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찰서 영양사의 절규… 외로운 싸움, 끝은 어딘가?
어느 경찰서 영양사의 절규… 외로운 싸움, 끝은 어딘가?
  • 유태선 기자
  • 승인 2021.08.04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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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집단 괴롭힘 사건 후 1년… 여전한 괴롭힘에 고통 호소
불가피한 급식비 인상 ‘거절’… 게시판에 악성 댓글은 ‘난무’
홀로 외로운 싸움 이어져… “주변에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현재도 괴롭힘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쩔 땐 너무 괴로워 그만두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 들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끝까지 버텨낼 겁니다.”
- 대구 D경찰서 영양사 -

[대한급식신문=유태선 기자] 지난해 8월 대구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50대 영양사가 같은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들로부터 수 개월간 집단 괴롭힘을 당해온 것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큰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괴롭힘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당시 경찰 자체 감찰이 진행됐음에도 해당 영양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부당함에 맞서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경찰관들이 여성 영양사를 집단으로 괴롭혔다는 데서 그 심각성이 더한다.

감찰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대구 달서구에 소재한 D경찰서에 근무하는 공무직 영양사 A씨는 폭언과 욕설 같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이후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근무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힘 없는 여성 영양사를 집단으로 괴롭혀 자체 감찰이 있었음에도 계속해 괴롭힘을 이어 온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익명의 제보자가 제공한 대구경찰청이 운영하는 익명게시판에 남겨진 댓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힘 없는 여성 영양사를 집단으로 괴롭혀 자체 감찰이 있었음에도 계속해 괴롭힘을 이어 온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익명의 제보자가 제공한 대구경찰청이 운영하는 익명게시판에 남겨진 댓글.

A씨에 따르면, 지난해 괴롭힘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경찰 내부에서 자체 감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A씨에게 폭언과 욕설을 일삼았던 B경무과장은 단순 ‘구두 경고’에 그친 후 대구지역 다른 경찰서로 인사 발령됐으며, 현재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 외 나머지 10명은 피해자가 증거 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혐의 없음’으로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당시 감찰에 제출한 녹취 등을 예로 들며 “B경무과장은 ‘왕따도 네 책임이다’ ‘너는 경무 왕따’ ‘전임자가 인수인계 안 해준 것도 네 책임’ ‘(전임자에게)음료수라도 사가서 싹싹 빌어야지’ ‘장 보러도 가지마’ ‘영양사 개나 소나 다 따지’ ‘무식한~’ 등의 폭언과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감찰 이후에도 조사를 받은 10명 중 2명에게만 구두로 사과를 받았을 뿐 나머지 인원들은 어떠한 말도 없었다”며 “또다시 그들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한 공간에 근무하며 여전히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당한 급식비 인상 ‘묵살’

A씨를 향한 괴롭힘은 업무에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구지역 다른 경찰서는 원활한 급식 운영과 질 향상을 위해 급식비 인상이 이뤄졌음에도 D경찰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D경찰서를 제외한 대구지역 9개 경찰서는 대부분 최근 상승한 식재료와 인건비 등에 따라 3500원이던 급식비가 4000원으로 인상되거나 인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D경찰서는 급식 불만 등을 이유로 급식비 인상에 회의적이었던 것.

실제 D경찰서는 ▲조식 20~30명 ▲중식 80여 명 ▲석식은 20~30명이 이용하며, 급식비는 매월 직원들 급여에서 총 960여만 원을 원천징수한다. 그리고 그중 절반은 인건비와 운영비로, 나머지 450여만 원은 식재료비로 사용된다. 즉 1일 식재료비 15만 원으로 120~130명에게 급식을 제공해야 하는 등 만족도를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A씨는 “물가 인상 등 현재 급식비로는 정상적인 급식 운영이 어렵다”며 “한 끼 1100~1300원의 식재료비로 어떻게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겠나”라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급식을 담당하는 경무과 관계자는 ‘직원들이 급식비 인상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구내식당 폐쇄나 위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식재료비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매점을 운영하면서 급식실 자체적인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익명게시판엔 악성 댓글도

A씨를 향한 괴롭힘은 업무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익명게시판의 경우 본인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특정인이 남기는 악의적 댓글마저 모두 정당한 의견으로 호도될 우려가 있다.

대구지역 경찰서에 근무하는 복수의 직원들에 따르면, 대구경찰청이 자체 운영하는 익명게시판에 급식비 원천징수와 관련한 불만의 글이 올라온 후 D경찰서 급식에 대한 다수의 악성 댓글이 수십 건 게시됐다.

댓글로는 “식당을 폐쇄해야 한다” “외주업체를 선정해서 운영해야 한다” “급식비 원천징수에 대해 직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등의 비난 섞인 글들이 올라와 A씨를 괴롭혔다.

A씨는 “익명게시판의 댓글로 인해 사정을 모르는 다른 경찰서 직원들까지도 급식이 정말 부실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익명게시판을 운영하는 대구경찰청 측에 도움도 요청했으나 익명으로 운영되는 게시판이라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하소연했다.

외로운 싸움, 오로지 ‘감내’

A씨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집단 괴롭힘을 감내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홀로 버텨왔다. 실제 지난해 언론 보도 이후 경찰 자체 감찰 조사가 진행될 때도, 증거불충분으로 불합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도 어느 한 곳 도움을 준 곳은 없었다.

특히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 본지와의 통화에서 영양사들의 부당한 대우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던 (사)대한영양사협회(회장 이영은, 이하 영협)는 사실상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영협 측에서는 진상조사가 끝나는 대로 성명서나 항의 방문 등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으나 A씨는 “지난해 언론 보도 이후 영협 측으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영협 고위 임원은 “1년 전에도 해당 문제를 내부적으로 확인했었지만, 피해 영양사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따로 대응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한 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영협 내 노무사 및 변호사를 통해 도울 것”이라며 “영양사의 권익보호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집단 괴롭힘 문제를 발생시킨 D경찰서 관계자는 “지난해 진행된 감찰 결과에 대해서는 담당자 선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며 “급식비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다른 직원들의 의견도 있어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오해가 없도록 해당 경무과장이 댓글로 직접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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