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알레르기 위급상황에 법과 지침은 ‘제각각’
식품알레르기 위급상황에 법과 지침은 ‘제각각’
  • 이의경 기자
  • 승인 2015.04.19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레르기 유발식품 표시제 의무화 … 영양(교)사, 예방차원 철저히 시행

 

▲ 식품알레르기로 인한 아나필락시스가 우려될 경우 평소 의사의 처방을 받아 자가용 에피네프린을 구비하고 위급상황 시 주사투여 등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우유가 섞인 카레를 먹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지 2년여가 지났다. 학교급식에서 식품알레르기로 인한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교육부의 위급상황에 대한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위급상황 시 주사 처치는?
보건교사, ‘의료법 위반’ 거부
교육부, 지침 따라 보건교사 투여
복지부, 학교보건법으로 보완해야
선진국, 교육과 여건 이미 마련돼


교육부는 ’13년 11월 학교급식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학교급식별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학교급식에 사용하는 식재료 중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품이 있는 경우 사전에 학생, 학부모에게 정보 공지를 의무화하고 보건교사의 에피네프린(알레르기 반응 치료 주사) 투여 등 지침도 올해 학교급식 기본방향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영양(교)사들은 알레르기 유발식품 섭취로 인한 사고예방 차원에서 ‘알레르기 유발식품 표시제’를 시행하고 정보공지를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에서는 학기 초 건강상태 조사서 또는 식품알레르기 실태조사서를 통해 학생의 특이체질이나 과거 병력 등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파악해 이를 관리하고 있다. 이중 식품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은 따로 영양(교)사와 정보를 공유해 대체 식단을 별도 제공받는다.

A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알레르기 유발 원재료별 식별번호가 표시된 식단표를 미리 가정통신문으로 발송하거나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식당과 교실에도 이와 같은 사항을 게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식품알레르기 사고로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가 조치를 해야 하는지 여부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김현정 교수는 “실제로 아나필락시스 환자의 경우 식사 후 바로 나타나기 보다는 30~40분 정도 경과했을 때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진다”며 “급식실 보다 교실이나 학교의 다른 장소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란 몸에 특정한 자극이 있으면 전신에 두드러기, 혈관부종, 호흡곤란, 저혈압, 의식소실 등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급격히 진행돼 신속히 대처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실제로 인천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사고의 경우도 카레를 먹은 후 학교 운동장에서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뇌사 상태였다가 사망했다.

교육부는 아나필락시스 위급상황 발생 시 보건교사가 있는 학교의 경우 자가용 에피네프린 주사를 학생 본인 또는 보건교사가 대신 투여하도록 지침을 정했으나 보건교사들의 반발로 현장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시 보건교사회가 ‘간호사 면허가 있더라도 의사 처방이 없는 주사처치 자체는 의료법에 위반돼 주사를 놓을 수 없다’는 취지의 민원을 보건당국에 제기해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교육부에서는 아나필락시스가 우려되는 학생의 학부모가 원할 경우 알레르기 응급약을 학교 보건실에 맡겨 구비하고 위급상황 시 투여한다고 했으나 이 또한 현장의 상황은 다르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둔 학부모 B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약을 갖고 다니기엔 불안해 혹시나 모를 위급상황에 대비해 의사처방을 받아 자가용 에피네프린을 보건실에 보관하려 했으나 보건교사가 보관 자체를 거부했다”며 “보건교사는 주사도 놓아줄 수 없으니 아이에게 스스로 놓을 수 있도록 교육시키라고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C 초등학교 보건교사는 “학교현장의 위급상황으로 에피네프린을 투여했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보건교사가 질 수밖에 없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는 별다른 방안이 없어 이런 사고가 발생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학교 현장에서 유일하게 의료행위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춘 보건교사도 에피네프린 투여를 거부했는데 일반 교사들이 과연 위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강성심병원 전문의 D씨는 “간호사 면허가 있다면 의사 처방이 있는 주사처치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며 특히 위급상황인 경우 예외로 볼 수 있다”며 “환자가 위급한데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책임소재 때문에 의료인이 치료행위를 거부하고 일반인이 해야 한다면 오히려 문제 발생 시 의료인의 의무소홀 책임이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학교 현장에서는 의료법상의 문제로 식품알레르기 관리 지침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나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는 “’13년 지침을 정해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전달했고 보건교사 배치학교는 보호자 동의하에 보건교사가 대신 투여할 수 있다는 항목은 유효하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 처방이 없는 일반 의료행위는 의료법 위반이지만 특수한 상황은 개별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만큼 학교보건법의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 관계자 역시 “학교에서 아나필락시스 환자가 발생할 경우 응급처치 약인 자가용 에피네프린을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의 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법적인 안전장치와 학교 현장에서 지속적인 상황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는 “’13년 지침을 유지하고 있으나 현장 의견을 파악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다각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아나필락시스 위급상황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교육부 관계자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은 교육책자 등을 제작해 올 하반기부터 학교 교육을 강화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아나필라시스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학교 보건실에 자가용 에피네프린을 비치하고 있으며 보건교사, 일반교사가 위급상황에서 지체 없이 투여할 수 있도록 교육 및 기본 여건을 마련해 놓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