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보다 더 억울한 '무관심'
억울한 '죽음'보다 더 억울한 '무관심'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4.02.13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양(교)사들 "서울교육청, 영양교사 사건만 무대응" 비판 쏟아져
학부모 악성 민원 등 실태조사와 함께 진상규명 반드시 이뤄져야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지난달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서울 양천구 A중학교 B영양교사의 죽음에 대해 일선 영양(교)사들은 비통함에 이어 격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교사를 지켜줘야 할 교육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숨진 영양교사를 외면하는 듯한 태도마저 보여 '고인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온다. 

교육청 "민원과 직접 연관 없어"

가장 큰 비판을 받는 것은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 이하 서울교육청)의 태도다. 서울교육청은 기본적으로 B영양교사 사망과 학부모 악성 민원과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교육청 중등인사팀 고위 관계자는 "B영양교사는 숨지기 1년 전 휴직했고, 정해진 복직 시기를 1개월 앞당겨 복직할 만큼 열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영양교사의 극단적 선택에 악성 민원이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영양(교)사들은 “영양(교)사의 업무 실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내놓은 무책임한 해명”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경기지역 한 영양교사는 "통상 개학을 앞둔 2월은 영양(교)사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라며 "1년간의 급식 운영계획을 세워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받고, 교육 당국의 변경된 급식 정책 반영도 이 시기에 이뤄진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영양교사도 "2월은 3월 식단 작성과 식자재 입찰을 진행하면서 방학 중 운영하지 않았던 급식 설비 및 위생점검도 준비한다"며 "휴직에 맞춰 채용된 기간제 영양교사가 이 업무를 마무리하기도 하지만, 복직을 앞둔 상당수 영양교사들은 급식 운영을 본인이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2월 초부터 복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영양교사가 복직을 4일 앞두고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당 영양교사는 1년간의 휴직을 했지만 휴직을 선택한 배경이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갑질’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악성 민원에 따른 우울증 등으로 휴직한 서울의 한 영양교사가 복직 4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해당 영양교사는 1년간의 휴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불안을 떨치지 못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영양(사)사 사회가 비통함에 빠졌다. 

심리 불안에도 이른 복직 했는데

대한급식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B영양교사는 2021년 2학기부터 민원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2022년 1학기 집중된 민원으로 극한 고통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견디다 못한 B영양교사는 2023년 3월 병가를 냈고, 2023년 5월부터는 우울증 등 심리적 질병을 사유로 휴직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1년간의 휴직에도 심리적 불안을 떨치지 못한 B영양교사가 복직 4일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데도 교육청은 이를 외면한 셈이다.

서울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B영양교사는 심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학교를 위해 이른 복직을 신청한 것인데 서울교육청은 이를 역이용하고 있다"며 "휴직한 영양(교)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른 복직을 신청하는지 조금이라도 살폈다면 이런 어이없는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똑같은 교사인데 서이초와 달랐다

지난해 7월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괴롭힘으로 세상을 등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이번 사건을 대하는 서울교육청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점도 비난을 받고 있다.

서이초 사건 당시 서울교육청은 학교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교육감이 직접 나서 빠른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여기에 교육부(부총리 겸 장관 이주호)도 재발 방지에 나서는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B영양교사 사건에 대해 서울교육청은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을뿐더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지역 또다른 영양교사는 "영양교사를 같은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젊은 영양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에 대한 진상규명조차 외면하는 교육청이 존재할 가치는 있는 건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지적에 서울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대한급식신문과의 통화에서 "영양교사라서 진상규명을 외면한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서울교육청은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문제는 '인정'하지만 대책은 '글쎄'

서울교육청이 비판받는 부분은 또 있다. A중학교 같이 학생 수가 많은 경우 영양(교)사 업무가 대폭 늘어난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서울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A중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B영양교사가 아닌 다른 영양교사가 근무했어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에 인정한다"면서 "대책으로 2025년부터 급식환경 개선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A중학교는 학생이 1400여 명 이상에 교직원도 100명이 넘는 큰 학교임에도 급식실이 없다. 당연히 급식환경 개선사업도 시급하지만, 이처럼 큰 학교는 영양(교)사의 업무가 과중할 수밖에 없어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양(교)사 추가 배치가 필수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영양(교)사 추가 배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A중학교에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확답은 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경기도의 한 영양교사는 "국회에서도 대규모 학교에 영양(교)사 추가 배치의 필요성을 인정해 관련 법령 개정안을 발의했고, 교육부도 추가 배치를 요청하는 권고안과 예산도 편성했는데 서울교육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결국 서울교육청이 B영양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한 셈이다"고 성토했다. 

설태조사와 함께 보호조치 필요해 

B영양교사의 비극을 두고 일선 영양(교)사들은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영양(교)사들이 겪는 악성 민원은 교사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급식 만족도'라는 명분 때문에 무시당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현재 가장 필요한 조치는 '영양(교)사들이 겪는 악성 민원에 대한 실태조사'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의 한 영양교사는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고, 급식 식단에 간섭하며 다른 학교와 비교하는 행위는 결국 영양(교)사를 괴롭히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급식 만족도가 높으면 칭찬을, 악성 민원으로 급식 만족도가 낮으면 징계 등 신분상 처분을 받는 불합리한 일이 계속되는 이상 B영양교사와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교육공무직 영양사에 대한 보호도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이른바 '교권 보호 4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지위법·교육기본법)'을 제정하고, 교사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민원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직종 중 하나가 교육공무직 영양사임에도 이들은 교원이 아닌 관계로 교권 보호 4법의 대상이 아니다. 

서울지역의 한 학교 영양사는 "교육공무직 영양사 중 악성 민원으로 심리치료를 받지 않는 영양사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특히 학부모들은 영양교사에 비해 교육공무직 영양사를 더 쉬운 상대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도 있다"고 씁쓸해했다. 

서울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교육공무직원 보호에 대해) 어느 정도 허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교육청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