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들려줄게] 젓갈
[한식을 들려줄게] 젓갈
  • 한식진흥원
  • 승인 2020.10.26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급 발효 제왕

생선이나 조개, 꽃게 등의 어패류에 소금을 더해 알맞게 숙성시키면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발효식품의 최고봉, 젓갈이다. 농경생활 시작 전 신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수렵이나 채취로 생계를 유지했다. 매일같이 물고기를 잡다 평상시보다 많이 잡은 날엔 상하지 않게 보관해야 했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염장법. 소금이 결국 젓갈의 뿌리가 됐다.

■ 오래 삭을수록 파워 넘치는 변신
어패류를 소금에 담가두면 반전 매력이 샘솟는다. 서서히 숙성되면서 어패류의 자가 분해 요소에 미생물의 발효로 생긴 유리 아미노산과 핵산 분해 산물이 함께 상승 작용해 특유의 감칠맛을 드러내는 것. 이 맛에 젓갈을 찾는 것 같다. 또 작은 생선뼈나 갑각류의 껍질이 연해지면서 칼슘 덩어리로도 변신할 수 있다. 속탈이 났을 때 치료제로 쓰인 전적도 자랑할 만하다.    

일반 젓갈에 밥이나 전분질까지 더하면 젓갈의 사촌, 식해로 다시 태어난다. 발효로 생긴 유산이 독특한 신맛을 내고 부패도 막아줘 한때 저장 음식으로 인기 가도를 달렸다. 함경도 가자미식해와 도루묵식해, 강원도 북어식해, 경상도 마른고기식해, 황해도 연안식해 등이 그것.    
이름조차 생소한 ‘마른고기식해’는 함경도 가자미식해에 버금가는 경상도 특산물로, 슬로푸드답게 만드는 과정이 꽤 길다. 일단 깨끗이 씻은 마른 오징어나 내장을 뺀 명태를 소금물(농도 6~8%)에 18~20시간 정도 절여야 한다. 소쿠리에 건져 소금 물기를 빼고 조밥과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을 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는 게 2단계. 약 20℃ 상온에 2~3주 두어 발효시키면 완성된다. 살과 뼈가 물러지면 씹을 필요 없이 술술 넘어가 밥도둑으로 등극.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어 이즈음 흔하진 않지만 한국에선 17세기 초부터 음식 문헌에 등장했다.

■ 국경과 시간을 넘나든 여정의 끝    
젓갈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한나라 무제(武帝, BC 156년~BC 87년)가 동이족(초기 철기 시대 우리나라 조상)을 쫓아 산동 반도(중국 화북평원 동부에 있는 반도)로 넘어왔을 때 좋은 냄새에 이끌려 정신없이 찾아보니 항아리가 나왔다.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어둔 것이었는데 젓갈 족보상 역대급 조상이 잠들어 있었다. 당시 중국에선 이(夷)를 쫓다 얻었다고 ‘축이(逐夷)’로 부르기도 했다.    
6세기경 편찬된 ‘제민요술(濟民要術,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 농업기술서)’엔 “장에는 누룩과 메주·술·소금으로 담그는 작장법(作醬法)과 수조어육류(獸鳥魚肉類)·채소·소금으로 담그는 어육장법(魚肉醬法)이 있다”고 소개해 놓았다.    
‘삼국사기’와 ‘신라본기’를 보면 신문왕 8년(683년)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을 때 납폐 품목에 ‘장’과 함께 ‘해(젓갈)’가 적혀 있다. 그만큼 젓갈은 궁중에서도 귀히 여긴 필수 폐백 음식이었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소금에만 절인 것, 주조법(酒造法)을 따라 소금과 술에 기름과 천초 등을 섞어 담근 것, 소금과 누룩에 담근 것, 소금에 엿기름과 찹쌀밥 등을 섞어 담근 것 등 젓갈의 자손도 무한대로 쭉쭉 뻗어나갔다.    
조선 후기 가장 많이 잡힌 어종은 명태와 조기, 청어, 멸치, 새우 등이다. 한 번에 많이 잡은 어류를 전국적으로 유통시키려 말리거나 젓갈로 만들었는데 유류(乳類)가 귀한 전통 식문화에서 칼슘 급원 식품으로 두루 사랑받았다. 이후 짭조름한 밥반찬으로 정점을 찍으며 크고 작은 제사상은 물론 한창 잘 나갈 땐 추석 차례상에도 올랐다.

현대로 넘어오며 호불호 없이 대중성을 인정받은 건 새우젓. 그냥도 먹지만 김치를 담그거나 요리할 때 조미료로 많이 쓰인다. 특히 여름엔 양념한 새우젓 하나만 있어도 잃었던 입맛을 되돌릴 수 있다. 이때 새우젓이나 조개젓은 다진 파와 마늘, 깨소금, 참기름, 고춧가루를 조금씩 넣고 무치자마자 먹어야 맛있다. 서울과 충청도에선 새우젓을 즐겨 먹고, 남쪽으로 갈수록 멸치젓이나 대구 아가미젓 등 진하고 매운 젓갈을 주로 먹는 편이다.    
최근 발효 음식이 해외에서 더 주목받으며 제3의 전성기를 꿈꾸는 중이다. 머지않아 북미는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저 멀리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젓갈을 아껴주길 바란다. 오랜 울림 있는 삭힘의 미학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