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조리실 ‘안전모 책임’ 논란
[나침반] 조리실 ‘안전모 책임’ 논란
  • 법무법인 (유)강남   조성호 변호사 
  • 승인 2023.11.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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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유)강남   조성호 변호사 
조성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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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 조리 실무사가 국솥 위로 올라가 후드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아 충청남도교육청(이하 충남교육청)이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으로부터 과태료 300만 원의 처분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교육청과 영양(교)사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교육청은 사전에 ‘안전보건관리규정(이하 안전규정)’을 관내 모든 학교에 배포했기 때문에 안전규정에 명시된 ‘보호구 착용’의 관리책임 의무가 해당 학교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충남교육청의 입장과 반대로 해당 학교와 영양교사, 그리고 충남지역 영양(교)사들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선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현재 충남교육청이 관리책임 의무에 근거로 제시한 안전규정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 여부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26조에서는 사업주가 안전규정을 작성하거나 변경할 때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며, 만일 산보위가 설치되어 있지 아니한 사업장의 경우에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충남교육청이 제시한 안전규정은 산보위 심의를 거친 적도 없고, 근로자대표의 동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절차적으로 볼 때 산안법에서는 분명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안전규정을 정할 수 없으며, 필히 산보위의 심의를 거치도록 명문화했기 때문에 하자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어떠한 제재나 처벌을 취하는 것은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못하거나 이런 절차적 하자 때문에 안전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산업안전에 관한 규정이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산안법상의 안전이나 보건에 관한 사항은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중대한 사항이기 때문에 안전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법 적용 자체를 부정하며 법적 공백을 초래하는 것 역시 타당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해당 조리실 국솥과 후드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통상적인 2층 이상의 높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안전모가 꼭 필요한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하고, 또 객관적으로 안전모 미착용이 낙상 등의 사고 시 근로자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고 판단하는 것도 모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학교에 근무하는 영양(교)사들 입장에서는 공문이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조리실 안전과 관련해 내려보낸 공문이나 안내서에 안전모 착용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면 이에 대해 학교나 영양(교)사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학교 조리실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조리실의 환경과 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지, 문책성 책임 공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명확한 지침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논한다면 산안법에 따른 산보위를 구성·운영하지 않은 충남교육청 담당자 역시 그 책임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최근 조리흄 등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이 직결되는 사항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책임 공방보다는 더 나은 조리실 안전 관리대책 마련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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