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업체는 걸러내고 성실업체는 육성하는 ‘채찍’과 ‘당근’ 필요
[대한급식신문=김기연·박준재 기자] 학교급식 식자재를 노상에서 배분해 공급하는 행태를 통상 ‘길거리 급식’이라 칭한다. 학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한 식품위생 취급기준을 지키지 않고 길거리에 냉동고기 등을 쌓아놓은 채 분류하고, 공급받는 행위다. 2017년 길거리 급식 현장이 부산에서 확인돼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이런 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이 최근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 확인됐다. 길거리 급식의 원인은 무엇인지, 대책은 없는지 진단해본다.
- 편집자주 -
2023년 국감장에 등장한 부산 길거리 급식 ‘데자뷰’
문정복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경북대에서 열린 강원·대구·경북교육청에 대한 국감에서 길거리 급식 행위가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는 길가에 방치된 냉동·냉장차량에 식자재를 옮겨 싣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 속에서는 학교급식 식자재 차량 운전기사들이 길가에 차를 주차해놓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길가 옆에 세워진 또 다른 탑차에서 식자재를 꺼내 자신의 차량으로 옮겼다.
문제는 식자재 종류가 냉동고기와 우유, 농산물 등 대부분 냉동 혹은 냉장 상태로 보관해야 하는 것임에도 차량 시동이 꺼진 채 2~3시간씩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길가에 놓인 ‘파레트(상품 적재용 깔판)’에 식자재들이 쌓여 있고, 운전기사들이 이를 가져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해당 영상에서 운전기사들에 의해 옮겨진 고기와 우유, 햄 등은 식품위생법에서 명시한 식품위생 취급기준에 의해 냉동 혹은 냉장 보관되어야 할 식자재들이다. 이 같은 식자재들이 상온에서 2~3시간씩 방치되면 변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식중독의 원인도 된다.
문 의원은 “이런 식으로 납품하는 4개 업체를 파악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강원지역 학교로 납품하는 업체들”이라며 “강원도교육청(교육감 신경호, 이하 강원교육청)조차 이 실상을 전혀 모르고 있는데 이 업체들의 행태는 현행법 위반은 물론 아이들 건강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질타했다.
길거리 급식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지난 2017년. 당시 경찰과 부산시의원, 자치단체 담당자, 업계 관계자들이 새벽까지 실태조사를 벌인 끝에 길거리 급식을 잡아냈다.
이런 비위생적인 유통 실태가 부산지역에 알려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고, 그로 인해 이른바 ‘불성실 공급업체’를 강력히 제재하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6년이나 지난 지금도 길거리 급식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불성실 직납업체 난립, 시작된 원인은 무엇인가
길거리 급식의 원인은 복합적이라 현재 학교급식 체계에서는 근절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학교급식 초기 각종 비리가 심각해지면서 교육부는 투명성을 위해 일선 학교의 식자재 공급계약 시 비대면 전자계약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 과정에서 공급계약의 주체가 되는 ‘직납업체(식자재를 학교로 직접 납품하는 업체)’가 생겨났다. 그리고 직납업체로 식자재를 공급하는 제조 또는 유통업체는 ‘간납업체(식자재를 간접 납품하는 업체)’로 불리게 됐다.
학교급식을 위해 한 달간 사용하는 식자재는 300종이 넘는다. 김치나 쌀처럼 대량의 식자재와 함께 양념류처럼 소량이 필요한 식자재도 있고, 육류나 과일처럼 당일 식단에 따라 소요량이 변하는 식자재도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300종의 식자재를 공급받기 위해 300개 업체와 계약을 맺을 수는 없어 결국 직납업체 1곳과 계약을 맺고 공급받는 체계로 일반화됐다. 그리고 이들 직납업체는 식자재 보관 공간과 배송 수단을 갖추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사장 김춘진, 이하 aT)의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eaT, 현 공공급식통합플랫폼, 이하 플랫폼)’에 등록해 입찰 후 낙찰받았다. 그런데 일부 직납업체들에 의해 플랫폼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낙찰하한율 부근에서 낙찰가격이 형성되는 제한적 최저가입찰제는 낙찰 가격을 맞추는 업체가 낙찰받기 때문에 응찰을 많이 할수록 낙찰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기존 업체가 지인, 가족 등의 명의로 유령업체를 설립한 뒤 다수 업체로 응찰해 낙찰받으면 본래 업체가 공급을 맡는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애당초 실체가 없는 업체가 낙찰만 받은 후 공급권을 또 다른 업체에 ‘판매’하는 행위다. 이처럼 공급권을 ‘구매’한 업체는 그에 대한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익 보존을 위해 식자재 등급을 낮추거나 불량 식자재를 납품할 수밖에 없다.
‘관리 공백’ 플랫폼 등록업체들… 해결책, aT·교육청 의지에 달려
문 의원이 확보한 4개 업체는 불량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문 의원은 4개 업체와 해당 업체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 명단을 강원교육청에 제공했다. 강원교육청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4개 업체 모두 강원도 내 어느 학교와도 계약을 맺지 않았고, 심지어 플랫폼에도 등록되지도 않았다. 결국 어느 업체가 어떤 과정으로 납품하는지도 모른 채 식자재를 공급받았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업체들에 대한 적발과 제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aT는 이런 ‘식자재 공급 전매 행위’를 인지하고 대책도 세우고 있으나 근절이 쉽지 않다. 이번에 확인된 4개 업체도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이들 업체는 플랫폼에 등록되지 않아 학교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다. 자연히 학교는 해당 업체에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없고, aT도 ‘불성실업체’로 제재할 수 없다. 결국 식품 관련 업체를 관리하는 위생 당국 혹은 경찰이 나서야 하는데 이 유령업체를 단속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급식업체 관계자들은 혼탁해진 식자재 공급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식자재 경쟁입찰 조달체계가 학교를 넘어 공공급식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어 불성실업체를 근절하지 않으면 공공급식 전체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내놓고 있다.
물론 aT가 불성실업체를 걸러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점검에 임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aT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267개 업체를 적발해 3~24개월 입찰 제한 조치를 내렸다. 플랫폼에 등록한 업체가 500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지만, 적발된 업체는 즉시 폐업하고 신규 업체로 등록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aT 관계자는 “공급업체 진입 문턱이 낮다는 지적을 잘 알고 있으나 현행법 체계에서는 딱히 방법이 없다”며 “aT가 제재를 가하거나 등록을 거부하면 업체는 무조건 소송으로 대응한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현재 체계에서 불성실업체 난립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과 함께 성실업체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처벌 강화와 성실업체 육성이 업계의 자정작용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이다.
플랫폼에 등록된 한 식자재업체 관계자는 “조달청 나라장터에 ‘우수업체 가산점 제도’가 있는 것처럼 일정 기준을 충족한 업체에 일부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도 업체의 의욕은 물론 업체 상호 간 견제도 활발해질 것”이라며 “aT와 교육청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