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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급식소에서 12년 보낸 영양사, 죽음을 선택하기 까지
[청주보호소 단독보도2]5페이지 분량 경위서 공개… 문제 된 '식재료 전용' 전말 분석
2016년 11월 14일 (월) 15:54:39 정지미 기자 jm@fsnews.co.kr

   
▲ 지난 8월 제26회 공무원미술대전에서 서양화부문 은상을 차지한 김 영양사의 작품.

<편집자주>

지난 10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외국인보호소(이하 청주보호소) 김혜진 영양사의 자살은 특히 단체급식 관계자라면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단체급식 전반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모두 담겨 있고, 그 속에서 혼자 몸부림치는 영양사의 절규를 여실히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이다.

영양사 고유의 업무 외 잡무 수행, 급식을 외식과 같이 생각하는 이용객들의 인식 부족, 전문성이 강조되는 분야라는 이유로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 조리종사원들과의 갈등, 책임에 비해 낮은 지위…

무엇보다 식품·영양 전문가로서 역량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동료, 선·후배 없이 혼자 막중한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두려움과 외로움만 커졌고 자신감과 상실감만 남은 형국이다.

‘안개 속에서는 옷 젖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미 단체급식 분야별 특성에 따라 영양사들의 가운은 축축이 젖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제2의 청주외국인보호소 영양사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이번 사건을 짚어본다.


“12년간 일한 이곳은 40살 미혼인 저에게 배우자만큼 든든한 곳이었습니다” “맛깔나는 식사와 언제나 미소로 대하는 영양사가 있다면 힘이 되시겠지 생각했습니다”…
<김 영양사가 작성한 경위서 ‘중략’>
 

 

 

 2004년 7월 기능직 위생원(8급)으로 임용된 김혜진 영양사.

2004년 7월 기능직 위생원(8급)으로 임용된 김혜진 영양사.

12년간 보호외국인과 직원들의 급식을 맡아왔던 김 영양사는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3일 ‘든든한 곳’이라고 믿었던 청주외국인보호소(이하 청주보호소)의 식품창고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본지 취재에 의해 작성한 사건일지
청주보호소 개청(2004년 11월 1일)부터 자살 당일까지 급식운영을 맡았던 김 영양사가 만 12년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끔찍한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불합리한 급식운영 구조와 관행에서 비롯됐다.

사건 발단은 보호외국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식재료를 직원 급식에 전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평소 한 식구처럼 지냈던 조리종사원이었지만 노조가입 이후 보호소 측과 마찰을 빚으면서 불합리한 급식운영 구조이자 관행이었던 ‘식재료 전용’을 보호소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보호외국인 급식과 직원 급식을 동시에 운영한 김 영양사는 12년간 정확한 예산없이 직원 급식을 운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식재료를 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한 김 영양사의 지난 고충과 감내할 수 없었던 애로는 그가 조사를 받으면서 남긴 5페이지 분량의 경위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중에 43명을 계획했는데 17명이 오시고, 주말이면 1명이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 날도…”

청주보호소 직원은 총 50여 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하루에 몇 명의 직원이 급식을 이용할 지 알 수 없었다. 급식비도 일괄공제가 아닌 먹은 만큼 한달 후 계산하는 후불식이다보니 예산에 맞춘 계획 급식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일주일 동안 전체 직원을 위한 1일 3식을 준비했고, 후불로 받은 급식비와 구입한 식품비 사이의 차액은 온전히 김 영양사의 몫이었다.

수 차례 청주보호소에 문제점을 보고하고 일괄공제 형태로 전환을 제안했으나 본지가 입수한 자료와 유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요구는 번번히 좌절됐다. 반면 직원 급식에 대한 요구는 많았다고 한다.

김 영양사의 동생은 “어느 해인가 언니는 보호소의 높은 분이 당뇨가 있어 현미밥을 꼭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직원들이 한우를 먹고 싶어 한다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며 김 영양사의 고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12년간 ‘불합리한 관행’의 책임은 고스란히 김 영양사에게 떠넘겨졌다. 그리고 ‘식재료 전용’이라는 명목으로 청주보호소의 내부 조사가 시작됐고 법무부 조사까지 확대되면서 김 영양사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사망하기 전 50일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야했다.

 

예산 없는 직원식당 위해 '직접 김장' 담그기까지

   
▲ 후불제 운영으로 외부 출입국 직원의 급식비까지 회수하기 위해 김 영양사가 보낸 문자
그녀는 주말도 지난 추석연휴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준비해야 할 자료가 많아 동생까지 주말이면 언니와 함께 청주보호소로 함께 동행했다. 동생에 따르면 김 영양사는 내부 고발이 있었던 8월 말경 이후부터 50일간 거의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을 했다.

