에 ‘먹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사람이 가장 큰 덕목이다’라고 했듯이 나는 오늘도 학교 조리사로서 초심을 되새기며 집밥 같은 학교급식을 위해 앞치마를 당겨 맨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 또다시 열심히 살아온 수많은 어제들을 되짚어 보는 그 시간을 향해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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