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급식에서 보람을 찾았던 날들 
[나침반] 급식에서 보람을 찾았던 날들 
  • 경북 아포초등학교   최성열 조리사 
  • 승인 2023.04.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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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아포초등학교   최성열 조리사 
최성열 조리사 
최성열 조리사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혹시 면접에서 내가 기억 못하는 이상한 말을 한 건 아닌지’ ‘전산 착오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말이다. 더디게 가던 시계는 어느덧 합격자 발표 시간에 다다랐고, 떨리다 못해 요동치는 가슴으로 모니터를 훔쳐봤다. “으악~ 합격이다~!”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도전했던 학교 조리사 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던 2017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또 한 번의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혹시 밤새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 차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설마 부식차가 못오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걱정을 다 하면서 말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학교는 경북지역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급식 인원 25인 미만의 1인 조리교였다. 그래서 조리사가 식자재 검수부터 전처리, 조리는 물론 청소까지 오롯이 혼자 해야 하는 곳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리사가 없으면 급식이 중단될 수밖에 없어 늘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일했었다.

밤새 내린 눈을 보며 걱정으로 지새운 밤을 뒤로한 채 깜깜한 이른 아침부터 길을 서둘렀다. 식자재는 도착했는데 조리를 해야할 조리사가 없으면 아이들은 물론 학교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평소 50분이면 가는 길을 눈 때문에 1시간 30분 가까이 걸려 도착했는데 마침 부식차도 수없이 미끄러지길 반복하면서 겨우 도착했단다. 그날 배송 기사님은 ‘죽을 고비 넘긴 거 같다’며 얼굴이 눈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급식을 마쳤고, 교직원들은 “힘든 상황임에도 급식을 잘 만들어줘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또 아이들은 “오늘도 너무 맛있었어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 끼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던, 가장 보람차고 기억에 남을 2022년 12월 어느 겨울날이었다.

흔히들 ‘힘들 때면 처음 일을 시작할 때를 떠올리라’라고 한다. 필자는 ‘시작’하면 떠오르는 것이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이다. 또 힘들고 지칠 때는 ‘우여곡절 끝에 조리사의 길에 들어선 만큼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초심의 마음가짐을 떠올린다.

다짐이 희미해지기 시작할 즈음 지난 겨울의 일이 일어났다. 그 시기 나는 업무과 개인사에 모두 지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내 정신을 일깨워 주며, 앞으로 몇 년을 되새길 수 있도록 정신 차리게 해준 에피소드가 하나 생긴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3년 혹은 5년 주기로 자의 또는 타의로 사직할 위기가 온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정해진 시간에 나가야 하는 급식이다 보니 뛰다시피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에, 맛까지 있어야 하니 조리사가 느끼는 중압감은 생각보다 크다. 거기에 매일 손발을 맞춰 일해야 하는 영양(교)사, 조리원들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안 그래도 힘든 급식 업무는 그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을 필자와 비슷한 경력의 조리사 중에는 지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합격발표 있던 날의 기쁨, 첫 출근 때의 설레임, 식판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 인사 등 급식에서 보람을 찾았던 날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나는 아직 수없이 많이 남은 조리사로서의 하루하루 중 또 한 번 하얗게 지새울 밤을 기꺼이 기다리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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