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하는 후드’와 동고동락한 조리 종사자들
‘역류하는 후드’와 동고동락한 조리 종사자들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11.19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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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육청, 고장난 ‘후드’ 2년 방치하다 지난 6월 확인
현장 “환기설비, 전문가가 맡아야 할 이유 더욱 명확해져”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대구지역의 한 중학교 급식실 후드가 정상 작동되지 않고 있었음에도 2년이 지나서야 부실 원인이 밝혀져 비판이 일고 있다.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대구의 중학교처럼 급식실 환기설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학교들이 더 많을 것이라며 교육 당국이 환기설비와 같은 업무를 비전문가인 급식 종사자에게 떠넘기면 안 되는 이유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지부장 정경희, 이하 대구학비노조)는 지난 9일 대구광역시교육청(교육감 강은희, 이하 대구교육청) 앞에서 ‘대구교육청 환기시설 부실 공사 방치 규탄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구학비노조가 지난 9일 대구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기시설 부실공사 방치를 규탄하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대구학비노조에 따르면, 동구 신서동에 있는 A중학교는 2021년 3월부터 8월까지 급식실 현대화공사를 실시하면서 환기시설도 교체했다. 하지만 환기시설 성능이 교체 이후 더 낮아져 조리 종사자들은 조리과정에서 눈이 따갑고 숨이 막히는 증상을 자주 겪어야 했다. 

A중학교에서 2년 일했다는 B조리 실무사는 “튀김과 전을 동시에 조리하는 날에는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환기가 이뤄지지 않았고, 연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일을 해야 했다”며 “학교 측에 여러 번 호소했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2년 전 환기공사, 부실로 확인
대구학비노조는 “2022년 대구교육청이 관내 전 학교를 대상으로 후드 설비를 조사했으나 A중학교의 후드 고장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2년이 지난 올해 6월에서야 고장 사실을 알고 현장 확인 뒤 감사를 실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A중학교 조리 종사자들이 겪은 고통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대구교육청은 대구학비노조 기자회견 후 해명자료를 통해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라며 문제가 된 학교에 대해 즉각 조치했다고 밝혔다. 실제 대구교육청은 2021년 공사 직후부터 환기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2년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2년이 지난 올해 6월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면서 원인이 확인됐다. 대구교육청은 환기설비 시공업체가 아닌 배기덕트 전문업체에 정밀점검을 의뢰해 전기배선의 연결 오류로 배기 휀이 역방향으로 회전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지난 2년간 A중학교 조리실은 조리흄을 비롯한 각종 연기와 오염물질을 밖으로 배출한 것이 아닌, 반대로 조리실로 밀어 넣은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구교육청은 관리 부실을 인정하고, 해당 공사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담당 공무원과 A중학교, 대구교육청 관련 부서를 징계하는 동시에 시공업체를 부정당업자로 지정했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자체 점검과 대구교육청 차원의 합동 점검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2027년까지 지역 462개교의 급식실 환기설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앞으로 동일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점검 결과, 학교 97% 기준 미달 
대구 A중학교의 사례가 알려지자 급식 관계자들은 우려했던 상황이 터진 것이라며 교육 당국에 강한 불신을 보내고 있다. 교육 당국이 추진하는 환기설비 개선과정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교육 당국이 2022년 전국 4833개교를 대상으로 환기설비를 점검한 결과, 이 중 97%에 달하는 4702개교가 기준에 미달했다.

조리 종사자의 폐암 확진이 잇따르면서 근로복지공단은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이라고 인정하고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그러자 교육부와 일선 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신설학교와 최근 환기설비를 교체한 학교를 제외하고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일제 점검을 실시했다. 2022년 1년간 점검 완료한 학교는 4833개로, 전국 학교 1만2000여 개 중 조리하는 학교가 9458개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학교의 절반가량을 점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중 97%에 달하는 4702개교가 환기설비 기준에 미달하는 등 부실이 심각했다.

대구교육청은 이 같은 일제 점검에서도 A중학교의 환기설비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 애초에 점검대상이 아니었던 것. 당시 대구교육청은 437개 학교를 점검했는데 437개 학교 모두 환기설비 기준 미달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에서야 특정감사를 통해 A중학교의 문제를 인지하고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급식 관계자들은 “A중학교와 같은 사례가 전국에 많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비전문가인 영양(교)사나 조리 종사자들이 환기설비 성능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는 데다, A중학교처럼 환기가 부실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 

경남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환기가 되지 않는다고 조리 종사자들이 영양(교)사에게 하소연한다는데 영양(교)사가 교육지원청에 문의하면 기다려달라는 말만 한다”며 “영양(교)사들이 직접 전문업체를 섭외해 점검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영양(교)사와 조리 종사자들은 다시 급식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 결국 환기 문제는 뒷전이 된다”며 “이런 학교가 얼마나 더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환기, ‘비전문가’에 맡겨선 안 돼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뤄질 조리실 환기설비 개선사업이다. 개선사업 과정을 학교 측에 떠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득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7개 시·도교육청은 2022년 1년간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개선 예산으로 258억 원을 편성하고, 이 중 122억 원을 집행해 개선이 완료된 학교는 총 443개다. 그리고 나머지 예산 또한 올해 집행되거나 오는 12월 집행예정인 지역이 많다.

환기설비 개선 예산은 2023년에도 3083개 학교급식실에 1230억 원이 편성됐다. 그런데 올해 실제 개선이 이뤄진 학교는 지난해보다도 적은 169개 학교에 불과했다. 이처럼 더뎌진 가장 큰 이유는 개선사업의 주요 방향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당초 교육청 측은 후드 및 덕트설비 교체 등 ‘부분 개선’만으로도 환기설비가 일정 성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환기설비 개선을 위해서는 조리실 구조를 바꾸고 공기 유속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천장 공사 등이 필요해짐에 따라 ‘전면 개선’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따라서 공사를 위해서는 급식 중단이 불가피해 급식이 없는 방학 기간으로 공사가 늦춰진 것. 이런 사정은 모든 교육청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몇몇 지역이 환기설비 개선사업 진행을 일선 학교로 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북지역의 한 영양교사는 “대구 A중학교가 비전문가에게 환기설비 업무를 떠넘겼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라며 “시공업체의 부실공사를 학교 내 누가 과연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지금처럼 짧은 시간 내에 모든 학교를 개선해야 하는 중대한 사업이라면 더더욱 교육청이 전담팀을 구성해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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