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시험 응시자격 요건완화 논란 - “안전·전문성 떨어진다”우려
영양사 시험 응시자격 요건완화 논란 - “안전·전문성 떨어진다”우려
  • 대한급식신문
  • 승인 2009.03.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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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교과목 이수 땐 응시자격…다양한 기회 제공 목소리도

 

▲ 최근 4년간 영양사 자격증 취득률이 54%에 불과해 응시자 두명 중 한명은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영양사 자격시험 경쟁률이 높은 상황에서 법까지 개정되면 응시 인원이 대폭 늘어 관련학과 전공자들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모여 스터디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현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바로 ‘규제완화’다. 지나친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을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올해 초 정부가 영양사 시험의 응시자격 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관련 교과목의 학점만 이수하면 누구나 영양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다. 추진 중인 정책이라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올 한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2일,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는 ‘2009년 규제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147개의 핵심 규제완화 항목을 공개했다. 기업 활동과 국민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폐지 또는 완화하고 경제위기 극복과 재도약에 디딤돌을 놓는 규제개혁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를 살펴보면 ‘국민생활 편의제고’ 항목에 영양사 자격시험응시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행 식품학 또는 영양학을 전공한 자만이 응시할 수 있었던 영양사 자격시험을 ‘식품학 또는 영양학 관련 교과목 및 학점에 관한 요건을 갖춘 자’로 완화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영양사 응시 기회를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오는 6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12월 ‘영양사에 관한 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영양사자격 요건강화 7개월 만에 뒤집어

지난해 5월 22일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보건복지부)는 ‘영양사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영양사 시험 응시자격 요건을 강화했다. 개정규칙은 영양사 시험을 보려는 응시자는 전공(필수 또는 선택)으로 최소 18과목 52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했다. 또 영양사 현장실습 과정을 거쳐야 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이는 당시 식품학이나 영양학을 전공만 하면 누구나 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영양사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서 나온 방안이었다.이 개정은 2011년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각 대학교는 관련 과목 명칭 변경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불과 7개월 만에 보건복지부는 지나친 규제라며 입장을 바꿨다.
이경혜 창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식품 관련 문제와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영양사 시험의 응시자격 요건완화는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 모순된다”며 “기초과목을 배제하고 전공 관련 과목 18개만 이수하는 것으로 응시자격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점은 영양사의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문제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창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경우 졸업하려면 교양과목 40학점, 전공 관련 과목은 평균 10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조경련 한양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최근 식중독이 발생한 단체급식소에 대한 과태료를 인상하는 등 식중독예방관리와 처벌을 강화하는 반면, 전문성이 강조되는 영양사 시험 자격요건을 오히려 완화하는 것은 안전관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김정화 성신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학생은 “영양사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음식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관련학과에서 사명감을 갖고 공부한 사람과 단순 과목 이수자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를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지난해 11월, 정부가 학교 영양교사 정원동결로 취업문을 좁혀놓은 상태에서, 응시 자격요건 완화로 영양사 배출을 확대한다면 구직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대한영양사협회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비전공자 연수 프로그램 등 보완책 필요

반면 대학의 모든 정보가 개방되고 학과가 통합화되는 추세에서 ‘올 것이 왔다’는 의견도 있다. 이영미 경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다른 학과와 벽을 쌓지 않고 경쟁력을 기르기위해서는 어느 정도 찬성한다”며 “그렇지만 영양사는 전공 수업만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학과 선배와 교수들로부터 얻는 영양(교)사의 활동과 역할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전공 관련 수업만 듣는 것으로는 전문인으로서의 자세를 배우기 힘들다는 것.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인성교육 강화 프로그램이나 비전공자의 연수 프로그램 등 응시자에게 인성과 자질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보완책의 필요하다”고 전했다.
윤지현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가) 식품영양학과의 위기로 볼 수 있지만, 넓게 보면 오히려 식품영양학전공자들이 의학, 언론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윤 교수가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4년제 대학 학사학위를 소지하고 미국영양사협회에서 지정한 과목을 이수하면 영양사 시험을 볼 수 있다.
식품영양학과 졸업생이 모두 영양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 수렴하는 법적인 절차 있어야

이번 영양사 시험 자격요건 완화 계획은 현재 잘 알려지지 않아 앞으로 논란의 여지가 크다. 특히 이 사안에 대해 학교별, 학과별로 의견이 갈리는 것이 문제다.
식품학 전공자와 영양학 전공자 사이에도 영양사 취업 비율이 달라 입장차를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2004~2008년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평균 7,600여 명이 영양사 시험에 응시하고 이중 54%인 4,100여 명이 면허를 취득했다. 이처럼 영양사 자격시험 경쟁률이 높은 상황에서 법까지 개정되면 응시 인원이 대폭 늘어 관련학과 전공자들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숙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사무관은 “영양사 자격시험의 응시자격 요건완화는 규제 완화 정책의 하나로 ‘자격 요건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결정된 사항은 없으며 향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번 계획을 추진했던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은 현재 보직 이동으로 전부 교체됐다. 담당자 교체로 잠시 계획 추진이 주춤하고 있지만 규개위에 올라간 사안이라 곧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규개위는 일자리 창출 등 경기활성화와 서민생활 안정 등을 위해 규제완화정책을 일사천리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한해 영양사 자격시험 요건완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_이제남 기자 ljn@f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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