김 영양사와 동생이 준비한 자료는 지난 5년간 쌀 및 양념류 등의 외국인보호소 급식 식재료가 직원 급식에 사용된 내역 및 경위서와 개청 후 단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던 직원 급식 관련 갖가지 문서를 외국인보호소 급식과 동일한 형태로 준비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김 영양사는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

현재 유가족들은 보호외국인과 직원 두 개의 급식소 운영으로 인해 식재료 전용은 급식 해당 부서인 관리과와 조리종사원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청주보호소가 식재료 전용이 보호외국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인권문제로 확대되는 등 외부로 알려질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해 했다”라며 법무부에 이번 사안을 바로 알리지 않고 김 영양사에게 사직을 종용한 사실도 털어놨다.

한편 지난 9월 19일 김 영양사가 청주보호소에 제출한 경위서에는 말미에는 “진정 식재료 전용이 이 정도의 사안이 될 정도로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이유를 막론하고 국민들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을 잘못 운영해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여백이 거의 없이 빼곡하게 작성된 5페이지 분량의 경위서에는 김 영양사가 12년간 청주보호소의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영양사로서 급식에 대한 책임감과 절절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김 영양사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직원 급식을 끝까지 운영하기 위해 직접 김장 김치를 담궈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청주보호소 측은 이와 관련한 취재에 "현재 수사 중이기 때문에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년간 이어온 관행… 문제시 되자 영양사 ‘희생양’으로 몰아

   
▲ 12년간의 고충과 함께 청주보호소에 대한 애정을 5페이지 분량에 경위서 빼곡히 남긴 김 영양사

수차례 ‘일괄공제’ 제안… 번번이 묵살

‘식재료 전용’ 어떻게 시작됐나

김 영양사 자살의 원인이었던 청주보호소 직원식당은 주먹구구로 운영되고 있었다. 수년간 불합리한 관행으로 이어오던 직원식당이 문제가 되자 결국 김 영양사 혼자만 희생양 만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직원 급식비 회수 방식. 한 달간 지문인식기를 통해 급식을 이용한 직원들만 후불제 형식으로 급식비를 받았다. 즉 한 달간 정확한 예산이 없는 상태에서 김 영양사는 직원 50여 명 분량을 1일 3식 휴일 없이 준비했던 것.

게다가 정확한 식수인원을 알 수 없었고 자율배식으로 운영해 예정량까지 예측할 수 없는 구조로 운영됐다. 결국 미리 구입한 식품비와 회수된 급식비 간 차액금은 김 영양사 혼자의 고민으로 돌아왔다.

김 영양사는 매번 직원 급식에서 남는 밥을 보호외국인 급식에 사용하고 그 만큼의 식재료를 직원 급식에 사용하며 12년간 두 곳의 급식을 힘겹게 운영해왔던 것.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식재료 전용의 범위는 밥에서 양념류 등의 식재료까지 확대됐다.

‘식재료 전용’ 아무도 몰랐나

2015년 청주보호소에 근무했던 조리종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실제 보호외국인 급식 식재료를 직원 급식에 사용했었다”면서도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되물었다. 이유를 설명하자 “누가와도 정확하게 구분해서 식재료를 쓸 수 없다. 창고 하나에 같이 보관하는데 급한 조리과정에서 모자라면 쓰게 된다”며 뒤늦게 문제가 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2013년 법무부 정기 감사에서도 청주보호소의 식재료 전용을 감사관이 발견, ‘식자재 혼용이 운영상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정돼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재료 전용’ 막을 수 없었나

조리시설의 구조적인 문제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현재 청주보호소는 조리실 1곳과 식품보관 창고 1곳에 보호외국인 급식과 직원  급식 식재료를 함께 보관하고 같은 조리실에서 조리를 하고 있다. 게다가 1명의 영양사가 두 곳의 급식을 함께 운영하고 같은 조리종사원이 함께 조리를 하는 형태이다.

식재료 전용을 계획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주어진 시간 내 계획된 식단을 제공해야 하는 급식의 특성상 실수로라도 식재료가 섞일 수 있는 환경인 셈.

이에 대해 김 영양사도 경위서에서 “몇 번 보호외국인 급식 식재료를 사용하게 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조리종사원들도 알아서 가져다 쓰게 됐다”고 밝혔다.

김 영양사, 개선 위해 무엇을 했나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0월 청주보호소 내 직원식당 운영위원회가 처음 시작됐다. 당시 김 영양사는 기존 직원 급식비 회수 방식에 문제점을 보고하고 ‘일괄공제’ 형식으로 전환을 요구했다.

일괄공제는 한 달에 정액분의 급식비를 사전 혹은 사후에 납부하는 방식으로 식수 예측이 기본인 단체급식에서는 예산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지불방식이다.

이에 대해 김 영양사는 경위서에서 “국내에서 두 개뿐인 청주와 화성 외국인보호소는 매번 비교대상이 됐다”며 “화성보호소에서도 일괄공제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안건 채택에서 제외됐다”고 답했다.

덧붙여 “2013년 운영위원회 이전에도 수차례 일괄공제를 제안한 상황에서 더 이상 요구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서술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영양사는 대안으로 변동 인원수를 미리 알 수 있도록 제안했으나 이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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