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맛’ ‘화려함’이 우선돼서는 안 된다
학교급식, ‘맛’ ‘화려함’이 우선돼서는 안 된다
  • 정지미-김기연 기자
  • 승인 2019.06.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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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진정한 학교급식인가 ②]
‘화려한 급식’ 두고 영양(교)사들 의견 엇갈려
영양(교)사 평가수단? “결코 안 돼”
각종 언론매체와 SNS를 통해 ‘화려한 급식’이 최선의 급식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일선 영양(교)사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의 입맛에만 치우치지 않고 학교급식의 목적과 가치를 지키며 급식을 준비하면 ‘무능력한 영양(교)사’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각종 언론매체와 SNS를 통해 ‘화려한 급식’이 최선의 급식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일선 영양(교)사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의 입맛에만 치우치지 않고 학교급식의 목적과 가치를 지키며 급식을 준비하면 ‘무능력한 영양(교)사’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대한급식신문=정지미-김기연 기자] 다가오는 6월 9일 첫 방송을 예고한 모 케이블방송사의 학교급식 관련 프로그램이 있다. 그것은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외식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백종원 대표(요리연구가)가 진행을 맡는 ‘고교급식왕’. 프로그램 진행은 참여 신청을 한 고교생들이 학교급식 식단을 짜고, 식재료 선정부터 조리까지 마치면 백 대표는 참가자들이 제안한 레시피가 학교급식으로 적합한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다방면으로 조언하는 방식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학교급식의 본질과 목적을 재확인하고, 현재를 진단해보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준비했다.
- 편집자주 -

 

‘단체급식’ 산업화에 중요한 역할

단체급식은 1960년대부터 가속화된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분야였다. 산업 현장의 구내식당 확대와 맞물려 급식을 관리할 영양사의 수요가 늘어났고, 이를 토대로 영양사 면허는 1969년 국가면허증으로 인정됐다. 그리고 학교급식법이 제정된 1980년대부터는 학교에도 영양사가 진출했다. 학교 영양사는 보건직을 거쳐 식품위생직으로 발전했고, 2007년 영양교사로까지 승격됐다.

영양(교)사의 위상은 학교급식 변화와도 맞물린다. 학교급식은 시작부터 일반적인 구내식당과 달랐다. 일반 산업체급식이 노동자들의 ‘체력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학교급식은 ‘건전한 심신의 발달과 국민 식생활 개선’을 목표로 두고 있어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

시대 흐름과 변화한 ‘학교급식’

학교급식은 이 같은 목적 아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됐다. ‘건강한 급식’이라는 목적이 나날이 강화되면서 교육부는 2007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1식당 칼로리와 단백질, 비타민, 칼슘, 철분 등의 영양분을 평균필요량과 권장섭취량으로 구분해 ‘학교급식의 영양관리기준’을 학교급식법 시행규칙에 도입했다.

이 기준에 따라 각 시·도교육청들은 ‘학교급식 기본방향(계획)’에 1식당, 1일, 1주일 영양량 및 영양소 섭취기준을 정해 운용하도록 하고, 이를 준용하지 않으면 교육청 감사에서 신분상 처분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점에서 학교급식과 특히 외식은 큰 차이가 나온다. 일선 영양(교)사들이 “일부 언론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화제가 되는 외식처럼 단순히 ‘화려한 급식’은 영양관리기준을 어기는 것”이라며 “학교급식의 목적과 가치를 외면하는 급식”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화려한 급식’ 배척? 한 번쯤 변화도

하지만 일부 영양(교)사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비판받는 ‘화려한 급식’을 무작정 배척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사회가 변하는 만큼 학교급식에 대한 요구도 변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퓨전급식’ 등과 같은 변화는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A중학교 영양사는 “가정의 기능이 예전보다 약화된 지금 각 가정에서 제대로 된 식생활교육은 기대하기 어렵고, 이미 길들여진 중·고교생의 식습관을 개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며 “학교급식 영양관리기준을 어기거나 저당·저나트륨, 가공식품, 식품첨가물 등의 과다 사용만 아니라면 동·서양 퓨전음식 시도 등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B고등학교 영양사도 “‘균형 잡힌 성장’이라는 학교급식 목적을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이 급식을 먹도록 해야 하는데 학교 밖에서 다양한 외식을 쉽게 접하는 학생들은 단순히 외식 메뉴를 본뜬 급식을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다”며 “급식에 별미로 외식 메뉴가 함께 제공됐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전했다.

충남 C초등학교 영양교사는 “급식에서 피자와 햄버거가 나온다면 일시적으로 학생들의 호응이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스스로 거부할 것”이라며 “학생 선호도와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세계음식 등의 급식을 위해서 영양(교)사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급식’ 지킬 건 지켜야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학교급식만큼은 우리 고유의 전통과 식문화를 계승해야 하고, 이 같은 문화를 바탕으로 급식을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학교급식은 공공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필히 급식을 통해 식생활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기도 D초등학교 영양교사는 “학교급식법이 제정될 때부터 전통 식생활 계승 등은 학교급식의 본질이자 목적이었고, 이 본질에서 벗어나는 순간 학교급식은 존재가치가 사라진다”며 “학교 영양(교)사의 존재목적 역시 동일하다”고 전했다.

인천 E초등학교 영양교사는 “학생들이 전통 식생활을 선호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식생활교육의 부재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며 “식생활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교육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를 활용한 건강한 급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북 F초등학교 영양교사도 “조금만 더 고민해보면 급식의 목적과 본질을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학생들의 선호도를 높일 수 있는 식단이 많다”며 “이를 위한 영양(교)사의 노력은 학생들이 먼저 알아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맛’‘선호도’로 평가? “안될 일”

‘화려한 급식’에 대해 영양(교)사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한 가지다.

‘화려한 급식’이 하나의 ‘도구’는 될 수 있어도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 특히 ‘맛’과 ‘선호도’가 학교급식, 나아가 영양(교)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지역의 한 교육청 관계자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인 ‘맛’은 사람과 기호도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데 지금 사회는 학교급식에 ‘맛’을 너무 요구한다”며 “맛에 중점을 둔다면 그것은 ‘외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자칫 이 같은 과잉 요구는 학교급식의 목적을 묵묵히 순응하는 수많은 영양(교)사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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