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영원한 숙제이자 보람 ‘식단’ 
[나침반] 영원한 숙제이자 보람 ‘식단’ 
  • 부산 덕두초등학교 김을순 영양교사
  • 승인 2023.03.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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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덕두초등학교 김을순 영양교사
김을순 영양교사
김을순 영양교사

신학기가 시작됐다. 이제 갓 임용시험을 통과해 생애 첫 학교에 부임한 새내기도 있을 것이고, 익숙한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경력 있는 선생님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다 우리 학교로 오신 선생님과 학생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그분들이 새로운 급식식단을 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영양(교)사에게 새 학년 새 학기는 부담스러운 시작임이 틀림없다.

필자는 27년째 매월 식단을 짜고 있지만, 식단 작성은 여전히 어렵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영양(교)사는 수업뿐 아니라 영양상담, 종사원 교육 및 급식경영 등 많은 일을 해야 함에도 매일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식단을 평가받으니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식단 작성에도 순서와 원리, 원칙이 있다. 원리와 원칙을 알면 더 이상 식단 작성이 어렵고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한 달 단위 식단 작성은 가로 5칸, 세로 5칸의 퍼즐 맞추기와 같다. 보통은 내가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부터 풀어나가면서 나머지 칸들을 고민하며 채워 나갈 것이다. 식단을 짜는 것도 마찬가지. 어떤 칸, 즉 어떤 날의 식단을 먼저 채워 넣을지만 알면 된다.

제일 먼저 할 작업은 ‘이달의 주요 행사식’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달에 어떤 절기, 기념일, 축하데이가 있는지 알아본다. 설날에 떡국,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나물, 동지 팥죽, 추석에 송편, 어린이날, 복날, 광복절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잘 모를 수 있는 기념일도 있는데, 기념일의 응용과 재해석도 급식에 묘미다. 좋은 예가 ‘사과데이(10월 24일)’다. ‘둘이 사과하고 화해하는 날’이란 의미다. 여학생들끼리 가볍게 말다툼하고 서먹한 사이라면 사과데이 급식이 화해와 사과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음 ‘조화로운 식단’도 중요하다. 주재료, 즉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오리고기·달걀·생선 등이 한 식단에 함께 나오거나 연이어 제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식단을 짠 다음 색깔 형광펜으로 점검해보는 방법도 있다. 쇠고기는 빨강색, 돼지고기는 분홍색, 생선은 파랑색, 닭·오리는 검정색, 과일은 초록색으로 칠하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맛의 조화’도 필요하다. 짠맛, 단맛, 매운맛, 신맛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한다. 예를 들어 ‘흰밥, 크림스프, 돈까스, 마카로니샐러드, 깍두기’로 구성된 식단은 조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느끼한 맛+느끼한 맛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와 함께 ‘식감의 조화’도 빼놓을 수 없다. 바삭, 아삭, 물렁, 미끈, 끈적, 딱딱, 부드러움, 쫄깃 등의 식감이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식단 작성이 완료됐다면 그 다음은 ‘기호도를 높이는 조리’다. 학생들이 다소 싫어하지만, 제공하지 않을 수 없는 채소와 생선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칙들을 잘 지켜 훌륭한 식단을 구성하더라도 마지막에 잘 차려내지 못한다면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음식은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먹기 때문. 먹기 전 “와~! 맛있겠다!”하고 감탄사가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좋은 식단을 짠다는 건 영양사의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식단을 구성하는 사람’ ‘조리해 제공하는 사람’ ‘먹는 사람’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식단을 위해 오늘도 일선에서 고민하는 모든 영양(교)사들에게 필자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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