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조리 실무사들의 ‘국솥 위 곡예’… 이젠 멈춰야
[이슈] 조리 실무사들의 ‘국솥 위 곡예’… 이젠 멈춰야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11.10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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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교육청, 산안법 위반 과태료 관련 감사 마쳤으나 ‘영구 비공개’
급식 현장 “산안법 억지 적용이 빚어낸 난맥상, 정부 부처가 풀어야”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학교급식소 조리실에서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주인 교육청에 과태료 300만 원이 부과한 사례를 두고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일선 영양(교)사들은 이번 사례를 묻어두면 향후 대단히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급식신문 370호(2023년 10월 30일자) 참조>

- 편집자주 -

감사해놓고 결과는 ‘비공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이하 천안지청)으로부터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충청남도교육청(교육감 김지철, 이하 충남교육청)은 10월 초부터 시작된 천안 A초등학교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하고 감사결과를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사 결과는 ‘영구 비공개’였다. 

심지어 감사 대상자로 분류됐던 A초등학교 영양교사에게도 감사 결과가 전혀 통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사 결과 요청에는 비공개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감사 대상이었던 영양교사와 학교장 등 학교 관계자들에게 징계나 신분상 처분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이 조리실 후드 청소를 위해 국솥 위로 올라가며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청에 부과한 과태료 300만 원을 두고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조리 종사자가 조리대 위로 올라가 후드를 닦고 있는 모습.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이 조리실 후드 청소를 위해 국솥 위로 올라가며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청에 부과한 과태료 300만 원을 두고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조리 종사자가 조리대 위로 올라가 후드를 닦고 있는 모습.

이 같은 행정 처리에 대해 영양교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충남도내 300여 명의 영양(교)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데다, 기존에 없던 ‘조리실 내 안전모 미착용으로 인한 과태료’ 처분이라는 큰 이슈라 의당 모든 사안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남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해당 영양교사뿐만 아니라 영양교사회에서 감사 결과를 요청해도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며 “이렇게 처리할 것이라면 감사를 왜 했나”라고 따져 물었다. 

“무책임한 교육청” 한 목소리

과태료 처분 자체가 교육청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처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 근거한 교육부·교육청·노동부 어떤 매뉴얼·지침에도 안전모라는 명칭은 없고, 급식소에 보급된 보호구에도 안전모는 없다. 결과적으로 천안지청이 보호구를 안전모로 확대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충남영양교사회 관계자는 “‘추락에 대비해 안전모를 착용하라’는 지침은 어디에도 없다”며 “그럼에도 천안지청은 현장 확인과 법률상 ‘관리감독자’인 학교장에 대한 조사도 없이 과태료 처분을 내렸고, 충남교육청은 수수방관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감사 결과가 나왔다면 감사 대상자인 영양교사는 그 결과에 대해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며 “감사 결과 비공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감사를 진행했던 충남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따른 처분대상자에게만 감사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에 처분대상자가 아니라면 감사 결과를 알려줄 수 없다”며 “해당 학교 영양교사가 감사 대상자였는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예견된 우려, 현실화됐나

특히 산안법을 학교급식소에 적용하기로 할 때부터 우려됐던 상황이 고스란히 벌어진 것에 대한 반발이 매우 크다. 이른바 ‘관리감독자 지정 문제’다. 

일반적으로 산안법상 관리감독자는 현장 근로자 중 ‘선임자’ 개념에 가까워 실제 사고가 발생해도 사업주 혹은 안전·보건관리자에게 책임이 돌아갈 뿐 책임을 지는 직위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충남교육청의 감사 과정을 볼 때 관리감독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곧 중간 관리자 위치에 있는 영양(교)사들에게도 여파가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충남교육청은 과태료 300만 원에 대한 후속 감사를 진행하며, A초등학교 영양교사를 대상으로 무리한 감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용 3년차인 해당 영양교사는 지난달 24일 충남교육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직접 단상에 올라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충북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식중독 혹은 위생점검 시 적발된 부분 등 학교급식 운영과 관련한 사안은 당연히 감사 대상이겠지만 ‘추락에 대비한 안전모 미착용’을 이유로 감사 대상이 된다면 더 이상 영양(교)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장 모르는 법, 결국 ‘난맥상’

천안지청의 과태료 처분도 문제의 소지가 충분하다. 천안지청에서 문제를 삼은 것은 조리 실무사가 후드 청소를 위해 국솥 위로 올라갔을 때 추락 위험이 있는데도 안전모를 쓰지 않아 사업주인 교육감이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솥의 높이는 제일 높은 제품이어도 1m 남짓이다. 

물론 비교적 낮은 높이라도 부상을 입을 수 있지만, 1m 남짓 높이에서 추락 시 머리보다는 다른 신체 부위가 다칠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안전모는 이 과정에 보호구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것. 결과적으로 천안지청의 과태료는 현장 위험도가 높은 건설·제조업 현장을 중심으로 설계된 산안법을 급식소에 일괄 적용하면서 빚어진 난맥상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법조계의 한 변호사는 “통상 1m 높이라면 누가 봐도 생명에 위협을 초래하는 높이로 보기 어려울 텐데 이를 두고 학교나 영양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교육 당국이 명확한 지침 등으로 안내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천안지청 관계자는 “조사 과정 및 대상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위험한 작업들, 외부에 맡겨야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접하고 과태료 혹은 안전모 논란보다 ‘국솥 위의 조리 실무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후드 청소를 위해 조리 실무사들이 국솥 혹은 조리대 위에 매번 올라가는 일이 애초부터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후드 청소를 정기적으로 외부 업체에 맡기거나 조리실 구조 개선작업 시 후드의 위치를 가급적 낮게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영양교사는 “산안법의 취지는 급식 종사자들의 안전을 보다 세밀하고 확실하게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이에 따른다면 조리 실무사들에게 안전모를 쓰라고 명령하기보다 애초에 조리대 혹은 국솥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조치하고 명령하는 것이 산안법의 근본 취지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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