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네모 밥상에 담는 아이들의 이야기
[나침반] 네모 밥상에 담는 아이들의 이야기
  • 강원도 북원초등학교  김찬희 영양교사
  • 승인 2023.04.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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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북원초등학교  김찬희 영양교사
김찬희 영양교사
김찬희 영양교사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는 임신한 몸으로 선교사 이삭과 결혼해 오사카로 떠나게 된다. 결혼하는 딸에게 이불은 고사하고 수탈로 쌀밥조차 먹일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선자의 어머니는 어렵게 구한 쌀로 선자와 이삭에게 따뜻한 쌀밥을 해 먹인다. 

길을 떠난 선자는 지독한 멀미를 하며 배에서 여러 날을 보낸 후 늦은 저녁 무렵 오사카에 도착한다. 그런 선자에게 이삭의 형수 경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차려 준다. 이 밥을 보고 선자는 울컥한다. 이 밥은 그저 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해보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나는 동서를 우리 가족으로 맞이하게 돼서 기뻐. 우리 여기서 잘 지내보자.” - 경희 - 

“엄마, 보고 싶다. 여기 와 보니 이삭의 가족들은 좋은 사람들이야. 나에게 잘해주시니 엄마, 이제 내 걱정은 하지 마. 나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 선자 -  

이처럼 각자 느끼는 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밥은 더 이상 단순한 밥이 아니게 된다. ‘의미’를 품게 되고, 의미는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가며 또 오래도록 기억된다.

며칠 전 대한급식신문으로부터 ‘식생활교육을 잘하는 법’에 대한 원고를 부탁받았을 때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린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파친코 드라마였다. 과연 좋은 식생활교육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급식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먹는 밥은 자고 일어나 세수하는 일상과 같아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오히려 너나없이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면서 마치 ‘해치우듯’ 밥을 먹어 치운다. 밥 한 그릇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전에는 도통 알 수가 없는데 말이다. 

논에서 자란 벼는 해, 바람, 비, 물, 불을 만나 하얀 옷을 입고 따뜻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 그 길을 생각해 보면 참 멀고도 힘들었겠다 싶다. 그런데도 이 밥을 매일 먹는 우리는 농부들이 쏟은 땀과 노력을 쉽게 지나친다.

영양교사로서 처음부터 밥에 ‘이야기’를 담은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학생이 ‘어렵고 불행한 환경 때문에 여자친구를 만나 함께 밥을 먹는, 그런 평범한 미래가 자신에게는 없을 것’이라는 체념 섞인 이야기를 했었다. 그날 그 학생에게 밥은 균형 잡힌 영양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속에 있는 ‘추억의 음식’을 꺼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네모 밥상에 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영화 ‘행복목욕탕’을 보며 영화 속에 나온 식사 규칙은 무엇인지 다 함께 찾아보기도 했다. 각자의 집에는 어떤 식사 규칙이 있는지 이야기하고, 학교급식을 먹으며 지켜야 할 규칙은 무엇인지 스스로 만들어가기도 했다. 수업 시간이 모자라도록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구나!’ 또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이야기들을 네모 밥상에 담을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네모 밥상을 통해 ‘아이들의 오늘’이 시간이 흐른 ‘그 아이들의 먼 미래’에 꺼내어 볼 수 있는 따뜻한 추억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다짐도 한다. 네모 밥상을 먹으러 오는 너희들에게 ‘많이 웃어 줄게’ 또 ‘정성이 담긴 건강한 밥상을 만들어 줄게’ 그리고 ‘우리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만드는 데 도움을 줄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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